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요청'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하면서 한국군의 숙원이었던 핵추진잠수함 건조가 급물살을 타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한국이 이미 오래전부터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추진해왔던 만큼 이번 경주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로 가장 큰 걸림돌인 '미국의 반대'가 해소된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현재 핵추진잠수함을 보유한 국가는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등 6개국입니다. 호주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2030년쯤 7번째 핵추진잠수함 보유국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이 신속하게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해 확보하게 되면 8번째 보유국이 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핵연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만 있다면 바로 핵추진잠수함 건조 사업에 착수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만큼 내부적인 준비는 어느 정도 진척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아직 한·미가 구체적으로 협의해야 할 부분이 많은 데다 국제사회의 '핵확산 우려' 불식 등 풀어야 할 숙제도 만만치 않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30년 숙원 해소…5000톤급 4척 이상 건조
 
국내에서 핵추진잠수함 건조 필요성이 제기된 건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하며 1차 북핵 위기가 불거진 김영삼정부 때부터입니다.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습니다. 김대중정부에서도 개발을 시도했지만 당시 기술 수준과 안보 전략 등의 이유로 실현되진 못했습니다. 
 
노무현정부 때는 한 발 더 나가기도 했습니다. 2차 핵 위기가 고조되면서 '362 사업'이란 비밀 계획을 세웠는데요. 프랑스 바라쿠다급(4000톤급) 모델로 3척의 한국형 핵추진 잠수함을 2020년까지 실전 배치하는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언론 보도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핵 개발 의혹이 제기됐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통보 등 나라 안팎의 견제에 부딪혀 좌초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수면 아래로 내려갔던 핵추진잠수함의 꿈은 2017년 문재인정부 출범과 함께 다시 부상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토론회에서 "이제 핵추진잠수함은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가 됐다"고 밝혔고, 집권 후 실제 추진에 나섰지만 결국 미국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영원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29일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이 핵추진잠수함 도입에 최대 난관이었던 핵연료 공급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청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동의해 30년 묵은 핵추진잠수함 도입 숙원이 풀릴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군 당국이 이미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위해 사업단을 구성해 상당한 수준 진척을 이룬 것으로 알려진 만큼 개발·건조 과정에서 기술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가장 큰 난관이었던 '안정적인 핵연료 공급'도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으로 해결될 전망입니다. 일부 전문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만으로도 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하니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는 지난 30일 핵추진잠수함의 윤곽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강동길 해군참모총장의 발언을 종합하면 한국 해군이 운용할 핵추진잠수함은 △첫 함 완성까지 약 10년 소요 △배수량은 5000톤 이상 △연료는 20% 이하 저농축우라늄 △최소 4척 이상 건조 등으로 요약됩니다. 
 
"트럼프 정치적 선언 제도·법률로 공식화해야"
 
핵추진잠수함을 보유하기까지 앞으로 남은 숙제도 많습니다. 정상 차원의 '큰 틀' 합의가 이뤄진 만큼 지금부터는 디테일이 관건입니다. 가장 앞선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이 정치적 선언 성격이라는 점입니다. 한·미 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를 확인해야 합니다. 일각에서는 한·미 원자력 협정(123협정) 개정을 위해서는 미국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트럼프 행정부 내 반대론자들은 차지하고 '핵 확산'에 민감한 의회를 설득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는 "문제는 원자로에 들어가는 '핵연료의 안정적 확보'인데 현행 한·미 원자력 협정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제공받는 원자력 기술과 핵연료는 군사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려면, 협정을 개정해 한국이 구매한 우라늄을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문 교수는 "핵연료 문제는 다자적 실무 협상을 통해 풀 수도 있다"며 "미국과의 협의를 기본으로 하되, 필요하면 제3국을 통한 저농축우라늄(LEU) 조달이나 공동 연구개발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문 교수는 미국의 이해와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안으로 '조선·방산·에너지 기술을 포괄하는 조선협의체(SCG·Shipbuilding Consultative Group)' 제도화를 언급했습니다. 이 틀 속에서 핵추진잠수함 추진 체계뿐만 아니라 상선, 극지탐사선, 쇄빙선 등 미래형 원자로 선박의 공동 개발 협력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문 교수의 설명입니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핵추진잠수함 확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은 정치적 수준의 승인"이라며 "제도·법률적, 기술적, 외교적 절차와 과제들이 앞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유 연구위원은 "국가 간의 관계는 철저한 이해관계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지혜롭게 협의하고 대응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가 미국의 산업·안보적 관점에서 미국의 국익에 부합된다는 확실한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유 연구위원은 "이럴 경우 트럼프 행정부는 제도적, 기술적, 외교적 난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조력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런 면에서 한국 내 자체 생산 과정에서 파생될 수 있는 대내외의 제약 요인들을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필라델피아 조선소(한화필리십야드) 등 미국 내 생산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유 연구위원은 "중요한 것은 미국 조야 주요 인사들의 적극적인 지지 여론을 확대시키는 일"이라며 "미국 해군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확보가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적인 해양 안보 질서와 역내 안보질서 유지에 기여하기 위한 한·미 해군 간 연합방위력 증강에도 기여할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유 연구위원은 "이런 인식과 이야기가 미국 해군 측으로부터 먼저 나오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건조 장소는 기간·비용·위험 요소 종합 비교해 합의해야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한화필리십야드의 잠수함 건조에 대한 논란도 있습니다. 잠수함 건조 실적이 없고 숙련된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물론이고 건조 비용만 12조~18조원 이상이 투입될 대형 국책사업을 트럼프 대통령이 지정한 특정 업체가 맡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현재 국내에서 잠수함을 건조한 실적이 있는 조선소는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두 곳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요구대로 한화필리십야드에서 건조한다면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과 마찬가지로 HD현대중공업이 반발할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이를 의식한 듯 안 장관도 국감에서 "한·미 간 추가적인 논의를 반드시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이 문제는 아무리 동맹이라고 해도 국가 전략자산을 외국에서 개발 생산해 들여온 전례가 없는 데다 미국이 전략 물자와 기술을 엄격히 관리·규제하고 있어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하는 과정에서 한·미 간 마찰이 발생할 소지도 높습니다. 
 
문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필라델피아 조선소는 상선 중심의 상업용 조선소로, 잠수함 건조 시설이나 핵연료 취급 설비가 전무하다"며 "만약 이곳에서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하려면 잠수함 건조동, 원자로 모듈 제작라인, 방사선 차폐 시설, 보안·방호 체계, 환경영향평가와 지역사회 수용 절차 등을 모두 새로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과정에는 최소 3~5년, 길게는 10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게 문 교수의 분석입니다. 
 
특히 문 교수는 "잠수함 건조의 핵심은 인력과 공급망"이라며 "하지만 미국 내 군함 건조 인프라는 이미 붕괴 수준이고 인력 부족과 부품 공급 병목이 심각해 미국에서 새로운 잠수함 생산라인을 구축하려면, 한국의 인력과 공급망을 대거 투입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문 교수는 "한국이 기술 인력과 부품을 대거 미국으로 옮긴다 해도 국내 조선산업의 공백과 손실이 불가피하다"며 "숙련 인력의 해외 전출은 국내 생산 차질을 초래하고, 핵심 기자재를 한국에서 조달해야 하므로 물류비와 일정 리스크가 급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문 교수는 "결국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한국 핵추진잠수함 건조'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상징적·정치적 수사일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 내 조선산업 재건을 겨냥한 정치적 메시지일 수도 있는 만큼 이 발언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문 교수는 "오히려 한·미 간 실질적 조선·방산 협력 구조의 가능성을 검증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미국이 한국의 세계 최고 수준 조선 기술력과 생산 효율성을 인정하고, 한국은 이를 동맹 차원의 산업 협력 틀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문 교수는 이 문제 해법으로 한국과 미국에서의 건조 기간·비용·위험 요소를 종합 비교한 후, 양국이 합의해 건조 장소를 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투명성 확보로 '핵확산' 우려 불식해야
 
국제사회의 핵확산 우려와 중국 등 주변국의 반발도 잠재워야 합니다. 당장 중국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0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한·미 양국이 핵 비확산 의무를 실질적으로 이행하고, 지역 평화·안정을 촉진하는 일을 하지 그 반대를 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외교부 당국자는 31일 "우리가 개발·운용을 추진하려는 것은 재래식 무장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라며 "이는 NPT에 부합한다"고 반박했습니다. 핵무기를 가지겠다는 게 아니라 동력원으로 원자력을 쓰는 잠수함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니, 핵 확산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지만 사실상 설득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정부가 비핵 원칙과 국제규범 준수를 천명하는 데 그치지 말고 공개할 수 있는 부분은 적극적이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국제사회의 신뢰를 쌓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이 공통된 주문입니다.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sto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