[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협약 마련에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빈손 협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가 성과 없이 끝난 데는 개최국인 한국의 리더십과 역할이 부족했다는 평가입니다.
특히 이번 협약에서 플라스틱의 전 생애주기를 다루는 등 플라스틱 생산 감축에 대한 이목이 집중됐지만 결과는 참담했다는 게 환경단체들의 지적입니다.
"국제적 리더십,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2일 기후단체 기후솔루션은 논평을 내고 "한국 정부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 목표와 관련한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폐기물 관리와 재활용에만 초점을 맞춘 소극적인 태도를 지속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지난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부산에서 열린 INC-5는 플라스틱 협약 성안을 위한 골든타임격으로 지목돼 왔습니다. 첫 플라스틱 협약 논의는 해양 쓰레기 문제를 다뤘지만 가장 첨예하게 다뤄지는 부분은 생산 감축입니다.
유엔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 회의가 개막한 25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장 회의실에서 루이스 바야스 발비디에소(가운데) 의장 등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플라스틱 오염의 근본적인 원인은 플라스틱의 과도한 생산 때문입니다. 플라스틱 생산은 곧 기후 문제로 김완섭 환경부 장관도 단계적이고 다양한 방식의 생산 감축 방향을 언급해왔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이번 협상은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습니다. 의장이 제안한 협상 텍스트인 '제3차 비문서(Non-paper 3)'의 지위와 협약 채택 시 만장일치 합의(consensus)에 이르지 못할 경우 다수결 투표로 결정한다는 규칙을 둘러싸고 의견이 나뉜 겁니다. 각 조항에 대한 실질적 협상을 진행하는 '컨택 그룹(contact group)' 회의가 지연됐습니다.
컨택 그룹 협상에 돌입한 이후 구체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도 문제로 지목됩니다. 국가 간 입장 차이가 컸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은 자발적인 국가 차원의 노력을 강조하는 반면, 오염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겪고 있는 도서국은 생산 감축 목표를 포함한 강력한 협약을 지지, 큰 간극을 보였습니다.
기후솔루션 측은 "마지막날까지 결국 좁혀지지 않았다. 한국은 개최국으로서 국제적 리더십을 보여줄 기회였으나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며 "협상 진행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주도적으로 명확하고 야심 찬 의견을 제시하지 못했고 현장서 인터넷 문제나 옵저버 자리 부족 등 기본적인 운영에서도 아쉬움을 남겼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한국 정부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 목표와 관련한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폐기물 관리와 재활용에만 초점을 맞춘 소극적인 태도를 지속했다"며 "한국 정부는 주요 플라스틱 생산국 중 하나임에도 인류의 미래를 고려한 합리적 감축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고 언급했습니다.
INC-5를 앞두고 도서 국가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주도한 협약에서 1차 폴리머를 규제해야 한다는 '부산으로 가는 다리(Bridge to Busan)' 선언에 참여하지 않았고 협상 4일차인 11월28일 파나마를 주축으로 100여개국이 참여한 글로벌 감축 목표 지지 성명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기후솔루션은 "지난 11월30일 밤, 협상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플라스틱 생산을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감축하는 조항을 포함해야 한다는 개최국 연합 성명서에 동참했다"며 "이번 INC-5의 7일에 걸친 협상 과정은 국경을 초월하는 환경 문제에 관한 새로운 협약의 성안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이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플라스틱 오염 국제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 개막식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환경부)
또 "의미 있는 협약이 완성되기에도 부족했던 INC-5 협상장의 시계가 흘러갔다. 허울뿐인 협약이 아닌 실효성 있는 협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 전반의 더욱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플라스틱 생산량 증가와 관련 설비 확충이 기후 위기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한국 정부가 직시해야 한다. 플라스틱 생산 감축은 국가적 차원의 자발적 노력만으로는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면서 "국제적으로 검증 가능하며 구속력 있는 협약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 정부는 세계 4위 플라스틱 생산국으로서 국제적 책임을 다하고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적극적인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INC-5 결과 '참담'…환경단체 '실망'
환경운동연합 측도 "협약은 다음 협상으로 넘어가 또다시 기나긴 논의에 빠지게 됐다"며 "이번 협약이 플라스틱의 전 생애주기를 다루며 플라스틱 생산감축도 포함할 수 있을 것으로 주목 받아온 것과는 달리 INC-5의 결과는 참담했다"고 표명했습니다.
이어 "협상의 바탕이 되는 의장의 비문서(Non-paper)에는 '제 6조 공급'의 경우 옵션 1은 조항을 모두 삭제, 옵션 2는 1차 플라스틱 폴리머를 포함한 플라스틱 생산 감축 조항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12월1일 의장이 새롭게 제안한 문서에는 옵션 2 중 '1차 플라스틱'과 '폴리머'에 모두 괄호로 포함돼 다시 협의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됐다. 이는 지금까지의 논의가 모두 무용지물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평가했습니다.
더욱이 "이번 협상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개최국이자 플라스틱 협약 우호국 연합(HAC) 소속인 한국정부도 매우 실망스러운 행태를 보였다"며 '생산감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환경부 장관의 발언과는 달리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생산감축을 제안하는 제안서에는 단 한 번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마지막 진행된 전체 회의에서는 다른 정부대표단들이 생산감축 지지발언으로 박수와 환호를 받을 때 '우리는 (INC-5에서) 합의를 위한 강력한 기반을 구축했으며 이는 모두가 자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라고 발언했다"면서 "협약안이 산유국들의 방해로 부실해져 가는 지금, 이 발언은 한국이 세계 4위 플라스틱 생산국임에도 플라스틱 오염을 책임지지 않는 모습"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INC-5의 결과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중심으로 플라스틱 생산 규제를 강력히 거부한 세력에 굴복한 것"이라며 "그러나 이번 협상에서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이 곧, 우리의 싸움이 끝났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플라스틱 오염으로 인한 고통은 지속되고 있다. 더 이상 화석연료와 플라스틱 산업계가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방해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해 우리는 끝까지 요구할 것이다. 이를 방해하는 국가는 전 세계 인류의 건강과 생명다양성을 위협하는 국가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이에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방해하는 국가들에게 경고한다. 우리는 더 이상 야심찬 협약의 지연을 용납할 수 없다"고 피력했습니다.
한편, 협상위를 이끄는 루이스 바야스 발비디에소 의장은 "일부 문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것은 고무적이지만 소수의 쟁점이 완전한 합의를 이루는 것을 막고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며 "쟁점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추후 5차 협상위를 재개해 협상을 마무리 짓기로 전반적인 합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