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이지유 기자] 미국발 환율 쇼크에 식품업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미국이 기준금리 인하의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을 시사하면서 원·달러 환율은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1450원을 돌파하며 요동치는 상황인데요. 이달 초부터 이어진 탄핵 정국 리스크에 이어 이번 미국발 악재까지 더해지면서 환율 불안정성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을 전망입니다. 이는 원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식품업계에 제품 가격 상승 압력 확대는 물론, 내년 수출 전략의 재수정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미 연준 매파적 메시지…요동치는 환율
20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19일 원·달러 환율은 전일 오후 종가(1435.5원)보다 16.4원 오른 1451.9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종가 기준으로 환율이 1450원을 돌파한 것은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3월 13일(1483.5원) 이후 15년 9개월 만에 처음입니다.
이 같은 환율 급등은 이달 초 불법 계엄 사태로 이어진 우리나라의 정치·경제 불안이 지속됐고,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지연 가능성 예고가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18일(현지시각)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추며 3회 연속 금리 인하를 단행했는데요. 문제는 연준이 매파적 메시지를 시장에 보냈다는 점입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준금리의 인하를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지난 9월만 해도 점도표에서는 내년에 0.25%포인트씩 총 4번의 금리 인하가 예상된 바 있는데요, 이번 점도표에서는 0.25%포인트씩 2번 이하의 금리 인하가 점쳐졌습니다. 3개월 새 금리 인상 가능성이 절반이나 줄어든 겁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9월만 해도 달러당 1300원대 초반 수준에 형성됐지만,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으로 1400원을 넘어서며 불안한 행보를 보인 바 있는데요. 이달 초 불법 계엄 및 탄핵 리스크까지 더해지면서 환율은 널뛰기를 반복, 1400원대 중반 수준에서 고착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정국 리스크가 이어지며 강달러 현상은 우리 경제 전반을 짓누르고 있는 형국이었기에, 미 연준의 매파적 기조에 따른 원화 약세는 유통 시장에 치명적이라는 분석입니다. 특히 심리적 마지노선인 1450원 선을 넘어 1500원대를 뚫을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면서 업계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원재료 가격 폭등 가능성…업계 타격 불가피
원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식품업계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특히 농림축산식품부의 '2023년 양정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49.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 수준을 기록했는데요.
이처럼 식량자급률이 낮은 우리 입장에서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원재료 수입 가격이 올라 제품 원가 상승 압박을 받게 됩니다. 빵, 라면, 고기, 과일 등 먹거리 전반이 수입 원재료 가격 인상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로 인한 식품업계의 타격 역시 불가피합니다.
게다가 전 세계적인 이상 기후 여파로 세계식량가격의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는 점도 문제입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27.5로 전월 대비 0.5% 상승했는데요. 이는 지난해 4월 이후 1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환율 상승에 따른 부담은 식품 산업에만 국한된 이슈는 아니다. 하지만 식품 기업들 중에는 원부자재를 수입하는 경우가 워낙 많아 환율에 따른 압박은 상당할 것"이라고 관측했습니다. 이어 "대부분 식품사들의 경우 수개월치 원재료 발주 및 수매 작업이 미리 이뤄진다. 때문에 현재 당장 큰 문제를 겪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강달러 현상이 장기화할 경우 수입 원재료 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국내 정치 상황이 여전히 불안하기 때문에, 강달러 현상 역시 지속될 것"이라며 "이에 따른 부담으로 식품업체들은 손해를 낮추기 위해 가격을 올리는 상황이 발생할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강달러 현상이 고착화할 경우 'K-푸드'로 대변되는 식품업계 수출 전략의 수정 역시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환율 상승은 원재료뿐만 아니라 해상 운송 운임 비용의 상방 압력으로도 작용한다"며 "불과 지난달만 해도 환율을 1450원 수준으로 예상하고 내년 사업 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다. 게다가 향후 1500원대를 뚫을 가능성마저 제기돼, 수출 전략을 전면적으로 다시 조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의 과자 코너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이지유 기자 acech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