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진 왼쪽부터 서울대 협동과정 인공지능 전공 전하연 박사과정생(제1저자),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임하진 교수(교신저자), 김은미 교수(교신저자), 카네기멜론대학교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연구소 존 짐머만 교수(공동저자), 로라 대비시 교수(공동저자). (사진=서울대학교)
[뉴스토마토 임삼진 기자] 서울대학교와 미국 카네기멜론대학교(Carnegie Mellon University) 공동연구팀은 청년들이 인공지능(AI)과 대화하며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은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대회인 ‘CHI 2025(ACM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에서 발표할 예정인데,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연구팀은 거대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사용자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반영한 ‘미래 자아 에이전트(Future-Self Agent)’를 구현했습니다. 이 기술은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개인의 성격과 현재 상황을 반영한 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보다 깊이 있는 진로 탐색을 돕고자 개발된 것입니다.
해당 연구는 36명의 청년을 대상으로 1주일간 진행되었으며, 참가자들은 먼저 3년 후의 자신에게 편지를 쓴 뒤, 세 가지 조건 중 하나에 무작위로 배정되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미래 자아와 상호작용을 경험했습니다. 이 중 AI가 생성한 편지를 읽은 참가자들이 진로 몰입도와 활동 만족도가 가장 높았으며, 실시간 채팅 기반의 상호작용 역시 적극적인 정보 탐색과 진로 조정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서울대와 카네기멜론대가 공동으로 개발한 ‘SPeCtrum’ 프레임워크가 적용되었습니다. 이 프레임워크는 사용자의 다차원적인 정체성과 감정 경험을 LLM에 통합함으로써, 몰입감 있고 설득력 있는 AI 에이전트 구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해당 프레임워크의 개발 논문은 자연어 처리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대회인 NAACL 2025에서도 채택되어 학문적 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습니다.
이번에 발표할 논문의 제1저자인 전하연 서울대학교 박사과정은 “이번 연구는 AI가 인간의 결정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깊은 대화를 유도하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는 철학에서 출발했다”라며 “청년들이 AI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불안을 해소하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밝혔습니다.
미래의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참여자(왼쪽). 편지에 답장을 보내는 LLM 기반 미래 자아 에이전트(오른쪽). (자료=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 임하진 교수는 “AI가 생성한 조언이 일부 참가자에게 너무 현실감 있게 전달되면서, 이를 마치 ‘정해진 미래’로 받아들이는 경향도 확인되었다”라며 “사용자의 자율성과 해석의 여지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AI의 표현 방식과 개입 수준을 조정하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기술은 진로 탐색뿐 아니라 학습 계획 수립, 감정 조절, 습관 형성 등 다양한 자기 성찰 과제에도 널리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특히 진로 상담 인프라에 접근이 어려운 환경에 있는 청년들에게는 AI가 개인화된 디지털 멘토로 기능할 가능성도 보여줍니다. 향후 연구팀은 여러 사용자군을 대상으로 실험을 확대하고, 인간 중심의 윤리적 AI 설계를 고도화하는 데 집중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성장과 삶의 방향 설정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차세대 AI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할 예정입니다.
지난해 발표된 MIT 미디어랩은 'Future You'라는 AI 기반 시스템을 통해 사용자가 자신과 닮은 60세의 미래 자아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사용자의 목표와 성격을 반영한 '합성 기억'을 생성하여, 현실감 있는 대화를 제공합니다. 이런 상호작용은 사용자의 불안감을 줄이고, 미래 자아와의 연속성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이 입증된 바 있습니다. 서울대-카네기멜론대 연구팀의 연구는 MIT 미디어랩의 ‘Future You’ 프로젝트와 비교할 때 두 프로젝트 모두 인간 중심 AI의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철학과 구현 방식은 서로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대-카네기멜론대 팀의 프로젝트는 교육적 목적과 자기 성찰 중심이고 사용자의 가치관이나 성격, 현재 상황을 다차원적으로 통합하는 것에 비해, MIT 프로젝트는 나이가 든 자기의 외모나 목소리 등을 시뮬레이션하여 행동 변화 유도와 체험 중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울대와 카네기멜론대의 이번 연구는 단순한 기술 실험을 넘어, 인공지능이 인간의 내면과 대화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보여줍니다.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서, 인간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어떻게 기술에 담아낼 수 있을지를 고민한 사례입니다. 진로 탐색처럼 개인의 가치관과 감정이 깊이 작용하는 영역에서 AI가 어떻게 동반자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기술적으로 입증한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특히 AI가 사용자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돕는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은 교육·상담·의료 등 여러 분야에 강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만, 기술이 사용자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윤리적 설계와 사회적 가이드라인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AI 시뮬레이션을 통해 만나는 잠재적인 미래의 자아. (자료=MIT)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kos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