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K금융)⑦"NO 카드" QR과 현금이 익숙한 나라

유명 편의점마저 현금 결제만 가능

입력 : 2025-03-14 오전 6:00:00
 
(세부=유영진 기자) "No Card, Only Cash(카드는 안 되고, 현금만 됩니다)"
 
필리핀 마닐라의 '강남'으로 불리는 보니파시오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체인망을 가지고 있는 편의점에서도 현금으로만 결제할 수 있는 곳이 많았습니다. 계산대에 카드 리더기나 QR 코드는 없고 'Payment Only CASH(지불은 현금으로만)'라는 문구만 보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흡사 우리나라 1990년대 후반의 슈퍼마켓을 연상시킵니다. 
 
필리핀 마닐라의 보니파시오에 위치한 마트 내부 모습. 카운터에 '지불은 현금으로만'이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사진=뉴스토마토)
 
필리핀 현지인이 마트에서 현금으로 결제하고 잔돈을 받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
 
비즈니스 구역도 현금결제 수두룩
 
고층 건물과 외제차가 즐비한 보니파시오 지역은 필리핀에서 최근 부상하고 있는 비즈니스 구역입니다. 신식 빌딩의 쇼핑몰과 명품 가게가 늘어선 이곳에도 현금 결제만 되는 곳이 많아 불편함을 겪었습니다. 실제로 필리핀 내 현금 사용률은 지난 2023년 기준 60%로 아세안 국가 평균 38%보다 두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별취재팀은 QR로 결제할 수 있는 앱이 없었기 때문에 현금을 인출하러 현지 은행 ATM 기기로 향했습니다. BDO뱅크 ATM기기에서 인출할 때마다 수수료 250페소(한화 약 6500원)가 부과됐습니다. 총 다섯 번을 인출했더니 수수료만 3만원이 넘게 빠져나갔습니다. 해외 ATM 인출 수수료가 면제되는 '트래블카드'를 이용했음에도 제휴된 ATM 기기가 아니라 수수료를 면제받지 못했습니다.
 
트래블카드에 '트래블로그 카드'도 가져왔지만 무용지물이었습니다. 250페소는 필리핀 현지인들이 한 끼에 소비하는 음식값과 맞먹는 금액입니다. 금융 소비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출 이자는 물론 수수료 인하까지 압박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한 음식점 카운터에는 QR코드와 함께 현금을 넣을 수 있는 '팁 박스'도 마련돼 있다. 팁 박스 안에는 페소와 달러가 함께 있다.(사진=뉴스토마토)
 
필리핀에선 카드결제보다는 스마트폰 기반의 QR결제가 대중화돼 있습니다. 보니파시오 한 문구점에는 QR 결제를 이용하면 100페소당 1페소를 돌려받을 수 있는 캐시백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한 음식점은 QR코드와 함께 직원에게 소정의 팁을 줄 수 있는 '팁 박스'도 놓여 있습니다. 팁 박스 안에는 페소뿐만 아니라 달러도 보였습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세부 막탄 메르카도 야시장에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현금과 QR 결제만 가능했습니다. 현금만 되는 곳도 있어 스마트폰 내 전자지갑이 있더라도 지폐와 동전을 들고 다녀야 합니다.
 
우리은행의 필리핀 법인인 우리웰스뱅크 ATM에서는 수수료 없이 현금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은행 원(WON)뱅킹 앱을 통해 환전주머니에 외화를 충전하고 ATM에서 꺼내 쓰는 구조입니다. 이 서비스는 현지 은행인 RCBC뱅크의 ATM 기기에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필리핀 마닐라의 보니파시오 지역은 '필리핀의 강남'이라고도 불리며 초고층 빌딩이 줄지어 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금 결제만 되는 상점이 곳곳에 있다. 사진은 보니파시오 길거리에 초고층 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사진=뉴스토마토)
 
필리핀, 전자결제 늘리기 총력
 
특별취재팀이 이곳저곳을 다니며 가장 많이 본 QR코드 플랫폼은 지캐시(GCash)였습니다. 지캐시는 필리핀 최대 통신사 글로브(GLOBE)에서 출시한 전자지갑입니다. 핸드폰 번호만 있으면 누구나 계좌를 지급받아 사용할 수 있어 필리핀에선 필수 앱입니다. 
 
필리핀 내 지캐시 사용자는 약 81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70%가량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캐시를 이용해 결제, 송금, 공과금, 통신 요금 등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또 현지인들은 보험이나 대출 등 다른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지캐시 외에도 투자 기능이 있는 전자지갑 '페이마야(PayMaya)', 그랩 앱과 연동된 '그랩페이(GrabPay)', 라자다 쇼핑 플랫폼과 통합된 '라자다 월렛(Lazada Wallet)' 등 다양한 전자지갑 앱이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전자지갑이 발달한 이유는 필리핀 정부가 핀테크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필리핀 정부는 지난 2021년부터 전자상거래 로드맵을 가동, 생태계 조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필리핀 정부는 규제 당국과 함께 디지털 뱅킹 라이선스를 도입하고 실시간 결제 시스템을 적용한 표준화된 QR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은행 계좌 개설이 까다로운 반면 전자지갑은 핸드폰 번호와 본인 인증만 하면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아직까지 필리핀 내 신용카드 보급률은 3% 수준에 불과합니다. 은행에서 근무하는 한국 주재원은 "필리핀이 글로벌 경제 원조를 받지 않는 수준으로 성장할 경우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본다"며 "그 시기가 다가오기 전에 본사 차원에서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필리핀 길거리에서 전자지갑 홍보 배너는 흔하게 볼 수 있다. 한 가게에서 전자지갑 배너를 창가에 배치한 모습.(사진=뉴스토마토)
 
<(8)편에서 계속>
 
세부=유영진 기자 ryuyoungjin153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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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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