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박혜정 인턴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한 대로 주요 무역수지 적자국에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결정하면서 관세 위협이 더 가중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앞서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로 트럼프발 관세 폭풍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간 바 있습니다. 여기에 더욱 포괄적인 ‘상호 관세’ 부과 방침으로 지난해 역대급 대미 수출 실적을 기록한 재계는, 시계 제로의 초비상 상황에 처했습니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의 카운터 파트너가 없는 현 정국은 대미 협상력을 제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타국과의 역차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는 13일(현지시간) 무역 파트너들의 관세 및 비관세 요인을 고려해 이르면 4월 세계 각국에 맞춤형 상호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상호 관세는 각국이 미국 제품에 적용하는 관세율만큼 미국도 상대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상태지만, 앞선 트럼프 대통령의 “예외 없다”는 언급 등 직선적 행보를 고려하면 관세 폭풍을 비껴 가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여기에 한국은 미국의 대표적 무역 흑자국인 탓에 트럼프 정부가 ‘맞춤형’ 전략을 통해 관세를 더 부과할 수 있다는 전망이 많습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호 관세가 보편 관세보다 더 위협적”이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어떤 특정 산업에 대한 것이 아니라 무역 적자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기에 적자가 큰 우리나라에 상대적으로 관세를 많이 부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습니다.
한아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수석연구원도 “상호 관세는 상호주의적 차원에서 비관세 무역 장벽이나 보조금 등 종합적으로 보겠다는 것”이라며 “그냥 보편 관세를 부과하는 것보다 파급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이날 발표한 상호 관세 정책에는 비관세 장벽도 고려 대상에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비관세 장벽은 규제와 환율, 정부보조금 등 관세를 제외한 모든 무역제한 조치를 총칭하는 개념인데, 트럼프 행정부가 비관세 장벽으로 문제 삼을 것으로 보이는 주요 산업분야는 ‘자동차’로 관측됩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매년 3월경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TE)를 발간해 비관세 장벽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 온 바 있습니다.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는 “미국 자동차 제조업들의 한국 자동차 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주요 우선 과제”라고 명시하면서 한국의 자동차 배기가스 부품(ERC) 인증 규제가 모호하고 환경 관련 규제로 수출이 지연되고 있음을 문제 삼았습니다. 재계에서는 미국이 오는 3월 발표될 보고서 등을 토대로 무역 정책을 검토해 4월부터 상호 관세 정책을 본격 시행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상호 관세 부과 시점이 4월 이후로 예고된 만큼 협상 시한이 남은 점은 변수입니다. 이런 가운데 정부와 민간 차원의 대미 협상도 본격화합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오는 15일 독일에서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개최하고, 박종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도 17일 워싱턴DC를 방문해 미국 통상 당국자를 만나 의견을 나눌 예정입니다.
재계도 민간 사절단을 꾸리는 등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이끄는 ‘대미 통상 아웃리치 사절단’은 오는 19~20일 워싱턴DC를 공식 방문할 예정입니다.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도 이달과 다음달 사이 미국을 방문해 관세 정책과 관련 논의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카운터 파트너’가 없는 현재의 정상 외교 공백 상황은 한국의 대미 협상력을 제약시키는 요인입니다. 이에 정상이 활발히 협상을 하고 있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역차별 우려 가능성도 나옵니다.
한 연구원은 “4월달에 관세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에 공식 루트가 아닌 실무선에서라도 미국 행정부가 한국에 어떤 부분에 불만을 갖고 있고 어느 정도까지 수용이 가능한지 점검을 하고 협상을 시도하는게 급선무”라며 “미국에 생산 시설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 점을 어필하고, 미국산 LNG(액화천연가스), 항공기 등 구매 카드를 내세우면서 전체적인 무역적자를 우리가 관리해 나가겠다는 정도의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반도체 공정 모습 (사진=SK하이닉스)
트럼프 삼성 콕 집어 "예외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 관세와 관련 애플과 ‘삼성’을 콕 집어 개별 품목에 예외는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중국에서 생산되는 제품에 관세 면제를 해줬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이야기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는 중국을 겨냥한 관세였기에 삼성은 한국에 있어 관세를 낼 필요가 없었다. 또 애플이 중국에서 많은 제품을 생산하기에 그렇게 (예외를 주도록) 했다”며 “당시엔 그게 공평하기 때문에 그렇게 했지만 이번에는 모두에 적용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는 우리나라 주요 반도체 기업에 주기로 한 보조금의 재협상을 추진하려는 조짐도 나타납니다. 로이터 통신은 13일(현지시간) 미국 정부가 지급하기로 한 보조금에 대해 트럼프 정부가 재협상을 추진 중이고 관련 지출 일부를 연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앞서 러트닉 상무부 장관 지명자도 청문회에서 바이든 정부가 서명한 보조금 지급에 대해 거절 취지의 입장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강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올려서 해외 기업이 국내로 들어오는 정책을 쓰고 있는데 보조금을 줘서 해외 기업을 유치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과 반대된다”며 “이에 전 정부가 주기로 한 약속을 아예 없애기보다는 재협상 쪽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습니다.
반도체 업계는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나지 않은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원금 축소·폐지 또는 이를 위한 재협상이 진행될 경우 미국 현지 투자 위축 등 악영향은 불가피합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삼성과 SK가 받기로 한 보조금이 줄어들게 되면 미국에 생산기지 건설 계획도 위축되는 등 투자를 줄일 가능성이 있다”며 “여기에 제품 가격이 상승하는 등 경쟁적 측면에서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배덕훈 기자·박혜정 인턴기자 paladin703@etomato.com·sunright@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