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실손보험 강제전환…1·2세대 버텨도 될까?

보험료 거의 완납…실손의료비 항목 끝까지 남아
적립금으로 인상분 충당…바닥나면 특약보험료 내야
보험료 선납 꼼수 안 통해

입력 : 2025-02-01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정부가 실손보험 초기 가입자들을 새로운 5세대 실손보험으로 대거 갈아타게 만들겠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인센티브 제공으로도 안 될 경우 강제전환시키겠단 방침까지 밝혔기 때문입니다. 1세대 실손보험이나 2세대 중 초기에 가입한 경우라면 보험료를 거의 완납해 협박 수준의 정부 방침에서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험만기 전까지 실손 보장에 해당하는 보험료를 납입해야 하는 구조라서 마냥 버티기도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당근·채찍’ 앞세워 1·2세대 실손→5세대 전환 유도
 
전 국민 10명 중 8명꼴로 가입해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이 또 한 번의 변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9일 열린 토론회에서 ‘비급여 관리 개선·실손 의료보험 개혁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에서 나온 실손보험 개혁 방안이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치료비는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진료비 항목인 급여부분과, 나머지 비급여부분(C)으로 구분합니다. 상급 병실료, MRI 촬영, 초음파, 도수치료 등이 대표적인 비급여 항목입니다. 이중 급여부분은 다시 건강보험공단(건보) 부담분(A)과 본인부담분(B)으로 나누는데요. 건보에서 부담하는 A를 제외한 B와 C 부분을 실손보험에서 책임집니다. 단 실손보험이 어느 정도까지 보장하느냐가 세대별로 다릅니다. 
 
정부는 도수치료나 비급여 주사 등의 비급여 치료에 대해, 피보험자 본인의 치료비 부담률을 현행 평균 20%에서 90% 이상으로 대폭 올리는 5세대 실손보험을 출시해 ‘의료 쇼핑’ 수준의 과도한 비급여 치료행위를 막겠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실손보험은 자동차보험과 함께 손해보험사에 조 단위 적자를 안기는 골칫거리로 보험업계는 물론 의료계 내에서도 대수술의 필요성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개혁안의 실행 방법입니다. 특위는 자기부담금이 없거나 부담률이 낮은 1세대와 2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들의 계약을 재매입해 5세대 실손보험에 새롭게 가입시킬 방침인데요. 5세대는 자기부담률이 높고 보장도 줄어들기 때문에 가입자들에겐 전적으로 불리합니다.
 
그래서 1600만명에 육박하는 1·2세대 실손 가입자들의 자발적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당근과 채찍이 제시됐습니다. 대표적인 당근책은 파격적인 인센티브입니다. 5세대로 전환할 경우 지금까지 납입한 보험료 적립액에 추가로 현금을 지급한다는 것입니다. 4세대 실손보험이 등장할 당시에도 납입보험료의 50%를 추가 지급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했지만 갈아탄 가입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엔 인센티브 규모를 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의료체계 정상화를 위한 비급여 관리 및 실손보험 개혁방안 정책토론회'가 열리고 있다.(사진=뉴시스)
 
보험료 5만원이 1만2800원보다 ‘싸다’
 
문제는 그럼에도 전환하지 않고 버티는 계약에 대한 대응입니다. 정부는 법을 개정해서라도 강제전환시키겠다는 분위기입니다. 기계약자들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보험사와 개인 간의 사적 계약을 법 개정을 통해 소급해서 무효화하는 것이 가능할지 논란이 남습니다. 개혁안 발표 후 무리수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일단 ‘강제’라는 표현은 주워담았지만 이번엔 ‘보험료 폭탄’이란 위협이 등장했습니다. 실손보험 가입 후 보험금을 거의 청구하지 않은 우량 계약자들이 보험료가 싼 5세대로 갈아타고 나면, 남은 계약자들은 보험료 갱신 때 폭탄 수준의 보험료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손보험은 세대가 진화되면서 보험료가 계속 하락한 것은 사실입니다. 세대별 월보험료를 비교해 보면 1세대가 평균 5만2800원으로 2세대 3만1735원보다 많습니다. 또 3세대는 1만9161원, 4세대 1만2795원으로 평균 보험료는 계속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월보험료만 비교해 보험료가 싸다 비싸다 평가할 수 없는 것은, 납입보험료 대비 보장 규모를 비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1세대 실손보험이 낸 돈에 비해 가장 큰 보장을 받기에 실질 보험료는 가장 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험소비자에게 가장 좋은 보험은 ‘오래 전에 가입한 보험’이라는 말이 여기에도 적용됩니다. 실손보험료 인상률을 봐도 1·2세대보다는 3세대, 4세대가 월등히 높습니다.
 
법을 개정해도 소급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관건은 갱신 보험료 폭탄입니다. 1·2세대 실손보험은 보험계약 자체는 보험만기까지 갱신할 필요가 없지만 보험료는 주기적으로 갱신해 변하기 때문입니다.
 

(표=뉴스토마토)
 
‘거의 다 냈어요’ 그래도 폭탄 우려 남아
 
1세대 실손보험은 2009년 9월까지 판매됐습니다. 당시 실손보험은 80세 보장이거나 100세 보장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보험기간은 80세, 100세여도 보험료를 보험만기 때까지 납입하도록 설정한 계약은 흔치 않습니다. 보험만기까지 보험료를 계속 내는 것을 전기납이라고 하는데요. 당시 전기납 계약은 흔치 않았고 대부분은 10년납, 15년납, 20년납 등 10~20년 동안 보험료를 몰아서 내는 것으로 설정한 계약이었습니다. 
 
2009년 9월에 막차로 1세대 실손보험에 가입했고 10년납을 선택한 계약자라면 이미 보험료를 완납했을 겁니다. 20년납으로 가입한 경우에도 5년 주기 갱신 계약은 가입 15년이었던 지난해에 마지막 남은 5년치 보험료가 정해졌습니다. 이에 5세대 전환에 응하지 않아 보험료 인상 폭탄이 떨어져도 그와는 무관할 것처럼 보입니다. 남은 납기 지금의 보험료를 내고 80세든 100세든 만기까지 보장받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보험계약서에 명시된 보험료 납입기간이 보험료 전액에 해당하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험계약은 주계약과 특약으로 구성되며, 특약보험료는 다시 여러 보장항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실손보험의 경우 특약보험료 중 ‘○○의료비’로 표기된 항목이 실손의료비에 해당하는데 이 부분은 보험만기 때까지 내야 합니다. 금액도 주계약보험료보다 많습니다. 
 
1세대 실손 가입자라면 이미 5년 주기로 보험료가 갱신됐을 텐데, 여기엔 실질적인 실손보험료 증액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보험사 측에서 갱신보험료 인상 충격을 줄이기 위해 계약자가 이미 납입한 보험료 적립금에서 일부를 할애해 충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년 보험료 납입기간이 끝난 후에도 실손의료비 항목의 특약보험료는 남아 있는 보험료 적립금에서 충당됩니다. 그리고 이 적립금이 바닥나면 그때부터는 다시 실손의료비 항목의 보험료가 청구되는 것입니다. 나이가 늘어난만큼 보험료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남은 보험료를 한꺼번에 납입하는 선납할인제도를 활용해 보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보험사들은 다음번 보험료 갱신 시점까지 남은 기간에 대해서만 선납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갱신보험료가 급증할 경우 이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정부의 강제전환과는 상관없이 갱신보험료를 무시하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1·2세대 실손보험이 5세대보다 유리한 것은 사실이므로 정부의 방침과 추후 인센티브 규모 등이 발표될 때까지 결정을 미루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로 갱신 보험료가 급증하더라도 그때 가서 기존 보험을 해지하고 새로 5세대 실손보험에 가입해도 상관없으므로 지레짐작해 먼저 갈아타기에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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