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연말 인사 칼바람 속에 대기업들이 지난 3분기에 매출을 당겨쓴 정황이 엿보입니다. 전체 코스피 상장사의 3분기 매출에서 매출채권(외상판매)이 급증하는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대기업 연말 인사는 일정상 3분기 실적까지만 반영되는 경우가 많아 실적을 부풀릴 동기를 제공합니다. 그러다 수장이 교체되기라도 하면 전임자가 만든 부실자산을 청산하기 위해 4분기 빅배스(일시제거)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기업 투명성 제고가 필요하단 지적이 나옵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등 주요 대기업들의 3분기 매출채권이 연초보다 늘어났습니다. 매출 시황이 오르거나 계절적 요인이 크게 반영됐을 수 있지만 대기업 전반적으로 유독 3분기만 그런 경향은 수년째 나타납니다.
금융투자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피 전체 상장사의 매출에서 매출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이나 2023년에도 3분기가 2분기나 4분기에 비해 높았습니다. 2022년 2분기 39.2%, 3분기 39.8%, 4분기 37.4%입니다. 또 2023년 2분기엔 39.9%였는데 3분기 42.4%로 올랐다가 4분기 40.4%로 내렸습니다.
제조업으로 한정하면 2022년 2분기 44.1%, 3분기 45.6%, 4분기 40.8%, 2023년 2분기 44.9%, 3분기 48.8%, 4분기 44.1%씩 집계됐습니다. 3분기 전후 등락폭이 코스피 전체 상장사 중 제조업에서 크게 나타납니다.
또 제조업 중에선 전기전자 업종의 등락폭이 큰 편입니다. 전기전자는 2022년 2분기 55.6%, 3분기 60.4%, 4분기 47.8%, 2023년 2분기 57%, 3분기 60.6%, 4분기 51.3% 추이를 보였습니다. 그밖에 화학, 철강도 3분기 매출채권 비중이 높은 현상은 비슷합니다.
업황과 실적이 좋은 경우 매출을 억지로 부풀려야 할 동기는 약해집니다. 그래선지 영업이익률이 2023년보다 높았던 2022년에 화학업종은 매출채권 비중이 2분기와 3분기가 비슷했습니다. 그럼에도 4분기엔 떨어졌습니다.
올 3분기 전체 코스피 상장사의 매출채권은 아직 집계되지 않았습니다. 매년 2분기보다 3분기 매출채권 비중이 올랐던 점을 고려하면 올해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해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올 2분기 매출채권 비중이 전년 동기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전체 코스피 상장사의 올 2분기 매출채권 비중은 42%, 전년동기엔 39.9%였습니다. 제조업의 경우 올 2분기가 46.7%로 전년동기 44.9%보다 큽니다. 전기전자, 화학, 철강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 업종 모두 SK하이닉스가 AI발 HBM(고대역폭메모리) 호황을 누리는 특수만 제외하면 연중 실적이 부진해 고강도 문책인사가 예고됐습니다. 삼성전자는 이미 2분기 중 전영현 부회장을 전임 경계현 사장을 대신해 반도체 수장으로 교체한 바 있습니다.
아무래도 인사 칼바람을 앞두고 경영진이 실적을 높일 유인은 증가합니다. 이런 식으로 3분기 실적을 부풀리면 4분기 빅배스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10월 역대 최대 수출을 썼다가 11월 반도체를 제외한 주요 품목들의 수출액이 감소한 데는 이런 기저효과가 작용했을 개연성이 있습니다. 주요 상장사들의 4분기 실적이 급락할 것도 미리 경계해야 할 대목입니다.
그런데 다수 대기업들은 4분기 실적을 건너뛰듯이 발표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4분기 실적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닌 연간 실적으로 뭉뚱그려 발표하는 식입니다. 기업 내부적으로는 4분기 실적이 감소하면 연간 법인세가 줄어드는 효과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인위적 조정이 암암리에 묵인되는 분위기도 일부 감지됩니다.
업계 관계자는 “새로 부임한 수장은 전임자의 부실을 4분기에 털어내고 시작한다. 그래야 부임 후 실적이 반등하는 효과도 커진다”며 “외상판매는 대손충당금을 키워 채권이 장기화되면 손실도 늘어나는 문제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