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수정 기자] 정부가 올해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로 먹거리 물가 안정을 내세우면서 식품업계에 긴장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해 검찰·경찰·국세청 등 사정기관이 전방위 점검에 나서면서 가격 인상과 유통 구조 전반에 대한 압박이 한층 강화되는 분위기입니다.
11일 정부는 설 연휴를 앞두고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고 설탕·밀가루 등 생활필수품 담합과 관련 불법행위를 집중 단속할 방침을 밝혔습니다. 원재료 가격 변동 뿐 아니라, 단계별 거래 관행, 시장 독과점 구조도 세밀하게 들여다봅니다. TF는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식품 물가 문제를 언급하며 '가격 상승 요인을 철저히 점검하라'고 지시한 뒤 6일 만에 구성됐습니다.
제당·제분 담합부터 식품업계 탈세 정황까지 수사 확대
정부의 식품업계 가격 압박 수위를 점점 높이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국세청은 지난 9일 민생 침해 탈세 행위에 대한 세무조사 중간 결과를 발표하며, 식품·주류·생필품 제조 및 유통업체 등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점검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재정경제부)
국세청은 지난해 9월 올해 1월까지 총 3차에 걸쳐 독과점·가공식품·생필품 제조 및 유통업체 103곳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벌였습니다. 적발된 탈루 소득은 약 3898억원이며, 이미 1785억원이 추징됐습니다. 전체 추징세액 가운데 약 1500억원은 주류·빙과·라면 등 대표 먹거리 업종에서 부과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공식품 제조업체 3곳의 탈세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세청은 오비맥주의 경우 시장 점유율과 매출을 높이기 위해 판매점 등에 1100억원대 리베이트를 지급하고, 광고비로 변칙 처리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빙그레는 특수관계법인에 이익을 몰아 주기 위해 물류비 250억원을 과다 지급한 것으로 조사돼 200억원을 추징당하게 됐습니다. 이는 제품 가격 25% 인상으로 이어졌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입니다. 한 라면 제조업체도 300억원 추징이 결정됐습니다.
이에 앞서 검찰은 지난해 말부터 설탕·밀가루 시장을 중심으로 여러 기업의 가격 담합을 수사해 관련자를 대거 기소했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일 CJ제일제당과 대한제분, 사조동아원 등 제분사 7곳이 5년간 6조원 규모의 밀가루 가격을 담합했다고 밝혔습니다. 설탕시장의 90%를 차지하는 제당 3사(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는 2021년 2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3조2715억원의 담합을 저질렀습니다.
공정위는 담합 혐의와 관련한 행정 제재 방안도 병행 검토 중이며, 국세청의 세무조사 결과를 근거로 부당 이익 환수와 추가 과세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이날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올 상반기 집중적으로 국민생활과 밀접한 민생품목을 점검해 불공정거래 행위를 척결하고, 왜곡된 유통구조가 있다면 신속히 바로잡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식품업계, 자구책 마련·리스크 관리 강화
정부의 물가 점검이 이어지면서 식품업계 분위기는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모습입니다. 이 대통령이 먹거리 물가를 직접 관리 대상으로 짚은 만큼, 원재료 가격 상승이나 환율 변동 등 추가 비용 인상 요인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겁니다.
대형마트에 제품이 진열돼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업계는 이런 기조가 이어진다면 수익성에 적신호가 켜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방어에 나섰습니다. 일부 기업들은 생산 공정 효율화, 원부자재 공동 구매 확대, 고마진 제품군 중심의 포트폴리오 재편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실제 식품업계 맏형인 CJ제일제당은 전일 대내외 환경 악화에 따라 올해 고강도 체질개선을 진행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수익성이 보이지 않는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승산이 있는 곳에 역량을 쏟겠다는 복안입니다.
윤석환 CJ제일제당 대표이사는 CEO 메시지를 통해 "근본적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현금 흐름에 방해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비핵심 자산에 대한 강도 높은 유동화로 투자 자원을 확보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K푸드 해외 신영토 확장을 위한 글로벌전략제품 사업과 현금 창출력이 높은 분야에 적극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식품업계 역시 내부 TF 구성을 논의하는 등 전략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지금 상황으로서는 가격 인상은 사실상 봉쇄"라며 "원가 부담이 누적되는 상황이지만 당분간 자체적으로 비용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내부적으로 정부의 기조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TF팀을 만들고, 업계 동향도 실시간으로 파악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수정 기자 lsj598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