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이재희 기자]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급에 따라 기업 대출금리를 차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에는 신용평가에 페널티를 주지만, 반대로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중대재해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대형 건설사들의 ESG 등급이 우수 일색이라 금융 제한 조치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보다 정밀한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중대재해기업 ESG 평가 강화"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앞으로 중대재해 리스크를 기업의 ESG 평가 항목에 보다 정교하게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ESG 평가 중 환경(E)이나 지배구조(G)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앞으로는 사회(S) 평가 부문에서 안전관리 체계의 비중이 커질 전망입니다.
금융위는 이날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주재로 '중대재해 관련 금융부문 대응 간담회'를 개최했습니다. 권 부위원장은 "금융권 여신심사에 중대재해 리스크가 적시에, 적절히, 확대 반영되고 중대재해 발생 즉시 기업이 공시하도록 해 투자판단에 필요한 정보제공이 이뤄져야 한다"며 "ESG평가 및 스튜어드십 코드에도 관련 내용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금융권에서는 아직 논의 단계인 만큼 거론되는 대출 제한 규제가 어느 정도 수위일지 예단하기 이르지만, ESG 평가가 강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ESG 등급 기준을 개선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등급을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국ESG기준원의 '2024년 ESG 평가·등급 공표'에 따르면 상장사 기준 국내 10대 건설사의 ESG 평가 등급은 A+(매우 우수) 또는 A(우수)입니다. 노동자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 사고 발생으로 사회 평가 부문 등급이 하락된 곳도 있지만 전체 등급은 우수 일색입니다.
ESG 평가 등급은 S부터 D까지 7단계로 나뉘는데, A+ 등급은 지속가능경영 체계를 충실히 갖추고 있고 비재무적 리스크로 인한 주주가치 훼손의 여지가 상당히 낮은 수준을 나타냅니다. A 등급은 지속가능경영 체계를 적절히 갖추고 있고, 비재무적 리스크로 인한 주주가치 훼손의 여지가 적음을 의미합니다. D 등급(매우 취약)의 경우 기업의 지속 가능한 경영이 사실상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ESG 평가 결과는 대형 건설사와 중견 건설사 간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자본력이 충분한 대형 건설사들은 ESG 경영 체계를 구축하는 데 여력이 큰 반면, 중견 및 중소형 건설사들은 자원이나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중소형 건설사들은 C등급 이하를 받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늘어난 건설사들에 대한 ESG 평가에서 중대 재해와 안전 사고 관련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부각되고 있다"며 "시공능력평가 상위사들도 중대재해로 인해 사회 부문 등급이 하향 조정되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다만 "대형사의 경우 환경과 지배구조 등 다른 부문에서 취약점을 보완할 자금력이나 경영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중소형사의 경우 자원이나 인력 제한으로 상대적으로 ESG 경영을 실천하기에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중대재해 리스크를 ESG 평가에 보다 정교하게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소속 의원들이 경기 광명시 포스코이앤씨 광명고속도로 공사 사고 현장을 찾아 현장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ESG 여력 없는 중소형사 타격
은행들도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ESG 등급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정부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평가요소로 명시하는 데 대해서는 난감하다는 표정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대재해 발생 기업이라는 표현이 없을 뿐이지 이미 비재무분야 평가요소로 ESG 경영, 법규준수 여부를 고려하고 있다"며 "현재 여신심사에서도 이런 평판 리스크 등을 포괄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현행 은행업감독규정상 여신운용 원칙에 따르면 은행은 차주의 리스크 특성·재무상태·미래 채무상환능력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신용리스크를 철저히 평가하고 차주의 신용상태·채무상환능력 변화를 상시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은행들이 대출 심사에 비재무적 항목을 반영하는 이유입니다.
금융권이 ESG 평가 결과를 대출 심사에 핵심 지표로 활용할 경우 단순 등급 이상의 실질적 내부 체계와 안전관행 개선 여부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주요 건설사 가운데 상당수가 비상장사인 것도 문제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포스코이앤씨를 비롯해 현대엔지니어링, 롯데건설, SK에코플랜트, 호반건설 등 10위권 건설사들이 비상장이라 ESG 평가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입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ESG 평가는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 등 다양한 평가항목을 두고 있는데, 중대재해 발생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다"며 "환경과 사회에서 우수 등급을 받는 기업이 중대재해 발생 이후 사회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다고 해도 전체 등급에서 우수한 평가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중대재해 위반 여부에 대해 대출 제한 조치를 가하는 것이라면 좀 더 정교한 방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신용평가에 중대재해 처벌 관련해 반영을 할 수 있다면 대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텐데 ESG 평가 등급으로 중대재해 여부를 따지는 건 모호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은행권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ESG 평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정부 방침에 공감하면서도 보다 정밀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은행영업점 기업고객 창구.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