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승주·김지평 기자] 윤희성 한국수출입은행장이 오는 7월 말 3년 임기를 마무리합니다. 윤 행장은 2022년 7월 수은 역사상 최초의 내부 출신 행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8년 수은에 입행해 혁신성장금융본부장, 신성장금융본부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고, 2021년 퇴임 후 우리금융캐피탈 사외이사로 재직했습니다. 정책금융에 관한 전문성과 조직 이해도가 강점으로 꼽혔지만, 일각에서는 과거 윤석열씨와 고시 공부를 함께한 인연이 행장 선임에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제기됐습니다.
수은은 1976년 설립된 기획재정부 산하 기타공공기관입니다. 한국수출입은행법 제1조에 따라 수출입, 해외투자, 자원개발 등 대외 경제협력 금융을 통해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기능 또한 중요한 책무입니다.
정책금융 본연의 기능 뒷전
윤 행장 재임 중 수은의 역할이 정부의 해외사업 기조에 밀착된 모습을 보이며 정책금융 본연의 기능이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지난해 2월 수은법 개정으로 법정 자본금 한도가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상향됐는데요. 이는 수은의 금융지원 여력을 확대할 계기로 기대됐지만, 실제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의 폴란드 방산 수출계약 지원이 주요 목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또한 수은 여신 잔액의 10%가량이
한화(000880)그룹 계열사에 쏠렸는데요.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8월 기준 수은의 여신 잔액 135조6327억원 중 약 10%에 해당하는 13조2523억원이 한화 계열사에 집중됐습니다. 이는 다른 대기업 그룹과 비교해 눈에 띄게 높은 비중인데요. 한화 계열사에 대한 수은 여신은 윤석열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12월 4조4747억원에서 불과 1년 8개월 만에 3배 가까이 급증한 수치로, 특정 그룹에 대한 편중 지원 의혹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 중 중소기업 지원에도 소홀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수은법 제18조(업무)는 "수출입은행은 중소기업기본법 제2조에 따라 중소기업의 수출입과 해외 진출에 자금을 공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수은의 중소기업 여신 지원 비중은 13.9%에 불과했습니다.
중소기업 여신 지원 비중은 2019년 17.8%에서 2023년 15.5%, 2024년 8월 13.9%로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반면 대기업 및 중견기업에 대한 여신 지원 비중은 2023년 기준 84.5%로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이 의원은 "수은이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중소기업 지원에 더 큰 역할을 해야 함에도 중소기업 비중이 5년 전보다 낮아진 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정부 세수부족 메우기 한몫…과도한 배당 논란
윤희성 한국수출입은행장이 지난해 7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 행장 재임 중 수은은 막대한 정부 배당을 통해 정부의 세수 결손 보전에 기여했습니다. 윤석열정부는 역대 최고 수준의 세수 결손을 기록하며 정부출자기관에 배당 확대를 요구했는데, 수은 역시 이 기조에 따라 배당을 늘렸습니다.
정일영 민주당 의원은 "2022~2024년 기재부는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정부출자기관에 과도한 배당을 요구했다"며 "이는 정부출자기관의 재무 건전성과 경영 유연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습니다. 수은은 무리한 배당금에 대한 지적이 있었음에도 2023년 932억원, 2024년 1847억원, 올해는 2828억원의 정부배당을 결의했습니다. 수은은 배당액을 기준으로 산업은행과
기업은행(024110)에 비해 후순위임에도 매년 상위권 배당을 유지했습니다.
수은 내부에서도 배당 정책에 대한 우려가 큽니다. 한 수은 관계자는 "정부 출자금으로 자본을 늘리는 것보다 이익을 축적해 유보금을 늘리는 것이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 수행에 중요하다"면서 "배당금은 유보금에서 부담하는 만큼 출자금을 늘리기보다는 배당금을 줄이는 것이 기관 입장에서는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과도한 배당에 대해선 직원들도 불만이 많고 기관의 장기적인 유지와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습니다.
윤 행장 임기 중 수은의 종합청렴도 평가도 후퇴했습니다. 정책금융기관은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만큼 높은 수준의 종합청렴도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데요.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민권익위원회의 '2024년도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평가 결과'에 따르면 수은은 2023년 2등급에서 두 계단 하락한 4등급을 기록했습니다. 수은 관계자는 "권익위 제도개선 권고 과제를 미이행했고 자체 과제 발굴의 독창성 부족이 감점 사유가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내부 출신' 기대했지만, 처우 개선은 미흡
내부에서는 윤 행장에게 기대했던 조직 복지나 처우 개선 측면에서는 실망감을 드러냈습니다. 한 수은 직원은 "최초의 내부 출신 행장으로 전문성을 갖춰 경영에 있어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총인건비 제도 등에 대한 처우 개선 노력이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내달 말 윤 행장의 임기가 종료되면서 수은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차기 행장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독립적 경영과 직원 처우 개선, 그리고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 강화라는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수은 노동조합 관계자는 "십수 년간 정부의 인건비 통제로 보수와 복지 수준이 크게 후퇴됐다"며 "이에 따라 직원 사기가 저하되고 채용시장에서 경쟁력도 크게 약화하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어 "차기 행장이 이 부분에서 분명한 개선을 이루지 못한다면 대외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지속적인 역할 강화가 중장기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며 "수은의 정책금융 역할 강화를 통한 우리나라 수출 경쟁력 확보는 처우 개선을 바탕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오승주·김지평 기자 sj.o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