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발 안 먹히는 이복현 금감원장 '레임덕'

'무관용 원칙' 강조 불구 감독 기조 약화
임기 말 인적·기관 제재 부담

입력 : 2025-02-13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올 들어 정기검사 발표, 금감원 업무계획 등을 통해 금융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말발'이 먹히지 않는 형국입니다.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서도 관여하기 어렵다거나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회피성 발언을 반복적으로 내놓고 있는데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데다 대통령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이 시작됐다는 평가입니다. 
 
금융권 인사 큰 역할 못해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은 임기 초반 검찰 출신이자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으로 역대 어떤 금감원장보다 강력한 리더십을 펼쳤습니다. 금융위원장 위에 금감원장이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금감원장의 임기가 4개월 가량 남은 지금 금감원 수장인 이 원장의 입김은 많이 약해진 모습입니다. 
 
레임덕에 빠진 금감원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금융권 인사입니다. 지난해 말 농협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농협금융 회장을 비롯해 9개 금융 계열사 중 6곳의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했는데요.
 
올해 취임 2년 차를 맞아 농협금융 계열사에 대한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의 영향력이 한층 더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금감원은 지난해 농협금융지주·은행이 포함된 정기검사에 착수하면서 대주주(농협중앙회)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를 점검하겠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농협중앙회의 영향력이 여전한 것이 보이는데도 금감원은 절차상 규정 준수 요구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원장이 '농협 조직의 특수성이 존재한다'는 식의 발언을 내놓는가 하면 금감원 내부에서도 경영승계 과정에서 지배구조법상 절차적 문제만 들여다보겠다고 물러선 분위기입니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086790) 회장의 연임과 관련해서도 이 원장은 선임 절차의 흠결을 지적하면서도 "당국이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하나금융은 앞서 지난해 12월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개정해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만 70세를 넘겨도 임기 3년을 보장하도록 했습니다. 새 규정에 따라 1956년생인 함 회장은 내달 정기 주주총회에서 연임이 최종 확정되면 최장 3년 동안 임기를 보장받습니다.
 
그간 이 원장은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시도에 대해 엄중한 기준을 들이대왔습니다. 사모펀드 사태의 간접적 책임부터 사법리스크까지 따지면서 CEO 경영승계를 압박했는데요.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주요 금융지주사 회장들은 연임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금융지주사들은 과거의 인사 행태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어 금감원의 레임덕이 왔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임기가 4개월 가량 남은 가운데 레임덕 현상이 불거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은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 금감원에서 열린 2025년 업무계획 기자간담회에 이복현 원장이 참석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법 근거 잘 따져라" 움츠린 금감원
 
당국이 관여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거나 금융사 경영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이 원장의 발언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감독 기조가 급격히 위축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일례로 과거 분쟁 소송 등에 집중하면서 업무 관여도가 높지 않았던 금감원 법무실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이 원장이 감독·검사 부서의 보고를 받기 전에 "법무실 검토부터 받으라"고 권고한다고 알려졌는데요.
 
월권 시비 등 법률적 리스크가 불거지거나 분쟁에 휘말릴 수 있는 사안은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분위기입니다. 농협금융 건의 경우에도 현실적으로 농협을 직접 컨트롤하는 주무부처는 금감원이 아닌 농림축산식품부입니다. 농협 조직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있는 금감원의 기조도 월권 시비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우리금융지주(316140)에 대해서는 전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문제를 엄격히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도 우리금융의 보험사 인수에 대해선 금융위원회·우리금융과 충분히 소통하겠다며 다소 유보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현 경영진에 대한 '표적검사'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이 원장은 "상대 금융사(우리금융)를 백안시하거나 척결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당초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재임시 발생한 부당대출 건이 상당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임 회장 등 경영진을 상대로 한 인적 제재까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바 있습니다. 다만 금감원 내부에서도 전임 회장 시기부터 발생해 온 부당대출 책임을 현 경영진에게 묻는 건 무리라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금융사고 책임을 회장 등 경영진에 묻는 책무구조도가 도입되긴 했지만, 이전에 발생한 금융사고에 대해 소급 적용을 할 수 없습니다. 금감원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제재를 모두 가하더라도, 과도한 인적 제재가 나올 경우 법원에서 처분이 취소되는 사례가 발생한 바 있어 처분이 무의미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금감원장이 '매운맛'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금융권에 강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혀왔지만 한계에 봉착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정기검사 결과 브리핑이나 금감원 업무계획을 보면 그간 벼른 것에 비하면 다소 회피성 발언이 나오고 있다"며 "탄핵 정국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권 명운이 걸려있는 만큼 장악력이 예년 같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9월24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원, 삼성전자·5대금융지주, 중소기업 ESG 지원 업무협약식에서 이복현(가운데) 금융감독원장고 금융지주 회장들이 참석한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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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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