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지난 11월27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13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강제추행죄에 대해 법정형을 '5년 이상 유기징역'으로 정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제7조 제3항이 합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전경. (사진=뉴시스)
헌재의 이번 결정은 미성년자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의 재판을 맡았던 의정부지방법원이 해당 법 조항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고 제청하면서 이뤄졌습니다. 헌재는 2022년 11월과 2024년 10월에 각각 제청된 두 사건을 하나로 묶어 심리했습니다.
피고인 A씨는 2021년 3월쯤 초등학교 내부공사업체 관리자로 근무하던 중 초등학교 화장실 앞에서 마주친 6세 피해 아동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 갑자기 왼쪽 눈가에 입맞춤하는 등 지나가는 6~7세 피해 아동 3명의 눈가나 이마에 입맞춤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피고인 B씨는 2023년 10월쯤 엘리베이터 안에서 일면식도 없는 7세 피해 아동이 엘리베이터 손잡이에 손을 걸치고 있는 것을 보고 갑자기 피해 아동의 손을 쓰다듬듯이 만지고 잡은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성장 단계에 있는 13세 미만 미성년자의 성적 정체성과 가치관 형성을 보호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봤습니다. 특히 아동은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법을 통해 아동을 보호하고자 하는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헌재는 이 법이 처벌하는 '추행 행위'에는 힘의 크고 약함과 관계없이 기습적인 추행, 신체 접촉이 없는 추행, 성적 목적이 경미한 추행 등 매우 다양한 유형이 포함된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이런 다양한 행위들이 모두 최소 5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처벌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도 확인했습니다.
헌재는 13세 미만 미성년자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미성숙하여 추행 행위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식하거나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극히 부족하다는 점도 주목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경미한 추행 행위라 할지라도 이들의 성적 정체성 및 가치관 형성에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결국, 강제추행의 구체적인 형태와 관계없이 해당 행위의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강제추행의 법정형이 지속적으로 상향됐음에도 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 범죄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는 점 △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신체 접촉이 호감의 표시로서 문화적·관습적으로 용인됐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13세 미만 미성년자에게도 성적 자기 결정권이 매우 중요한 점 △경미해 보이는 성적 행위라 하더라도 이들의 자유로운 성적 정체성 및 가치관 형성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인식에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된 점 등도 헌재 결정의 근거가 됐습니다.
법과 사회적 인식 변화를 종합하면, 입법자가 성폭력 범죄로부터 13세 미만 미성년자를 더욱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는 국민 일반의 가치관과 법감정을 바탕으로 기존의 징역형 또는 벌금형의 선택형 체계에서는 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강제추행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기 어렵다는 형사정책적 측면을 고려해 심판대상조항에서 벌금형을 삭제한 것은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심판대상조항에서 정한 징역형의 하한은 5년이므로 불법의 정도나 행위 태양에 비춰 정상을 참작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법관이 정상참작감경(형법 제53조에 규정된 감경 사유로 구체적 범죄에 대한 처벌의 경중에 영향을 미치는 일체의 사정을 고려해 법률상 감경을 다하고도 처단형의 범위를 완화해 그보다 낮은 형을 선고하고자 할 때 하는 재판상 감경)을 통해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도 있어 법원의 양형 과정에서 구체적인 사정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점을 종합하면 심판대상조항이 형벌에 관한 입법 재량 및 형성의 자유를 현저히 일탈해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반한다거나, 보호법익과 죄질이 다른 범죄들과 그 법정형을 비교해 심판대상조항이 형벌 체계상 정당성과 균형성을 상실해 평등원칙에 반한다고도 볼 수 없다는 겁니다.
형법상 강간죄를 범한 사람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게 되고, 강제추행죄를 범한 사람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됩니다. 성폭력처벌법은 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죄를 범한 사람은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으로 가중해 처벌하고, 강제추행죄를 범한 사람은 5년 이상의 징역으로 가중해 처벌하도록 합니다.
2020년 5월19일 개정을 통해 성폭력처벌법상 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강제추행죄의 법정형 중 벌금형이 삭제되면서 다소 경미한 추행 행위를 해도 그 피해자가 13세 미만 미성년자라면 모두 5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처벌하게 됐습니다. 13세 미만 미성년자를 성폭력 범죄로부터 보호해야 할 필요성과 법관의 재량을 통해 충분히 균형적인 형을 선고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합리적인 범위의 합헌적 개정으로 보입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