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창간6주년 기획: 상법이 바꾼판)⑤K-지배구조 다음 과제는

9월 자사주 소각 국회 통과 목표…불공정 문제 해소 관심
집중투표제·감사위원 분리 선출 처리로 독립성 강화 전망
기업가치 제고로 투기세력 진입장벽 높이고 장기투자 활성화

입력 : 2025-07-28 오전 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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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반영된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내 기업 지배구조의 대전환이 예고되고 있다.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명문화, '전자주총 제도화', '최대주주 3%룰 확대' 등은 단순한 제도 변경을 넘어 기업 경영의 기본 원칙과 투자자와 기업 간 관계를 재정의하는 중대한 분기점이다. 변화의 방향은 소액주주 권익 강화이지만 그 여파는 산업 전반과 자본시장 전반에 깊이 스며들 전망이다. <IB토마토>는 창간 6주년을 맞아 상법 개정의 핵심 내용과 주요 쟁점을 짚어보고, 이에 따른 산업·시장·정책의 파급효과와 기업·정부·투자자의 역할 변화를 총체적으로 살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박예진 기자]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추가 개정안 역시 빠르게 처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집권 여당에서는 대규모 상장사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를 담은 추가 개정안을 다음달 처리하고, 자사주 취득 시 소각 기간을 크게 단축시키는 법률안을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상법 개정을 글로벌 스탠더드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흐름에 부합하는 지배구조 체계 마련의 역사적 첫걸음으로 평가하면서도 배당소득 분리 과세, 공개매수제도 정비 등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한 후속 보완과 기업·투자자 인식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6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석 272인, 찬성 220인, 반대 29인, 기권 23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집중투표제·감사위원 분리 선출 이어 자사주 소각 논의
 
24일 국회와 재계에 따르면 상법 후속 개정안 처리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 김현정 의원 등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신규 취득 자사주는 즉시 소각하고 시행 이전 보유 자사주는 6개월 내 소각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여당에서는 김남근, 차규근, 민병덕 의원 등이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권은 오는 9월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소각 의무기간은 즉시 소각부터 1년 이내까지로 다양하게 담겼다.  
 
이와 함께 지난 11일 열린 공청회에서는△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대한 집중투표제 의무화 △분리 선출 감사위원 수를 기존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추가 개정안이 논의됐다.
 
집중투표제는 주주가 이사 선임 시 1주당 선임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행사해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1998년 국내 상법에 도입됐지만 기업 정관에 배제 조항을 둘 경우 적용되지 않아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소액주주가 자신의 입장을 옹호할 수 있는 이사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법무법인 율촌의 기업지배구조 센터는 올해를 기준으로 자산총액이 2조원이 넘는 기업이 225곳에 이르며, 전체 상장기업의 45%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는 대주주의 영향력을 줄이고 감사기능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분리선출 감사위원 수를 1명에서 2명으로 늘리고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기존 개별 3%에서 합산 3%로 제한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된다.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3%룰이 결합되면 행동주의 펀드나 소액주주 연대가 추천한 감사위원이 이사회에 진입해 자료제출 요구권, 업무조사권 등을 활용한 실질적 감시 기능 강화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 ESG 흐름에 부합하는 지배구조 구축 '첫걸음'
 
전문가들은 이번 상법 개정이 글로벌 흐름에 부합하는 K-지배구조 체계로 가는 첫 걸음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기업 지배구조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원인으로 꼽혀왔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총 8년간 국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기업지배구조 수준이 높을수록 기업위험을 낮추는 데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글로벌 지배구조 평가 기준은 형식적 요건을 넘어 이사회가 지속가능성과 ESG 리스크를 실질적으로 관리하는지를 중점적으로 평가한다.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서스테이널리틱스(Sustainalytics) 등은 이사회 독립성, 다양성, 과도한 겸직 방지뿐만 아니라 윤리·컴플라이언스 체계, ESG 전략에 대한 이사회 역할 수행 여부까지 주요 기준으로 삼고 있다.
 
ESG 공시에 있어서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마련한 공시 기준이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수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를 통해 ISSB 기준(IFRS S1·S2)의 국내 적용이 본격화되고 있다.
 
민창욱 법무법인 지평 ESG센터장은 <IB토마토>와 인터뷰에서 "ISSB 기준은 기업의 재무적 중요성을 중심으로, 이사회가 지속가능성과 기후 리스크를 어떻게 인식하고 감독하고 있는지를 공시의 핵심 항목으로 요구한다"라며 "유럽연합의 ESRS(European Sustainability Reporting Standards)는 기업의 재무적 위험뿐 아니라 기업이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함께 공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제도 개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이남우 회장(연세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은 <IB토마토>와 인터뷰에서 "주주가치 개선과 이사회 독립, 공정한 시장경제 세 축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외국인 매수가 멈춰 코스피가 3000 아래로 하락할 수도 있다"라며 "국회가 보완하는 상법개정과 자본사장법 개정 등에 발 맞춰 금융당국은 투자자와 회사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법무부는 디스커버리제도 도입과 배임죄 완화 추진, 기획재정부 배당소득 분리과세와 같이 장기투자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세제를 개편해야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당이 추진하는 거버넌스 개혁이 완료되면 코스피 5000 달성은 충분하므로 기재부 생각보다 세수 부족 문제가 덜 심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법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당시 주식시장(사진=연합뉴스)
 
기업과 투자자 인식 개선·기업가치 제고 병행 필요
 
국내 지배구조의 취약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자사주 소각 회피 관행이다. 많은 기업이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보유하고 주요 의사결정 시 우호세력에 매각하거나 인적분할 시 신주배정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자사주를 보유한 기업은 전체 상장사의 67%에 달하지만 실제 소각한 사례는 54건(2.2%)에 불과하다. 자사주 처분은 실질적으로 신주발행과 같은 효과를 유발하며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 변동을 초래해 주주평등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
 
반면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해외 주요국에서는 자사주에 아무런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신주의 제3자 배정과 자사주 처분에 대한 규제차익도 없어 국내와 같은 불공정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미국 워싱턴주에서는 자사주 보유를 불법으로 보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기업가치 자체를 높여야 투기세력 진입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포이즌필(적대적 인수 방어장치) 등이 없는 국내 현실에서는 자사주 보유를 방어 수단으로 삼는 관행이 정당화돼왔지만 결국 기업가치 제고가 가장 근본적인 방패라는 설명이다.
 
최남수 서정대 교수는 <IB토마토>와 인터뷰에서 "국내에서는 그동안 대주주의 일방적 의사결정에 소수주주의 권익이 침해되는 사례가 빈번했다. 이번 상법 개정으로 주주 존중 경영의 첫발을 내딛는 단계에 들어서게 됐다고 볼 수 있다"라며 "지배구조 측면에서 이해관계자를 존중하는 ESG 경영으로 가는 길의 입구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이사의 주주 이익 고려 등에 그치지 않고 고객과 구성원·협력업체,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 모두의 이익을 고려하도록 해 ESG경영이 더욱 확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박예진 기자 luck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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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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