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5일 미국 해군 제7함대사령부 상륙지휘함인 '블루릿지'(LCC-19·1만9600t)가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주국방이냐, 대미 종속이냐.' 그야말로 격랑의 시대다. 한반도도 동북아도 폭풍전야다. 그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것은 이른바 'K-핵잠'인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약 30년간 꼭꼭 숨은 판도라 상자에 손을 댄 것은 이재명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곧바로 빗장을 잡았다. '한반도 핵'이라는 진보의 금기어가 깨진 순간.
대한민국의 진보 정권과 미국의 보수 정권이 만든 합작품. 혹자는 국방 개혁의 핵심이란다. 혹자는 자주국방의 상징이란다. 결론은 미지의 길. 아무도 모르는 폭풍우 뒤 격랑.
자주 국방보다는 '대미 종속'
결론부터 말하자. K-핵잠은 인도·태평양(인·태) 지역의 게임 체인저다. 단 미국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인·태 전략의 다른 이름은 아시아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해양 패권에 도전하는 미국의 대중 견제 목적에서 파생한 게 아닌가. 자주국방은커녕 대미 종속만 심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응당 나오는 질문. 이재명정부는 도대체 왜 K-핵잠의 승인을 미국에 제안했을까. 그 비밀은 논란 끝에 정부가 유보한 '평화적 두 국가론'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 그 시작은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 때마침 트럼프 대통령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순방을 앞둔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전용기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을 향해 "일종의 '뉴클리어 파워'(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국가)"라고 했다.
K-핵잠의 첫발을 떼는 순간, 한반도 비핵화 명분은 사라진다.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수 있나? 없다. 세계 7번째 핵잠수함 보유국 시동은 필연적으로 비핵화 투명성 원칙을 훼손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앞서 이 대통령이 지난 9월24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설파한 'E·N·D(교류·관계 정상화·비핵화) 구상에도 위배. 핵연료 재처리의 군사적 용도 전환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꼴. 의도했든 안 했든 장기적으로 핵무기 개발의 문을 열어놓은 셈 아닌가.
딜레마 하나. 트럼프 대통령의 '뉴클리어 파워' 언급에도 미국 행정부의 공식적인 대북 입장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다. 이건 불변 중 불변.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P5)이 총 6차례나 핵실험 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불인정하는 이유다. 핵보유국 인정 땐 북한의 체제 보장 요구는 거세진다. 비핵화 자리엔 군축 협상이 치고 들어온다. 대북 제재 해제도 물론. '세계발 핵 도미노'가 불가피하다는 뜻.
그것이 왜 핵이어야 하나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한·미 정상회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어지는 딜레마 둘. 비핵화 명분을 잃은 한국의 '피스 메이커(평화 중재자) 역할론'은 영원히 불가능. 한반도 운명의 키는 북·미 직거래에. 필연적인 대미 종속의 심화. 막판 진통을 겪는 K-핵잠의 주도권도 이미 미국이 쥐고 있지 않나. 한·미 정상회담 하루 만인 지난달 30일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필라델피아 조선소(필리조선소)에서 핵잠수함을 건조할 것"이라고 했다. 핵연료 이전을 요구했더니, 건조 주체를 콕 찍어 압박한 셈이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절차도 비용도 난제다. 핵추진잠수함 건조의 선결조건은 '미국 의회의 방산업체' 지정이다. 방산업체를 지정하든, 직수입을 하든 미국 의회 승인은 필수. 이 과정에서 한·미 원자력 협정 이외에 별도의 협정서 체결을 강요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통상 실전 배치까지 10년간 미국의 입김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K-핵잠 승인 때 '마스가(미국의 조선업을 위대하게)'를 외쳤다. '장사꾼 본능' 트럼프 대통령의 K-핵잠 승인 제1 목적이 미국 조선업 부흥을 위한 전략적 포석에 가깝다는 뜻 아닌가.
비용도 만만치 않다. 미국이 건조한 핵추진잠수함의 국내 직도입에 드는 비용은 10조원 이상. 미국 버지니아급(7800톤 이상) 잠수함 건조 비용과 최소 필요한 수(4척)를 적용한 최소한의 수치다.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군비 경쟁은 필연적.
백번 양보해 10조원이든 100조원이든 햇볕정책 이후 통일의 문을 여는 새로운 열쇠가 필요하다고 치자. 그것이 왜 핵이어야 하나. 이재명정부의 '평화적 두 국가론'에 맞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기조는 '적대적 두 국가론.' 양자의 양립 여부조차 미지수. 마지막 문제 제기는 박근혜정부 시절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당시 진보 시민사회의 반대 논리로 갈음. "동북아의 갈등과 군비 경쟁만 가속하는데, 한국 정부는 과연 무엇을 위해 그리고 누구를 위해 강행하는지 답해야 할 것이다."(참여연대 2016년 6월7일 논평)
최신형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