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정부가 금융권 자금 흐름을 기업으로 돌려야 한다며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담보 위주의 '대출 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은행권 기업대출 중 중소기업 대출 비중이 상당하지만 보증이나 담보가 있는 대출 비중이 80%가 넘는데요. 기술력을 보유한 중소기업과 모험자본에 자금이 공급될 수 있도록 대출 관행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담보·보증 비중 80% 넘어
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6월까지 중소기업 대출 규모는 643조900억원으로 전체 기업대출(835조9000)의 77%를 차지했습니다. 중소기업 대출 규모가 적지 않지만, 이 가운데 담보와 보증 비중이 80%가 넘습니다. 이 비중은 지난 2015년 66.7%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간 정부와 금융당국이 첨단산업, 중소벤처기업, 소상공인 성장을 뒷받침하는 '생산적 금융' 확대를 강조했지만, 담보와 보증에 의존하는 대출 관행은 바뀌지 않은 것입니다. 기술력이 우수한 중소·벤처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기술금융' 공급은 되레 줄고 있습니다.
기술금융은 2014년 혁신·중소기업 자금 공급을 목적으로 도입한 것으로, 기술신용대출이 대표적인 상품입니다. 5대 은행의 기술신용대출 규모는 1년 새 9.7% 가량 줄었습니다. 지난 6월 말 기준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155조2800억원으로, 지난해 6월 말 171조9600억원과 비교해 16조6800억원 줄었습니다. 같은 기간 5대 은행이 누적 집행한 기술신용대출 건수도 41만3000건에서 36만건으로 줄었습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금융기관이) 손쉬운 주택담보대출 같은 이자놀이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투자 확대에도 신경 써주시길 바란다"고 지적했습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곧바로 금융권 협회장들을 소집해 "정부는 금융사가 생산적 투자에 책임감 있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데 장애가 되는 법, 제도, 규제, 회계와 감독 관행 등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과감하게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중소기업금융의 대출 부문이 신용보다는 담보와 보증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기술과 성장 잠재력이 있는 중소기업이 담보 없이는 자금을 원활히 공급받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은행권은 경기 악화로 국내 중소기업들의 부실 위험이 커졌기 때문에 무담보성 대출을 확대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지난 5월 말 기준 0.95%로 2016년 5월 이후 가장 높았습니다. 대기업 대출 연체율이 0.15%에 그치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연체율이 오를수록 위험 가중치도 함께 높아지는 만큼 시중은행들로서는 중소기업 대출 심사를 깐깐하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 한 시중은행의 영업점에서 시민들이 금융거래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무담보성 대출 확대 유인책 필요"
정부는 담보와 보증 중심의 기업대출 관행에서 벗어나 사업성과 잠재력을 중심으로 대출하는 체계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은행권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담보 위주 대출에 집중하면 자금이 필요한 기업이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도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대출심사 고도화를 위한 제도 개선이나 전문 인력 확보 없이 무담보성 대출을 적극적으로 취급하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금융사들이 부동산 등 담보 중심에서 벗어나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 평가를 강화하려면 금융당국이 사업성 기반 대출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유인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석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업성 대출에도 부실은 발생할 수 있으므로 회생제도와 담보제도도 함께 정비해야 한다"며 "회생 절차상 금융회사의 채권 회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절대 우선의 원칙' 도입을 검토하고 기업의 미래 영업활동 자체를 담보로 인정하는 '사업권 담보제도'나 '일괄담보제도' 도입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본건전성 규제 완화도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중기 대출은 은행들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에 직접적인 부담을 주는데요. 중기 대출과 정책금융 연계 대출이 대부분 높은 위험가중치 적용을 받기 때문입니다.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건전성 규제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위험가중치 완화를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지만 현행 규제는 정책금융 상품에도 최대 400%의 가중치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하반기 중 자본건전성 규제 정비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금융권에서는 속도전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당장 오는 3분기부터 미국발 관세 여파가 본격화하면 정책 대응의 시차 탓에 자금 공급의 적시성이 떨어지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중소기업 생존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 시내 한 은행 영업점 기업고객 창구.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