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강승혁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무산되면서 주식시장의 혼란은 가중될 전망입니다. 부진한 경제 펀더멘털 위에 핵폭탄이 떨어진 것이어서 바닥 타진이 쉽지 않습니다. 해외 유력지엔 “윤석열은 한국 GDP 킬러”라는 표현까지 등장했고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한국 비중을 줄이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의 매도 행렬에 환율도 불안한 움직임을 보여 안정을 찾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전망입니다.
(표=뉴스토마토)
환율, 계엄 전보다 하락? 방어 총력전
7일 새벽 미국 아멕스(AMEX) 증시에 상장된 MSCI한국지수 추종 상장지수펀드(ETF) iShares MSCI South Korea(종목기호 EWY)의 주가는 1.01% 하락한 54.96달러에 거래를 마감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호한 직후에 개장했던 3일 거래부터 지난 6일까지 EWY 주가는 하루 1%대 안팎의 하락률을 오갔으니 우리 국민들이 받은 충격에 비하면 선방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3일 장 초반엔 7.12%까지 급락했던 흔적을 보면 결코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외국인들이 바라보는 한국 증시가 잠깐이나마 7% 이상 추락했단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원달러환율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서울외국환시장에서 원달러환율은 4일 11원 이상 하락한 1413.60원을 기록한 후 5일과 6일 소폭 상승해 1423.00원을 기록했습니다. 수치만 보면 계엄 전인 3일 마감가 1425.00원보다 하락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계엄 선포 직후 정부가 무제한 유동성 공급을 선포한 데 따라 외환시장에도 상당한 돈을 퍼부으며 환율 상승을 인위적으로 막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6일 오전에도 민주당이 2차 계엄 가능성을 경고한 영향으로 빠르게 상승하며 한때 1430원에 다가섰다가 밀려났는데요. 당국이 개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입니다.
지난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환율이 1410원으로 약간 오른 상태이지만 새 쇼크가 없다면 천천히 다시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으나, 탄핵 무산과 재추진이 예고된 이상 혼란 가중에 따른 상승 압력은 이번 주에도 계속될 전망입니다.
11월 말 기준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은 4154억달러 수준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9월에 25억3000만달러가, 10월엔 1억2000만달러 순유출된 결과입니다. 12월에 시장 방어를 위해 퍼부은 자금이 상당할 것으로 추정돼 순유출 규모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제유가 등이 하락 안정되는 등 국내 물가를 자극하는 요인은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다음주 18일 미국에선 올해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열릴 예정입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내리기 부담스러울 거라는 전망이 늘었지만, 페드워치(FedWatch)를 참고하면 아직은 0.25%포인트를 추가 인하할 확률이 86%로 월등히 더 높습니다.(8일 현재)
미국의 금리 인하 여부에 따라 한국과 미국의 금리 역전 폭은 더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금리 차는 외국인의 자금 이동과 원달러환율에 영향을 주는 요인입니다.
해외기관 전망 비관적…성장률 전망치 또 하향
불확실성을 극도로 싫어하는 증시의 특성상, 지난 토요일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됐다면 이번 주에 단기 바닥을 타진할 가능성이 컸지만, 정국 불안이 계속되면서 시장의 변동성도 확대될 전망입니다.
이는 외국 금융기관들과 언론의 부정적인 시각에도 드러나 있습니다. 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여당이 대통령 탄핵 저지에 성공했지만, 탄핵 실패로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해 자본시장에 지속적인 충격을 줄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하루 전 포브스는 ‘윤석열의 극단적인 곡예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을 죽이는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습니다. 월가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William Pesek)은 칼럼에서 “윤 대통령의 도박은 한국이 글로벌 프라임타임에 대한 준비가 덜 돼 있다는 투자자들의 판단을 확인해줬다”며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주장하는 해외 투자자들의 논리를 입증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하나같이 직설적으로 국내 투자시장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습니다. 골드만삭스는 강달러, 높은 장기 금리, 관세 불확실성과 같은 취약한 거시경제 환경 속에서 정책적 불확실성 위험이 더해지면 한국 시장의 평가절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모건스탠리는 “불확실한 정책 환경 속 탄핵 가능성과 대통령 교체가 가계와 투자자들의 경제 전망에 대한 우려를 더하면서 내수·투자 활동의 하방 리스크는 더욱 커질 것”이라며 한국 주식 시장에 대한 투자 의견을 ‘중립’에서 ‘비중 축소’(매도)로 하향했습니다.
홍콩계 CLSA의 경우 이미 내년 전망에서 한국 주식에 대한 익스포저(노출액)를 크게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는데 “이 조정을 앞당긴다”고 밝혔습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 8곳이 최근 제시한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지난달 말 기준 평균 1.8%로 집계됐는데, 이는 한 달 전보다 0.2%포인트 하락한 수치입니다. 지난 9월 말 2.1%에서 지난달 2.0%로 0.1%포인트 내린 데 이은 추가 조정입니다. 구체적으로 △골드만삭스·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 2.2→1.8% △UBS 2.1→1.9% △노무라 1.9→1.7% △JP모건 1.8→1.7%로 전망치를 수정했습니다. 특히 씨티는 미국의 관세 인상 가능성과 내수 부진을 이유로 1.8%에서 1.6%으로 내렸습니다.
탄핵안이 무산되는 것을 전 세계가 지켜본 만큼 외국인들의 매도세는 강화될 공산이 큽니다. 원달러환율 또한 개입을 지속하기엔 부담이 큽니다. 한국은 이미 환율 관찰대상국에 오른 상태에서 당국의 개입이 계속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에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정치 불안이 잦아들지 않는 이상 앞도 바닥도 보지 않는 시장의 불안은 계속해서 증시를 짓누를 전망입니다.
김창경 기자 ckkim@etomato.com
강승혁 기자 ks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