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승혁 기자] 국내 상장사들의 기업가치 제고를 이끌겠다는 정부 기조 하에 한국거래소가 올해 9월 말 공개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KVALUE)가 되레 일반 종목보다 더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상승장에서 덜 오르고, 하락장에서 더 빠지는 흐름이 연속성 있게 나타납니다. 지수에 편입한 금융주들이 정치적 리스크로 큰 폭 하락한 영향인데, 정부 뜻대로 금융사 경영을 쥐락펴락하는 '관치금융'의 후과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불발된 뒤 첫 거래일인 지난 9일 코리아 밸류업 지수의 하락률은 2.82%로 같은 날 코스피(-2.78%)보다 0.04%포인트 더 하락했습니다. 이후 반등장이었던 지난 10~11일에는 코스피가 코리아 밸류업 지수보다 상승률이 0.34%포인트 높았습니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추종하는 12개 상장지수펀드(ETF)는 지난달 4일 상장한 이래 모두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고 있습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야마지 히로미(Yamaji Hiromi) 일본 증권거래소그룹(JPX) 대표와 만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사진=금융위원회)
정부·금융사 '상호의존성'에 밸류업도 정책 리스크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시총과 수익성, 주주환원 등 요건을 충족한 기업들을 엄선, 편입해 일반 종목들보다 높은 수익률을 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거래소 역시 올해 8월 말까지 기간별 수익률을 비교한 결과 밸류업 지수가 코스피200, KRX300 등 기존의 대표 지수 대비 양호한 성과를 시현했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지수 수익률은 포트폴리오로 편입된 기업들에 투자자금을 공급하는 ETF의 흥행 성패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핵심적인 지표입니다. 투자자금을 더욱 유치하기 위한 동기를 부여해 기업의 자발적인 기업가치 제고를 이끌겠다는 것이 거래소의 복안인데, 수익률이 일반 지수와 다를 바 없다면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의 부진은 주요 편입 종목인 금융주의 동향과 맞닿아있다는 분석입니다. 한국투자증권의 모기업인 한국금융지주는 9일 4.06% 하락하고 10~11일에는 각각 0.95%, 1.35% 상승하는 데 그쳤습니다. 같은 기간 우리금융지주도 -5.44%, +0.85%, +1.23%의 등락률을 나타냈습니다.
금융주는 윤석열 대통령 계엄 사태 이후로 외국인의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서 낙폭 깊은 하락세를 연출했습니다. '리딩뱅크'로 꼽히는 KB금융 주가가 지난 3일 10만1200원에서 이달 11일 8만5400원으로 15.61% 하락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원달러환율은 지난달 29일 1396.5원에서 이달 11일 1430.5원으로 올랐습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은행들이 보유한 외화부채의 환산액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배당의 기준점이 되는 보통주자본비율(CET1) 등 자본적정성도 하락합니다. 은행들은 건전성 지표를 관리하기 위해 위험가중치가 높은 대출을 축소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실적 하향 가능성이 커집니다.
은행주에 대한 투심이 회복되지 않을 경우 밸류업 지수 역시 악영향을 받게 됩니다. 강송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주가가 많이 오른 은행 업종의 경우 밸류업 추진 약화 외에 국내 경기 부진 및 대출 감소와 예대마진 축소 우려가 더 큰 주가 하락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정부와 금융사 간 얽힌 상호의존성으로 정책 리스크가 전이돼 밸류업 지수의 난국을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부는 금융사 경영진 인사에 개입하고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정책에 동원하며, 금융사 역시 정부의 후광에 기대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밸류업 정책으로 저평가를 해소하는 수혜를 보고 있는 현실입니다.
'자본비용' 간과…한국 밸류업 성장성 모호
또, 밸류업 지수에 순이익 증가율이 코스피200지수보다 낮은 고평가 종목들이 다수 편입된 것도 문제로 꼽힙니다.
한국 정부의 밸류업 정책은 지배구조 2위·주가 상승률 3위를 기록한 일본을 벤치마킹한 것입니다. 최근 금융당국 수장인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야마지 히로미 일본 증권거래소그룹(JPX) 대표와 만나 밸류업 경험을 교류하는 등 정책 안착에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으나, 밸류업을 제대로 모방하기보다 겉시늉만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구체적으로 자본비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진단입니다.
도쿄증권거래소는 밸류업 수요 기업에 '자본비용을 정확하게 파악한 후 수익성과 자본효율성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 미만으로 저평가된 기업들은 자본비용이 자기자본이익률보다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다수가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강영기 고려대학교 법학과 교수(금융법센터 연구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일본은 주가와 자본비용을 경영에 감안하도록 밸류업 정책을 폈고, 자본조달 비용이 낮은 기업이 가치가 높은 기업으로 제대로 평가되면서 투자자들이 매력이 있다고 보고 들어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강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우량기업들도 PBR이 1배가 안 되는 곳도 많고 앞으로는 더 잘할 것인지 더 힘들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명확치 않아서 다른 투자자들이 선뜻 들어오기 쉽지 않다"며 "일본에서는 밸류업 ETF를 구성할 때 도요타 등 대기업들은 못 들어간 반면 우리는 삼성전자부터 현대차까지 다 집어넣었는데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다음주 밸류업 지수 구성종목을 추가적으로 변경하고 밸류업 공시를 한 종목들로만 꾸릴 예정"이라며 "지수를 단기간보다 장기간의 호흡으로 봐달라"고 설명했습니다.
강승혁 기자 ks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