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의 노이즈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급변하는 국제 정세만큼, 살아남기 위한 국가 간의 전략적 공조도 요구되고 있습니다. 단순한 외교적 관계의 개선을 넘어 공급망 안정과 첨단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실질 협력이 시급해지고 있는 겁니다.
특히 '복합위기'는 중동 상황과 미·중 전략 경쟁에 따른 공급망 리스크뿐만 아닙니다. 갈수록 심화하는 기후 시계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경고음이 커지면서 국가 인프라 전반의 변동성 적응 대책은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1일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 컨테이너 터미널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사진=뉴시스)
'복합위기 시대'…공통 압력 '한일 공조'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22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복합위기 시대의 한·일 신경제협력 세미나'에 참석해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마주한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양국 간 협력 방향을 언급했습니다. 이는 '복합위기' 해법을 위한 방안으로 공통 압력 속에 놓인 국가 간의 경제·통상 협력을 재정립하자는 취지입니다.
현재 한·일 양국은 중동 상황과 미·중 전략 경쟁 등 공동의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유사 입장의 중견국으로서 공급망, 에너지·자원, 인공지능(AI), 통상협정 등 공조 전략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은 산업 구조와 첨단 제조업 중심 경제라는 점에서 양국의 이해관계는 상당 부분 겹칩니다. LG전자, SK, S-오일, 포스코 등 주요 기업들과의 현지 간담회를 통해 자원, 공급망 및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의 한·일 간 협력 강화 방안을 모색한 것도 이 같은 맥락입니다.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반도체 공급망 협력 여부입니다. 포토마스크 분야 글로벌 선도 기업인 테크센드포토마스크의 약 1200억원 규모 투자 유치는 상징적 의미가 크기 때문입니다.
포토마스크는 반도체 노광 공정의 핵심 소재로 기술 장벽이 높은 분야입니다. 14nm 이하 첨단 공정용 제품 양산을 위한 제3공장 설립 계획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약한 고리'를 보완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과제도 남습니다. 정치·외교 변수에 따른 협력 지속성과 기술 경쟁 충돌, 공급망 의존 구조 등이 대표적입니다.
여 본부장은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인센티브 강화 및 규제 개선 등 한국 정부의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전달하고 공급망 재편 기조하에 한국의 첨단산업 경쟁력과 투자 매력을 강조하는 한편, 지속적인 투자 확대와 협력 강화를 당부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 20일 전남 여수세계박람회장에서 열린 '녹색대전환 국제주간' 현장에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기후에너지환경부)
기후 '경고음'…"거버넌스·전환적 적응 필요"
공급망 위기 못지않게 '기후의 역습'도 지적되고 있습니다.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이산화탄소(CO2) 농도는 430ppm을 넘어서는 등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이는 전 지구 평균보다 높은 수준으로 한반도의 온난화 속도가 위험 수준에 도달했음을 방증합니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변동성'입니다. 올해 서울과 제주의 벚꽃 개화 시기 차이는 단 하루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서서히 북상하던 계절의 흐름이 깨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21일 전남 여수에서 열린 대한민국 기후위기 진단 토론회에서 유상진 기상청 기후과학국장은 "1910년대 연간 2.9일에 불과했던 서울의 열대야 일수가 2020년대 들어 29.5일로 약 10배 급증했다"며 "지난해 서울의 여름철 열대야 일수는 46일을 기록하며 역대 1위를 경신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올해 4월 중순 서울 기온이 29.4도까지 치솟고 평소 2주가량 차이 나던 서울과 제주의 벚꽃 개화 시기가 단 하루 차이로 좁혀지는 등 기상 변동성이 극에 달한 점을 지목합니다.
이날 토론에 나선 전문가들은 현 상황을 ‘진단이 필요한 비상시국’으로 규정했습니다. 민승기 포항공대 교수는 "재작년 겪었던 열대야 경우는 표준 편차라고 설명을 하는데 보통 표준 편차 2가 넘어가도 상당한 이례적인 건데 지금 5가 넘어가는 현상이다. 주 먼 미래에 전 지구 온도가 거의 2.5도 정도 올라갔을 때 현상을 겪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노경숙 기상청 기후변화감시과장은 "작년 산불 발생 당시 극한 고온 현상은 온난화가 없을 때보다 발생 가능성이 2배가량 높아진 결과"라며 과학적 원인 분석을 통한 정량적 가이드라인 제공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노 과장은 "온난화가 없을 때 산업혁명 이전의 기후 상황을 모델로 모의를 하고 지금의 이상 기후가 발생했을 때랑 서로 대비를 해 그때 대비 몇 배의 강도로 이런 이상 기후가 발생을 하고 인간 활동으로 인해 이런 이상 기후가 몇 배 더 확률을 높였는지 그런 정량적인 수치들을 제공하는 계획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길을 걷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상우 서울대 교수는 "오늘 관측해 내일을 예측한다는 것이 세계기상기구(WMO)의 모토다. 국내 자료 접근이 칸막이로 인해 쉽지 않다. 기상청 주도로 '국가 기후변화 감시 정보 통합 플랫폼'을 구축해 수요자 니즈에 맞춘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찬 서울시립대 교수는 "부처마다 데이터와 기준이 다르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국가가 강화 기준을 명료하게 하지 않으면 예산을 쓰기 역부족이다. 인프라 설치 강화 기준에 있어 어느 기준을 가지고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전제를 두고 국가 거버넌스를 풀어야 한다.”
유가영 경희대 교수는 "기후 적응은 단순히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전환까지 고려한 '전환적 적응'의 개념으로 가야 한다"며 "정보 전달 체계에 있어 전력망이나 네트워크가 끊겼을 때를 대비한 라디오 등 '플랜 B'도 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이상 기후로 농축수산물 물가가 상승하는 가운데 서울 중구 중부시장에서 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