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외국인들은 우려와 달리 한국의 금융시스템을 신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경기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트럼프의 등장으로 내년 전망이 비관적으로 변한 데다 정국 불안까지 겹쳤음에도 실제로 증시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환율 상승도 외국인 이탈보다는 기업들이 수출대금을 환전하지 않은 영향이 커 보입니다. 정국이 질서를 찾으면 환율도 안정을 찾아갈 것이란 분석입니다.
원달러 전고점 근접
10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외국인 증권투자 동향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 11월 한 달 간 국내 상장주식을 4조1540억원어치 순매도했습니다.
외국인의 주식 매도는 지난여름부터 본격화됐으며 12월에도 순매도 기조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달 들어 갑자기 발발한 계엄 사태로 인해 시장의 우려는 크게 증폭된 상황입니다. 투자자들은 외국인들이 주식을 던지고 한국을 탈출하고 있다며 정치권과 금융당국에 분노를 돌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원달러환율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변동폭이 커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당시엔 환율이 1444.25원까지 치솟기도 했습니다. 이후 정부가 시장 안정을 위한 무제한 자금 동원령을 내렸고 외환시장에도 개입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10일 현재 원달러환율은 1430원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어느 정도 자금을 투입했는지는 이달 말 외환보유고를 확인해야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주식 판 것보다 선물 더 샀다…채권도 순투자
시장에 위기감이 확산되며 환율을 자극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외국인의 매도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실제 외국인들은 이달에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3일 밤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 2시간여 만에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를 결의하고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일 때까지 사태는 긴박하게 진행됐습니다. 이후 정치권은 탄핵 정국으로 돌변했습니다.
외국인들은 이걸 기회로 해석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3일 모처럼 5700억원 가까이 주식을 순매수했던 외국인들은 사태가 터진 후 장이 열리자 주식을 매도하기 시작했습니다. 4일엔 4000억원 이상 팔았고 5일과 6일에도 순매도를 기록했습니다. 9일 하루 1000억원 이상 매수한 것을 제외하면 계엄 사태 이후 계속 팔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선물시장에선 달랐습니다. 4일 2200억원, 5일 84억원을 각각 매도한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순매수를 기록했습니다. 그것도 현물시장에서 주식을 판 것보다 선물을 더 많이 샀습니다.<그래프 참조>
또한 주식보다 투자 규모가 큰 채권시장에선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을 참고하면, 외국인이 이달 들어 채권을 판 게 고작 350억원입니다. 10년국채선물의 경우 9일까지 1조1762억원어치를 외국인이 순매수했는데 계엄 사태 후에도 순매수입니다.
이날 나온 금감원 매매동향에도 외국인은 11월 한 달 상장채권을 3조2590억원어치를 순매수하고, 1조77200억원어치를 만기상환받아 1조4870원어치를 순투자했다고 나옵니다.
KRX채권종합지수나 KTB지수를 보면 4일 하루 충격이 반영돼 있고 그 후에도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나 아직은 크게 동요하는 수준은 아닙니다.
이처럼 주식시장은 물론 채권시장에서도 외국인들의 포지션 변화는 크지 않아 이를 환율을 밀어올린 요인으로 지목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경상수지 흑자 내고 환전은 미뤄
밸류업 등에 대한 실망으로 미국 등으로 빠져나간 투자자금도 환율을 올리는 역할을 했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최근 원달러환율 상승의 주된 배경을 수출기업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10월 경상수지가 97억8000만달러를 기록하는 등 수출기업들의 호실적에 힘입어 6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 중인데, 이들이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연말에 시장의 불안감이 커진 탓에 일단 환전을 미루고 지켜보겠다는 심산입니다.
10월까지 누적 경상수지는 742억4000만달러입니다. 한국은행은 올해 전망치 900억달러 흑자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기업들이 계속 환전을 미루는 동안엔 환율은 고공행진을 할 전망입니다. 거꾸로 이는 시장이 안정될 경우 환율 하락 속도도 빨라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그때까지는 외환당국의 방어에 달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한국은행도 공격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기엔 부담이 큽니다. 나중에 책임 문제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위험도 따릅니다.
한편, 원달러환율의 변동성이 커진 상황이다 보니 환투기 세력의 활동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일시적 매매로 환율을 끌어올릴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