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수일째 이어지는 중동발 충격이 금융·실물시장을 동시에 뒤흔들고 있습니다. 원·달러 환율은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한때 1500원을 돌파했고 국제유가가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경유 가격이 원유보다 더 크게 움직이는 등 중동 사태가 단기간 진정되지 않을 경우 물류비 압박에 대한 심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부는 기업 원유 구매자금 지원 확대와 비축유 방출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국제유가와 경유 선물의 폭등세가 가팔라 체감온도를 낮출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지난 1일 서울 시내 주유소에서 한 운전자가 기름을 넣고 있다. (사진=뉴시스)
비축량 충분?…시나라오 '보복·교착 지속'
강기룡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4일 관계기관 합동 점검회의를 열고 중동 사태의 공급망 영향과 기업 지원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정부 점검을 보면, 석유 1억9000만배럴, 가스 9일분 상회 등 208일분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당분간 수급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면서도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나프타·플랜트 등 주요 수출입 품목 영향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국제유가 변동성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중동 외 지역(북미·중남미 등) 원유를 구매할 경우 자금 지원 한도를 기존 90%에서 100%로 확대키로 했습니다. 상황이 악화될 경우 공동비축 우선구매권을 행사하거나 비축유를 방출하는 등 비상 매뉴얼에 따른 단계별 조치도 시행합니다.
문제는 중동발 에너지 리스크가 확대 국면이라는 점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주요 산유국 생산 차질이 동시에 현실화되면서 국제유가의 상방 압력이 크게 확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로서는 보복·교착 지속, 단기 타협, 혼란 장기화의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국제금융센터의 시나리오 분석을 보면, 이란의 제한적 보복과 미국·이스라엘의 군사적 압박이 이어지는 '보복·교착 지속'을 가장 높게 보고 있습니다.
이 경우 군사적 확전은 통제되지만 호르무즈 해협 긴장과 에너지 공급 불안이 장기화되면서 유가 상방 압력이 유지될 가능성이 큽니다. 온건 지도부 부상이나 외교적 타협을 통한 단기 봉합 시나리오의 경우는 유가와 금융시장 변동성이 빠르게 진정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반면 혼란 심화 및 장기화 때는 대리 세력 공격, 테러·사이버전 등 비대칭적 충돌이 확대되며 에너지 수급 차질이 심화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국제유가의 급등과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진단했습니다.
강봉주 국제금융센터 부전문위원은 "이란의 미사일 반격 심화뿐만 아니라 대리 세력을 통한 무력 공격, 테러, 사이버 공격 등 비대칭적 보복 가능성이 높은 상황임에 유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어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안전이 크게 위협받고 사우디·카타르 등의 시설 가동 중단으로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의 유가 급등 우려가 확산될 것"이라며 "향후 지정학 상황 전개·글로벌 수급 여건에 따라 유가 흐름이 좌우될 전망"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4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를 찾은 시민들이 주유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름값 벌써 '들썩'…경유는 '급등'
국내 주유소 기름값은 벌써부터 불안합니다. 국제유가가 국내 주유소 기름값에 반영되기까지 통상 2~3주의 시간차를 보이지만 불안심리가 기름값을 끌어올리고 있는 겁니다. 이날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을 보면, 오전 9시 기준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당 1820.53원으로 전날(1788.47원)보다 32.06원 상승했습니다.
특히 물류비에 영향을 주는 경윳값은 심상치 않습니다. 경유는 서울 평균 1766.02원으로 전날(1707.43원)보다 58.59원 급등했습니다. 전쟁 여파로 물류의 핵심 연료인 국제 경유 선물가격은 하루 만에 14% 폭등한 상황입니다. 이는 1991년 걸프전 이후 최대 상승폭입니다. 원재료 원유보다 제품인 경유의 오름폭이 2배 이상 가팔라 실물 경제에 가해지는 충격은 더욱 직접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 화물차의 90% 이상은 경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만큼, 경유 가격이 오르면 화물 차주들의 수익성 악화와 운송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대형 화물차 운영비에서 유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50%에 달합니다. 경윳값이 10%만 올라도 운송업체는 적자로 돌아서는 구조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하소연입니다.
아울러 해상 물류는 봉쇄와 고유가의 이중고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앞서 한국무역협회는 우회 항로 이용 시 해상 운임이 기존 대비 최대 50~80% 상승할 것으로 분석한 바 있습니다.
지난 1일 부산 남구 신선대(아래) 및 감만(위) 부두 야적장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사진=뉴시스)
유가·환율·물류비 압박…성장률 하방 압력
간밤 한때 1506원을 기록하는 등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1500원선을 돌파한 원·달러 환율도 여전히 불안합니다. 상승폭이 내려왔지만 전일 대비 약 20원 오른 1480원대 후반을 기록했습니다.
이란 공습 이후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글로벌 자금이 달러로 이동한 영향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동 사태가 투자자들의 위험자산 회피로 이어지면서 신용(크레딧) 시장의 불안 확산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중동 사태가 단기간 진정되지 않을 경우 유가·환율·물류비의 '3중고'는 경제 실핏줄인 수출과 내수를 동시에 압박하는 만큼, 2분기 이후 성장률 하방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강기룡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중동 지역의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력해 주요 품목의 수급 상황을 지속 점검할 것"이라며 "기업이 원활하게 대체 물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국내 공급망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