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저희도 계엄은 처음이라서요. 책임총리제도요."
한밤 중 비상계엄 선포에서 시작된 공직사회 '패닉'이 탄핵소추안 부결 이후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야권이 매주 탄핵소추안 재발의를 예고한 만큼 사실상 탄핵 정국이 장기화에 돌입한 상태인데요. '질서 있는 퇴진', '임기 단축 개헌' 등이 언급되고 있지만 사실상 '시한부 임기제'는 선례가 없어 예측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경험해 본 적 없는 책임총리제로의 전환까지 더해지면서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데 따른 국정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입니다.
실체 없는 책임총리제 "혼란·답답"
탄핵소추안 표결 후 이튿날인 8일 관가는 일요일이지만 밤새 긴급 상황 점검이 이어진 탓에 피로감이 큰 분위기입니다. 한 중앙부처 관계자는 "1급 이상 고위 공무원은 언제든 모일 수 있도록 '비상 대기' 상태이며 이하 공무원들은 자리를 지키는 수준"이라면서도 "전반적으로 공직사회에 긴장도가 높은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불안이 가중되는 데다 사실상 국정 운영을 책임질 사령탑이 없다보니 힘있는 정책을 펴기는 어정쩡한 상황인데요. 당장 이달 중 내년 주요 정책 방향을 발표해야 하는 부처들의 입장도 곤혹스러워졌습니다. 민주당이 매주 '탄핵 의결'을 예고한 상황이어서 자칫 사업들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현 시점에선 그동안 하던 사업을 '관리'하는 정도에 그칠 공산이 큽니다.
정부 부처 관계자는 "12월이면 2024년도 막바지인 만큼 성과를 내고 내년 업무계획을 정리해야 하는 바쁜 시기인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하루하루가 어떻게 진행될지 몰라 뉴스에만 눈이 가 있는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열심히 하던 일들이 중단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면서도 "충격의 여진이 크지만 정신을 차리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무위원들이 전원 사의를 표명한 데 대해서는 "총리가 엄중한 시국인데 각자 위치에서 자신의 직무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을 요구한 만큼 국무위원으로서의 역할들은 그대로 수행될 것"이라며 "사의를 표명했다고 출근을 안 하는 게 능사는 아니지 않냐"고 전했습니다.
책임총리제와 관련해서는 "사실 '책임총리제'라는 워딩만 있지 무슨 내용인지는 잘 이해가 안 돼 답답한 마음이 있다", "책임총리가 온다면 구체적으로 뭘 정해야 하고 어디까지 업무를 해야 할지 사례가 없다 보니 당분간 혼란이 있을 것 같다"는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다만 민생과 직결된 분야에 있어서는 흔들림 없는 업무 지시가 내려진 만큼 '행정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분위기입니다. 한 경제부처의 경우 "내수 침체로 자영업자들로부터 힘든 소리가 많이 나오다 보니 이 시국에도 회식이나 행사를 취소하지 말고 오히려 평소대로 하라는 당부의 메시지가 있있다"고 전했습니다. 최근 코레일 파업의 경우 협상은 결렬됐지만, 춥고 국민들이 힘든 상황에서 물밑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논의 결과를 브리핑하는 노연홍 위원장(사진=연합뉴스)
4대 개혁·양극화 타개, '좌초' 불가피
대통령실이 주도권을 잡고 추진했던 주요 정책은 '좌초'가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시사했지만 헌법에 명시된 법적 권한을 지닌 대통령이 사실상 업무를 중단하면 국정 컨트롤타워 기능은 마비될 수밖에 없습니다. '개혁 정부'를 표방하며 내세운 '4대 개혁'이나 '양극화 타개' 등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4대 개혁 중 핵심과제였던 의료개혁의 경우 비상계엄 포고령에 '전공의 처단' 문구가 담기면서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 내 의료계 단체가 참여 중단을 선언한 상태입니다. 의·정 갈등은 사실상 돌이킬 수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인데요. 정부는 예정대로 이달 말 '의료개혁 2차 실행 방안'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아직 공청회 날짜도 확정 짓지 못했습니다.
저출산·고령화에 대비한 연금·노동개혁도 시기를 놓쳤습니다. 연금개혁의 경우 국회에서 본격적인 논의도 못 한 채 공전하던 상황이었는데요. 노동개혁의 경우 정년연장·근로시간 개편도 정책의 향방을 가늠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교육개혁 핵심 과제인 인공지능·디지털교과서 도입 등도 앞날이 불투명해졌습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지난달 중순 임기 반환점을 돌면서 후반기 국정운영 과제로 '양극화 타개'를 띄웠습니다. '다시 뛰는 소상공인·자영업자, 활력 넘치는 골목상권'을 주제로 원래 이달 초 국정 후반기 첫 민생 토론회를 열고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었는데요. 12월 둘째 주에 접어들었지만 계엄 사태 이후 사실상 유야무야되는 분위기입니다.
국토부의 경우 정부 주도 '규제 완화' 기조 하에 8·8부동산 대책 이후 지속적인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내놨는데요. 연장선상에서 이달 제시할 예정이던 '1기 신도시 '이주대책'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한 상황입니다.
농식품부 역시 민주당이 단독으로 처리한 양곡법 등 농업 4법에 대한 대응을 멈췄고, 환경부도 온실가스 감축 목표 제시 등이 불투명해지면서 당분간 '안갯속 정국'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