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크론병·궤양성대장염 환자 절반, 여전히 고통 속 일상"

환자 2명 중 1명, 치료 중에도 설사·복통·혈변 지속
우울과 불안 겪는 이도 절반 이상
염증성 장질환 환자들이 겪는 심리·경제적 이중고

입력 : 2025-04-22 오전 9:53:22
염증성 장질환 환자들의 고통. (사진=UC사랑회)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약을 꾸준히 먹고 있는데도 여전히 복통과 설사가 반복돼요. 언제 다시 악화될지 몰라 늘 불안합니다. 몸이 아프다는 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마음까지 아프다는 건,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느끼기 어렵죠."
 
염증성 장질환(IBD)을 앓고 있는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병을 처음 진단받았던 순간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설사와 복통이 일상이 되고, 식사조차 스트레스가 되면서 몸과 마음이 함께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염증성 장질환(IBD) 환자들이 치료 중임에도 불구하고 겪는 지속적인 고통이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환자 2명 중 1명꼴로 심각한 신체 증상과 정신적 어려움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궤양성대장염 환우회(UC사랑회)와 크론병 환우회(크론가족사랑회)는 최근 국내 염증성 장질환 환자 399명(궤양성대장염 202명, 크론병 197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공동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조사는 2024년 10월24일부터 12월2일까지 이루어졌습니다.
 
증상은 계속되고, 마음은 무너져
 
크론병과 궤양성대장염을 아우르는 IBD는 평생에 걸쳐 관리해야 하는 만성질환입니다. 증상은 완화되었다가 다시 악화되는 과정을 반복하며, 때론 예고 없이 환자의 삶을 덮치곤 합니다.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54.6%는 치료를 받고 있음에도 설사, 혈변, 경련성 복통 등 증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또한 절반 이상(50.8%)이 우울감이나 불안감 등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증상은 환자들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설사를 경험한 환자의 89.4%, 복통을 겪는 환자의 77.8%, 불안감과 우울감을 호소한 환자의 61%가 “매우 불편하거나 불편하다”라고 응답했습니다. 단순한 위장 증상을 넘어 삶의 질 전체를 갉아먹는 고통이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설문조사 결과는 지난 2021년 캐나다 맥매스터대학교(McMaster University) 연구진이 발표한 IBD 환자들의 심리사회적·경제적 부담을 심층 분석한 연구에서 밝힌 고통의 실체와 유사합니다. 이 연구에 참여한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불안과 우울, 그리고 사회적 고립감을 호소한 바 있습니다. 또한 실제로 IBD 환자들의 우울증 유병률은 일반인보다 2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습니다.
 
의료진과의 치료 목표 소통. (사진=UC사랑회)
 
아토피·건선 등 다른 면역질환 동반률도 일반인의 수배 높아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염증성 장질환 환자 10명 중 2명(17.8%)이 다른 면역매개 염증질환을 동시에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아토피피부염이 7.8%, 건선이 4.3%로, 이는 일반인 대비 각각 약 4배, 10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그 밖에도 류마티스관절염(3.0%), 강직성척추염(2.3%), 건선성관절염(0.8%), 화농성한선염(0.5%), 루푸스(0.3%) 등 자가면역질환과의 중복 진단 사례가 확인됐습니다.
 
UC사랑회 이민지 회장은 “환우회 활동을 하다 보면 피부질환이나 관절염 같은 면역질환을 함께 진단받은 분들이 꽤 많다”라며 “염증성 장질환은 다른 면역질환과의 연관성이 높다는 점에서 환자 스스로 증상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의료진과의 적극적인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치료 목표, 말하지 않으면 놓치는 것들
 
이번 조사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의료진과의 소통 부족입니다. 응답자 중 치료 목표에 대해 의료진과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단 26.3%에 불과했습니다. 환자 개인의 증상과 삶의 목표에 따른 맞춤형 치료 계획이 중요한 질환임에도, 여전히 일방적인 처방 중심의 의료 문화가 자리하고 있는 셈입니다.
 
복용 약제에 대해서는 환자들이 ‘편의성이 높은 경구용 약제(먹는 약)’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이는 복잡한 주사 치료나 병원 내 투약의 부담을 덜고자 하는 환자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결과로 보입니다.
 
‘환자 중심 치료’ 절실
 
이번 설문조사는 IBD 환자들의 고통이 단순히 '복통과 설사'에 머무르지 않고, 전신적인 면역 이상, 정신건강 문제, 사회적 고립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특히 보이지 않는 고통과 의료 시스템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하고 공감적인 치료 접근이 필요합니다.
 
앞서 소개한 맥매스터대학교 연구진의 심층 연구에서도 유사한 결론이 도출된 바 있습니다. 당시 발표한 논문에서 연구진은 “심리사회적 영향은 질병에 의해 통제당하는 느낌, 배뇨 장애와 수치심, 사회적 고립, 감정적 지원의 필요성, 낮은 자존감, 질병의 전반적인 심리적 부담 등을 포함하고 있다. 심리사회적 영향은 배뇨 장애와 그로 인한 수치심 때문에 여행이나 사회적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과 자주 연관되었다. 이러한 요인들은 ‘무력감’, ‘심각한 우울감’, 가족과 친구들로부터의 소외감을 초래했다. 대부분의 참가자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낮은 자존감을 표현했다”라고 썼습니다. 또한 당시 연구에서 설문에 참여한 환자 대부분이 과거에 심리상담을 받았음에도 “그리 큰 효과를 느끼지 못했다”고 답하면서도, 앞으로도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당시 연구진은 IBD 환자들은 단순히 감정을 털어놓는 공간을 넘어, 질환 특성과 병행한 통합적인 정신건강 지원 체계를 원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치료의 대상이 ‘장’만이 아니라, ‘삶 전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크론가족사랑회 김정은 회장은 “환자의 고통은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다. 치료의 목표는 단순한 증상 억제가 아니라, 삶의 질 회복이 되어야 한다”라며 “환자와 의료진 간의 협업적 소통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IBD는 만성질환이지만 환자의 인생은 멈출 수 없습니다. 지속가능한 치료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약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 그리고 함께 만들어가는 치료 여정입니다. 
 
치료 만족도에 영향을 주는 요인. (사진=UC사랑회)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kos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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