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국내 정유업계가 국제유가 상승에 힘입어 대규모 1분기 실적 개선을 앞두고 있지만 내부 위기감은 오히려 고조되고 있습니다. 장부상 존재하는 일시적 재고평가 이익 이면에는 수급 불안정에 따른 원가 상승과 지정학적 위기 요인이 도사리고 있어 하반기 실적을 심각하게 위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 4사의 1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4조~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삼성증권은 에쓰오일(
S-Oil(010950))의 1분기 영업이익을 1조1840억원으로 추정하며 지난달 3일 내놓은 전망치(5958억원)보다 한 달 새 2배 가까이 상향 조정했습니다. 한국투자증권도
SK이노베이션(096770)의 1분기 영업이익을 1조8430억원으로 예상했는데, 앞서 지난 2월 하나증권 전망치(5881억원)보다 3배 가까이 급증한 수치입니다. 비상장사인 GS칼텍스 역시 한국투자증권 전망에 따르면 1분기 매출 13조9000억원, 영업이익 1조4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보이며, HD현대오일뱅크도 흑자 전환이 확실시됩니다.
실적 개선의 핵심 요인은 원유 구매와 제품 판매 시차에 따른 이른바 ‘래깅’(Lagging) 효과 때문입니다. 전쟁 발발 직전인 2월 말 1배럴당 71.2달러였던 두바이유 가격이 지난달 23일 169.4달러까지 치솟으면서, 사전에 저렴하게 매입한 원유 재고 가치가 급등한 것입니다.
석유제품과 원유 가격 차이를 나타내는 복합 정제마진 상승도 실적을 견인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복합 정제마진은 지난 2월 평균 1배럴당 29.3달러에서 지난 10일 기준 58.3달러까지 수직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업계 내부에서는 1분기 막대한 영업이익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실적이 본질적인 경쟁력 강화나 수요 증가에 따른 결과가 아닌 일시적인 회계적 착시에 불과해 지속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서울 시내의 SK에너지 주유소 앞. (사진=뉴시스)
당장 2분기부터는 중동발 수급 차질에 따른 운송비와 보험료 상승분이 원가에 본격 반영돼 수익성을 짓누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유사들은 중동산 원유 수급 불안으로 대체 원유 프리미엄을 지불하며 수입처 다변화를 강제받고 있습니다.
가장 치명적인 뇌관은 국제유가 변동성 확대에 따른 대규모 재고 손실 위험입니다. 고가에 원유를 확보한 상태에서 중동 사태가 진정돼 유가가 급락할 경우 곧장 조 단위 손실로 이어집니다. 실제 국제유가가 수요 부족으로 1배럴당 70달러에서 10달러 수준으로 폭락했던 2020년 1분기 국내 정유사들은 4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최고가격제 시행에 따른 매출 타격도 정유사들 재무 부담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날 한국석유정보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윳값은 전날보다 1.3원 오른 리터(ℓ)당 1996.2원, 경윳값은 약 1원 상승한 1989.8원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일부터 시행된 3차 최고가격은 휘발유 리터당 1934원, 경유 1923원으로 동결돼 있습니다.
반면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국제 휘발유(92RON) 가격은 지난 2월27일 1배럴당 79.64달러에서 지난달 23일 157.22달러로 1.97배, 경유는 지난달 27일 92.9달러에서 지난 2일 292.8달러로 3.15배 급등했습니다. 국제유가 상승분에 1배럴당 15달러에서 30달러 수준의 프리미엄을 얹어 수입하는 상황에서 국내 판매가는 상한선에 묶여 손실이 가중되는 구조입니다. 정유사가 밑지는 부분에 대해 정부가 손실 보전을 약속했지만, 당장 1분기 영업이익이 조 단위로 나올 경우 향후 정산 시 ‘고통 분담’ 여론이 높아질 수 있어 현금흐름 경색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1분기 실적은 과거 싸게 산 재고 물량이 유가 급등으로 장부상 이익으로 둔갑한 것일 뿐 빠르면 한두 달 안에 가격이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 재고평가 손실로 바뀔 수 있다”고 했습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