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김태은 인턴기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반도체특별법의 주요 쟁점인 '주 52시간 근무 예외 조항'(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 검토 의사를 보이며 전향적인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조기 대선 국면에 접어들자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하며 연일 '우클릭' 행보에 나서고 있는 건데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수출 환경 악화와 중국 '딥시크(Deepseek) 쇼크'까지 겹치자 반도체특별법 및 추가경정예산안(추경) 등을 추진하며 중도층 표심 구애에 나선 모습입니다. 다만 당내 일각에서는 중도 외연 확장을 노리다 자기부정의 덫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주 52시간'도 '기본소득'도 입장 선회
4일 이 대표의 주 52시간 관련 발언을 종합하면 최근 달라진 입장이 명확해집니다. 이 대표는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반도체특별법 토론회'에 좌장으로 참석해 "특정 중요 산업의 특정 연구개발분야 중에서도 고소득 전문가, 이들이 동의할 경우에만 예외로 몰아서 일할 수 있게 해주자는 게 왜 안되느냐 하니 할 말이 없더라"고 말했습니다. 사실상 주 52시간 예외 조항에 찬성한 셈입니다.
과거 이 대표는 "대통령실이 주 52시간제를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하고, 여당도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민주당은 그런 제도 개악에 절대 협조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등 주 52시간 유연화에 줄곧 반대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인 지난달 2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반도체특별법에 관해) 필요한 입법 조치를 과감하고 전향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며 입장을 선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기 대선을 염두에 뒀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우클릭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정부·여당은 4일 국회에서 '반도체특별법 주 52시간제 특례 도입을 위한 당정협의회'를 열고 "반도체특별법이 2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 대표의 입장 변화와 관련해 "실용주의 코스프레는 하고 싶고 민주노총 눈치는 봐야 하니 두루뭉술한 이야기만 늘어놓으며 결론은 내지 않았다"며 "과거 금융투자소득세 논란에서 봤던 이재명식 '두 길 보기'에 매우 유감"이라고 직격했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자신의 간판 공약인 '기본소득'까지 내려놓으며 우클릭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앞서 그는 지난달 31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나 여당이 '(민주당이 주장하는) 민생회복지원금 때문에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라면 민생회복지원금을 포기하겠다"고 말한 바 있는데요.
이어 지난 1일에는 "정부가 추경에 대대적인 인공지능 개발 지원 예산을 담아 주신다면 적극적으로 의논하며 협조할 것을 약속드린다"며 "양보해야 하는 게 있으면 양보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 적용제외 시도 규탄 및 논의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뉴시스)
최종 합의까진 '진통 불가피'…당내 반발 우려
여야정은 이날 오전 국정협의회 2차 실무협의를 통해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국민연금 개혁, 반도체 특별법과 '에너지 3법'(전력망확충 특별법, 고준위 방폐장법, 해상풍력 특별법) 등을 비롯한 민생 법안을 논의 테이블에 올렸습니다.
정부·여당에서는 추경에 대한 목소리도 내고 있습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최고위에서 "추경 요인이 있을 때 여야정 협의를 통해 추진하자는 입장"이라고 밝혔습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정치권 등에서 제기하고 있는 추가 재정투입에 대해 '국정협의회'를 열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수 있기를 요청한다"고 추경에 부정적이었던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났습니다.
반도체특별법과 추경 편성 등을 논의하기 위한 정부와 국회, 여야 대표 4자 회담이 다음 주 초 열릴 예정인데요.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인 이 대표가 조기 대선을 앞두고 시험대에 오를 전망입니다. 결과물은 '성과' 입니다.
하지만 최종 합의까진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민주당의 전통 지지층인 노동계의 반발이 큰 상황입니다. 양대 노총은 지난 3일 반도체특별법 정책토론회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정권 창출에만 혈안이 돼 친기업·반노동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반도체특별법 처리 여부는 향후 이재명 대표의 대선 행보의 척도이자 가늠자가 될 것"이라며 "양대 노총과 2500만 노동자 동지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강력하게 경고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추경의 경우 여야가 시기나 규모, 사용처 등을 둘러싸고 입장 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이달 반도체 특별법, 첨단 에너지 3법 등을 최우선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민주당은 추경과 민생 법안 처리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여당은 추경을 두고 재정 확장 정책에 우려를 표할 뿐만 아니라 이재명표 예산 투입이라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1분기 예산 조기 집행 효과를 지켜본 이후, 구체적인 추경 규모와 내용을 여야정협의체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한동인 기자·김태은 인턴기자 xxt19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