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만 남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1년

경영권 분쟁 현재 진행 중…관련 소송만 24건
고려아연, 별도 기준 총차입금·부채비율 '급증'
영풍, 상반기 1500억대 손실…MBK, 신뢰 하락
이사 6명 임기 끝나는 내년 3월 주총이 '분수령'

입력 : 2025-09-15 오후 3:09:35
[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의 경영권 분쟁이 어느덧 1년을 맞았습니다.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끝없는 소송전과 여론전이 이어지면서, 어느 한쪽도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상처만 남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고려아연은 창사 최대 실적을 올리긴 했지만 경영권 방어 과정에서 부채가 크게 늘었고, 영풍과 MBK 측은 실적 부진과 각종 악재로 주주들의 신뢰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업계에서는 경영권 분쟁의 향방을 가를 ‘분수령’을 내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내년 3월 열릴 정기 주주총회에서 임기가 만료되는 6명의 이사를 새로 선임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어느 쪽이 이사회 주도권을 쥐느냐에 따라 판세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28일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에서 열린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 모습. (사진=뉴시스)
 
끝나지 않는 ‘경영권 전쟁’
 
고려아연과 영풍·MBK 간의 경영권 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양측 사이에서 벌어진 경영권 관련 소송은 총 24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가운데 지난 2월 MBK·영풍 연합이 제기한 임시 주주총회 결의 취소 청구 소송을 비롯한 5건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이번 분쟁은 지난해 9월13일 영풍·MBK 측이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를 통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면서 본격화되었습니다. 당시 영풍·MBK 측은 고려아연 지분 매수에 나서며 ‘기업가치 제고’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습니다. 고려아연 측은 이에 대해 ‘경영권 탈취를 위한 명분일 뿐’이라고 대응한 바 있습니다. 
 
이후 양측은 각종 소송과 여론전을 이어가며 공방을 벌였습니다. 그 여파로 양측 모두 재무적 부담과 평판 악화를 겪으며 피해가 커졌습니다. 고려아연은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매출 7조6582억, 영업이익 5300억원으로 반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경영권 분쟁 여파로 기업가치는 오히려 악화했습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고려아연의 올해 6월 말 기준 별도 기준 총차입금은 3조7454억원으로 지난해 7329억원 대비 5배 이상 늘었고, 같은 기간 부채비율도 22.5%에서 69.2%로 46.7%포인트(p) 상승했습니다. 지난해 말 임직원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59.6%가 고용 불안을 느끼거나 이직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영풍·MBK 측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영풍은 지난해 9월 고려아연 지분 매수 시도 이후 과거 폐수 유출 사건과 대법원 판결 여파로 석포제련소를 58일간 조업 중단했으며, 올해 상반기 가동률은 39.4%에 그쳤습니다. 이에 따라 상반기 연결 기준 영업손실은 150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기록한 431억원 대비 3배 이상 확대됐습니다. MBK 역시 대주주로 있는 홈플러스 기업회생 사태와 롯데카드 해킹 사고 등 악재가 겹치며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명분이 약화됐습니다. 더불어 검찰과 금융감독원 등 당국이 홈플러스 관련 조사에 착수하면서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과 영풍·MBK 간 경영 분쟁이 장기화하면서 소모적인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자칫 양측 모두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을 떠안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내년 3월 주총 ‘분수령’
 
올해 3월에 있었던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고려아연 측이 집중투표제 도입과 더불어 영풍·MBK 측 의결권을 제한하는데 성공하면서 일단은 고려아연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집중투표제란, 이사를 선임할 때 선임하는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주주에게 부여하고 원하는 후보에게 몰아주는 방식으로 투표할 수 있게 하는 제도입니다. 고려아연 측이 영풍·MBK 측보다 보유 지분이 적은 만큼, 집중투표제는 단순투표제에 비해 최소한의 이사 자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역할을 했습니다. 올해 3월 말 기준 영풍·MBK 측 지분은 41.2%, 고려아연은 최 회장 우호지분 등을 포함해 31~34%가량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고려아연의 이사회는 15명(고려아연 측) 대 4명(영풍·MBK 측)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직무정지 상태인 4명의 이사를 제외하면, 고려아연 측은 11명, 영풍·MBK 측은 4명입니다. 여기서 내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임기가 만료되는 6인(최윤범·정태웅·황덕남·김도현·이민호·장형진)에 대한 투표가 이뤄질 예정입니다. 6인 중 장형진 영풍 고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려아연 측입니다. 
 
이에 업계에서는 이사 19명 중 6명이 교체되는 만큼 내년 3월 열릴 정기 주주총회를 경영권 분쟁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서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도 고려아연이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집중투표제를 도입했음에도, 영풍·MBK 연합은 대주주 지위와 일부 외국인·소액주주 표심을 바탕으로 기존 1명에서 4명으로 이사 수를 늘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내년 주총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질 경우 최 회장이 당장의 경영권은 지키더라도, 영풍·MBK 측 이사회 세력이 확대되면서 경영상 주요 의사결정 구도에는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내후년 주주총회에서는 영풍·MBK 연합이 이사회 과반을 확보해 실질적 경영권까지 넘어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됩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양측 모두 경영권 방어와 확보를 위해 치열한 법정 공방과 주주 설득전에 더욱 매달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내년 3월 주총에서 일부 이사가 교체될 경우 고려아연의 경영 구도에 적지 않은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며 “앞으로 고려아연과 영풍·MBK 모두 법정 공방과 주주 설득, 이사회 장악을 병행하는 데 더욱 힘을 쏟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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