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박혜정 기자] 올 한해 10대그룹은 대체로 전년보다 성장했지만 경제력 집중과 양극화란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지난해 반도체 기업 실적이 바닥을 찍은 탓에 올해는 그 기저효과로 인해 성장 의미가 희석되면서 부작용이 부각됐습니다. 여기엔 윤석열 정부에서 수출경제를 위시하고 그로 인한 낙수효과를 명분으로 기업집단과 지배주주에 대한 감세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한 영향도 미쳤습니다. 10대그룹은 자산이 연초보다 5.2% 증가했는데 실적 기저효과, 신규 투자 지속, 부채 증가 등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반도체, 자동차 등 특정 수출산업 의존도가 높아지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커지는 등 산업 양극화와 경제력 집중 수치도 심화된 해였습니다.
반도체·자동차 수출 비중 급증
27일 <뉴스토마토>가 10대그룹 상장사(금융사 제외) 재무 데이터(연결 기준)를 취합한 결과, 이들의 총 자산은 3분기말 기준 2823조5751억원으로 2023년말 기준 2683조952억원보다 5.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금액으론 140조4798억원 증가했습니다. 삼성전자가 홀로 35조원이나 증가해 압도적입니다. 둘째로 증가액(23조원)이 높은 현대차와도 12조원이나 차이납니다. 이어 한화 12조원,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 11조원 순으로 자산 증가액이 컸습니다.
사업 규모가 커진 것은 긍정적이나 대규모 기업집단의 경제력 집중이 심해진 것은 부정적 요소입니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10대그룹 공정자산 비율은 2021년부터 작년 회계 결산 기준 8%포인트 정도 오른 추이를 보였습니다. 이런 경제력 집중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벌어지는 데다 특정 업종만 성장하게 되는 산업 양극화로도 연결되고 있습니다. 국내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 등 전기전자와 자동차 및 차부품 수출 합산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41.6%였습니다. 올 11월엔 45.5%까지 급증했습니다(관세청 데이터 분석). 또 지난 3분기 대기업 매출은 4.7% 증가한 데 비해 중소기업은 2.4% 증가에 그쳤습니다(한국은행 경영분석). 영업이익률은 대기업이 6%, 중소기업은 4.8%입니다. 세전순이익률은 대기업이 5.9%로 전년동분기 5.3% 대비 상승했으나, 중소기업은 같은 기간 4.1%에서 3.9%로 하락했습니다. 자금 운용과 환헤지가 유리한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이 처한 환경이 좋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금리가 장기화된 상황에서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추는 데도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이 유리합니다. 제품 수출이 주력인 대기업과 달리 원자재를 수입해 중간재를 만드는 중소기업은 고환율에도 시달립니다.
10대그룹 상장사들의 총 자본(순자산)은 3분기말 1409조7855억원으로 작년말보다 6.1% 증가했습니다. 금액으론 80조7779억원 늘었습니다. 역시 삼성전자가 22조6034억원 증가액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작년 실적이 부진했던 만큼 기저효과가 컸습니다. 삼성전자 순이익이 3분기 누적 기준 전년동기대비 17조5546억원 증가했습니다. SK하이닉스는 흑자전환했습니다. 한켠에선 중복상장 이슈가 지속되는 와중에도 HD현대마린솔루션과 포스코DX 등 10대그룹 계열사의 기업공개로 신규 자본 유입이 이뤄졌습니다.
기업집단 자산, 경제성장률 따로 논다
10대그룹 상장사 부채는 3분기말 총 1413조7896억원으로 작년말보다 4.4% 증가했습니다. 증가액은 59조7019억원입니다. 부채가 늘어난 데는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습니다. 기업들은 생성형 인공지능(AI), 전기차, 미국 현지 공장 등 신규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 수요가 높았습니다. 생성형AI발 호황을 누린 SK하이닉스와 달리 삼성전자가 3분기 어닝쇼크를 보이는 등 실적 편차도 컸습니다. 실적이 부진한 경우 운영자금과 재투자비용을 조달하고자 차입금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이처럼 10대그룹의 자산은 늘었지만 국내 경제성장률은 부진합니다. 공정위에 따르면 자산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 수는 2021년 71개였는데 올해 88개가 됐습니다. 규모가 큰 기업집단 수가 늘었는데 성장률은 꿈쩍 않습니다. 최근 한국은행은 한국의 경제 잠재성장률이 2000년대 초반 5%부터 2016년 이후 2%대로 떨어졌는데 2026년까지도 그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3일 “내년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소폭 밑돌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내년 1%대 성장률을 시사한 것입니다.
경제성장이 수반되지 않는 경제력 집중은 부작용만 부각됩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경제력 집중 문제는 황제경영과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위한 내부거래 그리고 재벌 세습이라는 기업이나 기업집단 내부의 문제를 넘어선다"며 "재벌의 과도한 수직계열화와 일감 몰아주기는 도전 기업이 혁신할 기회조차 빼앗고, 혁신 경쟁의 소멸은 결국 재벌 기업의 혁신 유인도 감소시키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재영·박혜정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