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Conquest', 곧 '정복'은 다른 나라나 민족에 대한 군사적 지배를 뜻합니다. 역사에서 '정복'이 남기는 울림은 단순한 승패가 아니었습니다. 군사력의 승리이자 기존 질서의 재편, 때로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복의 정점에는 언제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자리해 왔습니다.
우리가 익히 접해온 위인전 속 정복자들을 떠올려보면 그 성격은 결코 단일하지 않습니다. 갈리아를 정복하며 로마의 권력 구조를 뒤흔든 정치 혁명형 정복자도 있었고 유럽 전역 등 근대 국가 시스템을 장악하려던 정복자도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에서도 단순한 영토 확장을 넘어 세계 자체를 새롭게 연결하고 재편하려한 헬레니즘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헬레니즘 양식의 남성 토르소 조각상. (사진=뉴시스)
알렉산더 대왕은 불과 10여년 만에 그리스를 출발점으로 삼아 소아시아와 이집트를 거쳐 거대한 아케메네스 제국을 붕괴시키고 인더스강 유역에 이르렀습니다. 그의 원정은 단순한 군사적 승리를 넘어 서로 단절돼 있던 지역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헬레니즘 세계입니다.
알렉산더의 제국은 단순한 지배가 아닌 문명의 재구성으로 평가되곤 하죠. 하지만 정복 이면을 보면, '문명의 통합'이라는 긍정적 의미로만 환원될 수 있을까요. 헬레니즘 세계는 흔히 문화적 융합의 산물로 설명되지만 그 출발점은 어디까지나 군사적 강제에 있습니다. 새로운 도시가 건설되고 확산되는 과정은 동시에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재편하는 고통의 과정을 수반하죠.
정복지 입장에서 본다면 선택이 아니라 강요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언어의 변화, 지배 엘리트의 교체, 경제 구조의 재편은 일상과 삶의 방식을 바꾸는 압력으로 작용합니다. 헬레니즘이라는 이름 아래 이뤄진 '혼합'은 결코 대등한 교류만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죠. 그것은 권력의 비대칭 속에서 진행된 재구성일 뿐이죠.
알렉산더는 페르시아를 무너뜨렸지만 페르시아라는 문명을 지우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문명은 형태를 바꾸며 살아남았고 더 강한 모습으로 재등장했습니다. 현재의 이란이 당시 헬레니즘 세계의 일부였습니다. 하지만 헬레니즘은 과거에 남고 아랍 중심 질서에 흡수되지 않기 위한 시아파로 전통 계승이 강화됐습니다.
2300년 전 세계 최강의 군대를 이끌고 페르시아의 심장부에 깃발을 꽂았던 알렉산더조차 끝내 굴복시키지 못한 것이 사실상 이란의 신앙인 셈입니다. 신앙이 강한 사람과는 이성적 대화가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필연적 대립'보단 사실상 피하고 말죠.
지난 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통 계승의 강력한 신앙을 고집하고 알렉산더조차 바꾸지 못한 이란을 향해 트럼프는 연신 "우리가 이겼다", "다음 정복"과 같은 호언장담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판 정복자임을 자처하고 있는 트럼프. 물리적 '승리'라 믿는 오만함은 결국 역사의 거대한 되돌이표 앞에서 좌절하기 마련입니다.
신앙과 문화적 뿌리는 정복이나 명령으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스스로 변형되고 선택돼야 한다는 걸 망각한 건 왜일까요. 현대판 정복자의 거친 언사가 깡패 수준으로 들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겁니다.
계몽주의를 뿌리에 둔 미국과 강력한 종교적 신념에 근거한 이란 간의 대립으로 인해 오늘날 온 세계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정복자의 오만과 피정복자의 불굴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이 그 파편은 인류 전체가 나눠 감당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 행보에 대한 우려심입니다.
스스로 정복자 놀이에 빠진 트럼프는 관세 폭탄과 중동발 에너지 위기에 이어 또 무엇을 노리고 있을까요. 전 세계 경제가 진정으로 대응해야 할 것은 작금의 사태를 넘어 오만함에 눈이 먼 정복자가 다음 목표로 삼고 있을 '그 무언가'일 것입니다.
지난 1일 부산 남구 신선대 부두 야적장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사진=뉴시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