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안수 육군참모총장(전 계엄사령관)이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제8차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진두지휘해 위헌·불법 비상계엄이라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육군참모총장(대장)과 특전사령관, 수방사령관, 방첩사령관(이상 중장) 등 최상층 육군 지휘부가 여기에 가담했습니다. 공수여단장(준장)과 707특임단장(대령), 수방사 군사경찰 특임단장(대령)에 이르기까지, 가담한 장교들은 모두 육사 출신입니다.
1979~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45년 만에 군이 정치에 다시 개입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군사 쿠데타는 끝났다고 다들 생각했죠. 아니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월3일 밤 계엄군 지휘관들한테 전화를 걸며 독려했습니다. 비상계엄을 건의했다는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은 "명령이다. 따르지 않으면 항명이다"라고 지휘관들을 다그쳤습니다. 대통령과 장관의 충암고 후배이며 계엄 기획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사건 사후에 "군인은 맞든 틀리든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고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한 다른 가담자들은 "부당한 계엄이라고 생각했지만 따르지 않는다는 생각을 당시 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담화를 할 때, 거의 모든 국민이 엉뚱하다고 즉각 느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장교들은 불법부당한 정도가 아니라, 국군의 사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을까요?
구체적인 전말은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겁니다. 여기서는 배경으로 군대 문화 측면을 알아보겠습니다. 군대 문화의 개념과 한국군의 문제점, 개선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김진형 해군 제독(예비역 소장)이 군대 문화에 초점을 맞춰 <대한민국 군대를 말한다>라는 책을 냈습니다. 이 책에서 미군은 장교 임관 때 "장교는 국내외 적으로부터 헌법을 수호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고 선서한다고 소개했습니다. 주한 미8군 사령관을 지낸 버나드 샴포 예비역 중장의 설명인데요. 장교는 무조건 복종하는 게 아니라 헌법적 가치에 기반을 두고 판단해 헌법적 가치에 어긋나는 명령은 '거부'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미군에는 불법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명확한 사례가 있습니다. 2020년 5월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인종 차별 금지와 경찰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을 동원해 진압하라고 지시했는데, 마크 밀리 미군 합참의장이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군은 시민을 진압하는 게 아니라 외부의 적한테서 국가를 방어하는 게 임무라고 밀리는 말했죠. 그는 합참의장 임기를 채우고 명예롭게 전역했습니다.
군대 문화 원리는 봉건왕조 시대 ‘군주의 군대’와 근대 민주공화정에서 '국민의 군대'가 다릅니다.
군주의 군대는 주권자인 군주한테 예속돼 군주 개인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조직입니다. 대개 귀족이 장교를 맡고 하급 병사는 농노나 용병으로 구성합니다. 장교는 하급 병사한테 판단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무조건 복종'·'절대 충성'을 요구합니다.
국민의 군대는 1776년 미국 시민혁명(독립전쟁) 당시 민병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시민군에서 시작했습니다. 왕정에서 벗어나 민주공화정을 세운 시민들이, 외국군 침공에 맞서 공화정을 지키려고 스스로 국민의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프랑스군은 오늘날에도 1789년 시위대가 바스티유 감옥을 부순 날을 국군의 날로 정해, 군사 퍼레이드를 벌입니다.
국민의 군대는 국민 개병제가 특징이며 장교와 병사 사이에 귀족과 평민이라는 신분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군대가 고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특별한 규칙과 방법을 택하는 점을 제외하면, 군대도 국가 다른 영역과 똑같이 헌법적 가치와 질서를 준수하도록 합니다. 군대가 시민사회와 동떨어진 '섬'이 아니라 시민사회 일원인 거죠.
군인은 '제복을 입은 민주시민'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미국이나 독일은 군인한테 이 개념을 교육하고 있죠. 군도 시민사회 윤리에서 예외 지대가 아니라는 문화 속에서, 미군 합참의장이 대통령 지시를 거부할 수 있었죠.
유럽 역사에서 프랑스 국민의 군대는 나폴레옹 지휘 아래 강력한 전쟁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당시 다른 나라 왕정 군대는 용병들의 탈영을 막으려고 야간 행군을 하지 못했습니다. 국민 의용군인 프랑스군은 밤에도 이동했습니다. 기동력이 뛰어났죠.
한국도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5조에 "군인은 국민의 군대로서 국가를 방위하고…"라고 명시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늬뿐입니다. 국민의 군대라는 개념을 이해하기는커녕 그 개념이 법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군인이 거의 없습니다. 군에서 국민의 군대 개념을 내재화하려고 교육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한국군에는 옛 일본 제국주의 군대 잔재인 '까라면 까라'·'무조건 복종'·'절대 충성' 문화가 여전히 강합니다. 역사적 배경이 있는데요. 정부 수립 뒤 육군의 1~16대 참모총장을 옛 일본군 문화에 익숙한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이 차지했습니다. 한국 육군이 무기와 교리는 미국식으로 바꿨지만, 군대 문화는 옛 일본군 스타일로 흘러갔습니다. 장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 생도 교육도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엘리트 육사 출신 장교들이 비상계엄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 데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김현태 특전사 제707특수임무단 단장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군 군대 문화를 개선해야 합니다. 우선, 12·3 계엄 사건 관련자를 엄정히 수사해 처벌해야 합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군사 정변을 일으켜 한때 성공했습니다. 혹시라도 군인들이 '성공하면 충신, 실패하면 역적'이라는 한탕주의를 믿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아울러, '군인은 불법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다'는 규정을 법률에 명문화해야 합니다. 현행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법률 제24조는 "군인은 직무와 관계가 없거나 법규 및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반하는 사항 또는 자신의 권한 밖의 사항에 관하여 명령을 발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했습니다. 같은 법률 제25조는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불법 지시를 금지한 현행 법령만으로도 불법 지시에 저항할 권리가 허용됩니다. 불법 지시를 거부할 권리를 법에 명시하면 효과가 훨씬 강력할 겁니다.
■필자 소개 / 박창식 / 언론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습니다. 한겨레신문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습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위기관리와 소통, 말과 글로 행복해지는 기술 등을 주제로 글을 쓰고 강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