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국내 10대 대기업집단의 계열사 간 채무금액이 1년 새 5조원가량 늘어난 가운데 기업별로는 자금 운용 전략이 갈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삼성과 SK는 채무를 덜어내며 내실 다지기에 주력한 반면 한화와 LG, 신세계는 채무보증을 지렛대 삼아 자금을 수혈하는 모습입니다.
테헤란로를 따라 늘어선 서울 강남구의 고층 건물들. (사진=연합뉴스)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10대 그룹의 지난해 말 기준 채무 잔액(공정거래법상 제한되는 채무보증 이외 채무보증 기준)은 79조2736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채무 잔액은 전년도(74조2005억원)에 견줘 7% 늘어난 수준입니다.
같은 기간 채무보증 금액은 157조7103억원에서 150조4731억원으로 5% 감소했습니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높아짐에 따라 보증 한도 자체는 줄이며 보수적으로 운용하고 있지만 실제로 남은 빚인 채무금액 잔액은 되레 증가한 것입니다.
공정거래법상 제한되지 않는 채무보증은 주로 해외 사업이나 수출 관련 보증 해외투자가 활발하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그룹 전체의 우발채무 리스크가 커지는 등 부실 전가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우려도 존재합니다.
그룹별 속내를 들여다보면 재무 운용 전략이 갈렸습니다. 재계 1, 2위인 삼성전자와 SK는 나란히 채무 다이어트에 돌입했습니다. 삼성전자의 채무 잔액은 8조693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6% 줄었고 보증액은 48조2446억원으로 11% 감소했습니다. 계열사별로 보면 건설업을 주력으로 하는 삼성물산에 대한 채무 잔액(1769억원)만 40% 늘었고 삼성전자·SDI·디스플레이·중공업에 대한 채무는 모두 줄었습니다.
국내 10대 그룹 중 채무 잔액이 가장 많은 SK 또한 28조원이던 금액을 26조5665억원으로 5% 줄였습니다. 빚 보증 잔액은 47조원에서 40조원으로 15%나 급감했습니다. 특히 SK하이닉스의 채무 잔액이 1조6155억원에서 670억원으로 1년 만에 96%나 감소했습니다.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폭증으로 작년 말 현금성자산이 14조원을 넘어섰으며 차입금보다 보유 현금이 더 많은 순현금 기조를 보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룹에서도 신규 보증을 억제하고 현금흐름 중심의 경영을 통해 재무건전성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국내 10대 그룹 계열회사 간 채무 현황. (인포그래픽=뉴스토마토)
반면 채무보증을 지렛대 삼아 공격적인 자금 조달과 투자를 단행하는 곳도 있습니다. 10대 그룹 중 채무 잔액(45%)과 보증액(34%)이 가장 많이 늘어난 LG의 경우 차량용 조명을 담당하고 있는 ZKW의 서비스 법인(ZKW Group GmbH)과 LG전자 해외 법인 등에 대한 채무를 늘렸고 LG에너지솔루션과 LG이노텍에 대한 채무보증도 각각 68%, 28% 증가했습니다.
한화의 채무 잔액 또한 15조2706억원으로 1년 전보다 39% 뛰었고 채무보증 규모는 11% 오른 16조8562억원으로 나왔습니다. 방산, 에너지 등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높여야 하는 시점에서 적극적으로 채무보증을 선 것입니다. 여기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베트남 리스계약과 관련한 계약이행보증과 한화 자회사 필리조선소(Hanwha Philly Shipyard Inc.)에 대한 현지금융 신규 차입에 대한 보증이 제공됐습니다. 이를 통해 단기 유동성에 대응하고 운영자금을 확보한다는 목적입니다.
이 밖에 신세계는 온·오프라인 유통망 재편을 위한 자금 조달로 인해 채무 잔액(7354억원)이 43% 증가했으며 포스코홀딩스와 롯데지주도 각각 22%, 11% 늘었습니다. 반면 현대차의 채무 잔액은 7조9252억원 수준으로 전년과 유사했으며, HD현대 기업집단현황 공시의 대표회사는 에이치디한국조선해양의 채무 잔액과 보증액은 각각 16%, 13% 감소했습니다.
신평사 한 관계자는 “설비, 지분 투자 등의 목적으로 레버리지를 일으키면 차입 부담은 확대된다”며 “투자 소요에 대응 가능한 재무 완충력이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