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프라임] 이재명 생각

입력 : 2025-02-18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오승훈 산업1부장] 2017년 3월께로 기억한다. 부산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 후보 영남권역 선출대회. 이날 이재명 후보는 사자후를 토했다. 재벌개혁을 할 수 있는,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후보가 누구냐 되물으며 ‘억강부약’을 외쳤다. 대중을 사로잡는 열정적 연설이었다.
 
지난 2017년 3월31일 오후 부산 연제구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영남권 순회경선에 참가한 이재명 성남시장이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현장을 취재하던 나는 가슴이 뛰었다. 내가 문재인 후보의 마크맨이라는 사실도, 기자라는 신분도 잊고 연설을 마치고 기자단 앞을 지나가는 이 후보에게 양손 엄지를 들어 올렸다. 이 후보는 웃으며 “연설 좋았어요?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당시 이 후보는 문재인 후보에 비해서 더 왼쪽에 있었다. 안희정 후보의 왼쪽에 있던 문 후보보다, 이재명은 더 래디컬했다. 그는 미 민주당 좌파인 버니 샌더스에 종종 비견됐다. 그의 정치적 스탠스는 진보정당의 오랜 지지자였던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날 이후 이재명에 대해 더 관심이 생겼다. 그의 공약을 들여다보고 경력을 더듬었다. 널리 알려져 있듯 그의 삶은 우리시대 가장 밑바닥 사람들의 삶과 겹쳐 있었다. 가난하고 약한 이웃들의 설움을 그 누구보다 잘 알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엷게 웃고 있는 소년공 이재명의 사진은 그 상징이었다.
 
당시 이재명 후보를 마크했던 후배에게 이재명에 대해 물으니 자신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대중정치인으로 이재명이 너무 거칠다는 뉘앙스였다. 닳고 닳아서 반들반들해진 정치인보다 거친 게 낫다고 여긴 난, 이재명이 싫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 난 처음으로 진보정당이 아닌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그 후보가 이재명이 아니었다면, 난 오랜 습관(?)처럼 진보정당 후보에게 투표했을 것이다. 이재명을 두고 진보정당 지지자인 선배와 논쟁을 하기도 했다. 5년 전에 비해 많이 오른쪽으로 왔지만, 먼 변혁보다 당장의 개혁이 시급했던 난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거기엔 검찰과 관료사회 개혁이라는 포기할 수 없는 과제가 놓여 있었다.
 
소년공 시절의 이재명.(사진=이재명 페이스북)
 
다시 대선 국면이다. 그는 지난 총선을 압도적 승리로 이끌고 12·3 내란사태를 막아냈다. 그가 압도적 1위 후보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다. 모든 언론이 그의 언행을 쫓는 사이, 이 대표도 실용주의를 내세우며 예전보다 넓어진 스펙트럼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반도체 특별법의 주 52시간 예외 적용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 와중에 그의 눈길은 점점 오른쪽을 향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대통령이 되기 위해 일정 부분의 외연 확대는 필요하고 불가피하다. 무엇보다 내란 동조세력이 다시 권력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금은 국가로 정상 궤도로 올려놓아야 할 때라는 말도 맞다. 이 대표 본인도 최근 자신의 행보에 대해 우향우가 아닌 경제중심의 실리주의라고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다만, 과연 중도 확장이 선거 전략으로 효과적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미 대선에서 민주당 해리스 후보가 패배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의 소득 양극화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소수자와 낙태권 같은 ‘PC’(정치적 올바름)주의라는 확장 전략에 매몰됐기 때문이다.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인 러스트벨트의 노동자들이 바이든 행정부의 부익부 빈익빈을 신랄하게 비판한 트럼프에게 표를 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건 내란극복을 넘어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일이다. 어설픈 중도 노선을 통한 어쩡쩡한 승리가 아닌, 강력한 민주진보연대를 바탕으로 중도층을 견인해 압도적 승리를 거머줘야 한다. 그래야 개혁을 도모할 수 있다. 물론 당위와 현실은 다르지만, 당위를 현실로 만드는 것도 정치의 일이다.
 
8년 전 내 가슴을 뛰게 했던 이재명과 지금 이재명은 다르다. 소년공 이재명에서 지금 이재명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고 필요한 변화다. 이제 또 다른 ‘이재명’을 기다리며 내가 그리워하는 ‘옛 이재명’과는 작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힘겨운 분투를 응원한다.
 
오승훈 산업1부장 grantorin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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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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