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차철우 기자, 김태은 인턴 기자] 전례 없는 다중 악재에 한국 경제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국내 내수 침체와 수출 증가세 둔화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내달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은 한국 경제에 또 다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비상계엄·탄핵 정국 속 정치적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안정하던 원화값은 국내 금융시장을 덮쳤습니다. 1400원대의 환율은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고, 1%대 저성장의 늪은 눈앞에 예고되고 있습니다. 대내외 악재가 맞물리는 상황에서도 이를 헤쳐나갈 리더십 부재마저 겹치면서 한국 경제의 위기감이 짙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천장 뚫린 원·달러 환율…1450원대 '훌쩍'
20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 주간 거래 종가는 전 거래일보다 0.5원 내린 1451.4원에 장을 마감했습니다. 이날 환율은 1450.0원에 개장하며 전날(1453.0원)에 이어 이틀 연속 1450원대에서 출발했는데요. 장중 변동폭이 확대되면서 1450원 초반대에서 등락을 거듭했습니다. 앞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 19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 조절로 1451.9원에 장을 마감하면서 15년9개월 만에 역대 최고치에 도달한 바 있습니다.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서만 50원 넘게 상승하며 고환율 흐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달 3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촉발된 고환율은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데요. 최근엔 1430원대에서 움직였지만, 전날 미국 연준발 충격이 겹치면서 심리적 마지노선인 1440원대가 바로 무너졌습니다. 고환율은 외국인 투자금 이탈을 가속화시키고 물가 상승, 경기 침체를 부추길 수 있는 만큼, 연말 한국 경제에 큰 악재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정부는 외환 수급 상황이 불안해지자 김범석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이날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 콘퍼런스콜을 열고 '외환 수급 개선 방안'을 확정·발표했습니다. 정부는 국내은행 등의 선물환포지션 한도를 상향하고, 외국환은행 거주자가 원화용도 외화대출을 받을 수 있는 요건을 완화하기로 했습니다. 이 밖에 필요시 환리스크 부담이 낮은 수출 기업으로 원화용도 외화대출 허용 대상을 특정해 추진할 수 있다는 단서도 달았습니다.
문제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국내 금융시장이 대외 변수로 더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시장에서는 향후 환율이 더 치솟을 가능성도 나옵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인상 공약이 실현되면 내년 1월에라도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설 것"이라며 "한국의 정치 불안이 종료될 때까지 이례적인 고환율이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20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보호무역주의 강화·잠재성장률 하락…출구가 안 보인다
여기에 내년은 글로벌 통상·무역에 대전환의 시기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을 상대로 6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하는 등 관세 전쟁을 예고했는데요. 취임과 동시에 미·중 갈등 심화는 물론, 미국을 상대로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 역시 안심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뿐만 아니라 내년 1%대 저성장이 예고되면서 한국 경제의 성장 경로도 가시밭길입니다. 실제 12개 국내외 주요 기관이 내놓은 내년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 평균치는 1.9%인데요. 산업연구원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1%로 정부(2.2%) 다음으로 높은 전망치를,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금융연구원,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이 2.0%로 제시했습니다. 이어 한국은행, 아세안+3 거시경제기구(AMRO)가 1.9%, 골드만삭스(1.8%), 모건스탠리, JP모간, 현대경제연구원 등이 1.7%를 제시하면서 1%대가 대세로 자리 잡은 모양새입니다.
더욱 문제점으로 꼽히는 것은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도 인구 고령화와 생산성 감소로 인해 2025년부터 5년간 연평균 1.8% 수준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과 향후 전망'에 따르면 향후 5년간(2025∼2029년)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연평균 1.8% 수준으로 추정됐습니다. 특히 혁신 기술 개발이나 노동 정책 개선 등 별다른 조치 없이 현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40년대에는 잠재성장률이 0%대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암울한 관측마저 나왔습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내년 우리나라 경제는 전반적으로 전망이 어둡다"면서 "수출 둔화 우려는 물론, 고환율 현상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습니다. 그러면서 "내수 경기가 쉽게 살아나지 못한 상황에서 탄핵 정국까지 이어지면서 국내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진단했습니다.
이 교수는 "현재로서는 불확실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관련해서도 정부가 해야 할 일, 기업이 해야 할 일을 나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 수출이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돌파하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20일 서울 명동 환전소에 환율이 표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박진아·차철우 기자, 김태은 인턴 기자 toyou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