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미국 우선주의'를 중심에 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래주의'가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전통적 우방국과 관계보다는 오로지 '실익' 차원만 고려한 외교 협상에 돌입한 건데요.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 있어서는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게다가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개시하면서도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취임 한 달 만에 예측불허한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미·러 경제협력 시사…우크라 '고립'
트럼프 대통령은 19일(이하 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칭했습니다. 임기가 만료됐지만 전쟁을 이유로 대선을 치르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서두르지 않으면 나라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겨냥한 직접적 이유는 경제적 요인이 가장 큰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미국을 설득해 3500억달러(약 504조원)를 지출하게 만들었다"며 "미국은 유럽보다 2000억달러(288조원)를 더 지출했고 유럽의 돈은 보장되지만, 미국은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그는 "젤렌스키는 아마 '수월한 돈벌이'(gravy train)를 유지하고 싶어 할 것"이라며 유럽 등으로부터 막대한 원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비꼬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비리 의혹'까지 꺼내들었습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제외한 종전 협상을 러시아와 개시하며 친러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18일 미·러 1차 장관급 회담에서는 양국 사이의 관계 개선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이들은 첫 만남에서 종전 방안에 대한 각론을 구체화하는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향후 고위급 협상팀을 꾸리는 데 합의했습니다. 또 미·러 사이의 갈등 회복을 위해 대사관 인력 수를 복원하고 대사를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양국 장관은 "분쟁 종식을 통해 발생할 역사적인 경제·투자 기회와 상호 지정학적 이익에 대해 미래의 협력 기반을 마련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는데요.
러시아 외무부에 따르면 미·러 양국은 에너지와 우주탐사 등을 위한 경제 협력 방안 등에 대해서도 대화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미·러 사이의 합의는 사실상 조 바이든 전 행정부 시절의 대립 관계를 '리셋'시키는 조치로 풀이됩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시행한 경제적 정책 및 우크라이나 지원 등의 러시아 고립 정책이 뒤집힌 셈입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에 따라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에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 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사저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진핑 방미 기대"…'코리아 패싱' 위험도 ↑
노골적인 친러 행보를 보인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은 냉전 시대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전략을 활용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파격적으로 중국에 손을 내밀며 소련을 압박하려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중국과 전략적 경쟁 관계에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를 끌어들여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 관계를 느슨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예측 불가한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리다주에서 워싱턴 D.C.로 복귀하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시 주석의 미국 방문을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2기 '반중전선'이 격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인데, 정작 자신은 중국에 손을 내밀고 있는 겁니다.
그는 '중국과의 새로운 무역 합의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도 "가능하다"고 답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시 주석과 통화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번에도 구체적 시기에 대해서는 특정하지 않은 채 유화 제스처만 보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한 달간 관세부터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중국과의 관계 설정 등 전 세계에 관여하고 있는 실정인데요. 여기에서 한반도는 제외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미국이 예고한 관세 문제에 있어 직접 사정권에 들었음에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아직까지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조차 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게다가 전쟁의 당사자인 우크라이나가 종전 협상에서 제외된 점을 고려하면 '코리아 패싱'도 예고된 수순입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대사는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빅터 차 한국 석좌가 진행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한국에서는 '서울 패싱'에 대한 불안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꼬집었습니다.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대화가 시작되더라도 정작 안보 위협의 당사국인 한국이 배제된다는 지적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