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며 "중동 전쟁은 결코 하지 않겠다"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과 이란의 40년 악연을 다시 반복하고 있습니다.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에서 시작된 양국의 악연이 2026년 현재에도 재연되고 있는 건데요. 지난 40년 악연의 마침표가 될 것인지, 아니면 반복되는 족쇄로 남을 것인지 이목이 집중됩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소방대원들이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건물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40년째 질긴 '악연'…역사의 반복
8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9일째 접어든 이란 전쟁은 중동 전역의 피해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란이 걸프국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겠다고 사과했지만 다시 공습을 퍼부었고, 이스라엘의 공격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이란의 혁명수비대는 <파르스 통신>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을 상대로 최소 6개월의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시작된 이번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이 수천 년 역사상 주변 중동 국가들에 패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지만 미국과 이란의 질긴 악연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결국 1979년 이슬람 혁명 당시부터 시작된 악연이 다시 되풀이되기 시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입니다. 이란은 1979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서방 친화적 성격을 가진 팔레비 왕정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이슬람 시아파 근본주의 세력이자 반정부 지도자였던 루홀라 호메이니가 팔레비 왕정을 축출하고 이슬람공화국을 선포하면서 미국과의 악연은 시작됐습니다.
같은 해 11월 미국으로 도피한 팔레비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했고 무려 444일 동안 미국인 52명을 억류했습니다. 해당 사건을 계기로 미국과 이란의 외교는 단절됐고, 돌이킬 수 없는 악연의 늪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중동 지역에서 팔레비 정권이라는 우호 세력을 잃은 미국은 중동 정책에도 변화를 줬습니다. 이슬람 혁명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직접 군사개입' 대신 간접 방식을 활용한 미국은 1980년 1월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의 이른바 '카터 독트린'을 통해 페르시아만 지역의 지배권 장악 시도를 미국의 핵심 이익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했고, 현재의 중동 정책의 근간이 됐습니다.
또 1980년부터 8년간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은 이란의 적대적 반미 의식을 강화시켰습니다. 미국은 이슬람주의 확산을 우려해 이란의 적인 이라크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고, 이로 인해 이란은 서방을 적으로 인식했습니다.
게다가 1988년 7월 미 해군 순양함 빈센스호가 이란 여객기를 군용기로 오인해 격추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이때 29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양국 관계가 더 이상 복원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겁니다.
미국은 1990년대 이란을 '테러 지원국'으로 분류하며 경제제재에 착수하기 시작했고 2002년에는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이 이란을 북한 등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했습니다. 2003년에는 이란의 핵 개발 문제까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경제제재는 압박이 더 거세졌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기로에 선 '중동 사태'…변수는 '트럼프'
반전도 있었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이란·쿠바 등과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었습니다. 2015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에 독일까지 가세한 6개국은 이란과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이라는 핵 협상을 타결했습니다. 이란이 국제사회의 핵 감시 체제를 수용하고, 이를 대가로 경제제재를 풀어주는 내용입니다.
이때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이란 대통령과 통화하고 핵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하지만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존의 악연은 반복되기 시작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 합의를 '최악의 거래'라고 규정했고 다시 경제제재에 돌입했습니다. 여기에 2020년 1월 이란의 영웅으로 불리는 카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무인기로 공격을 통해 암살했습니다.
트럼프 1기 종료 후 조 바이든 행정부는 중동의 중재국인 카타르 등의 관여를 통해 이란과 간접 협상을 벌였지만, 입장 차를 줄이지는 못했습니다.
미국과 이란이 협상을 반복하는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더 강력해진 '미국 우선주의'로 재집권에 성공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미국의 '전쟁 개입'에 거센 비판을 내놓으며 지지 세력을 끌어모았는데요. 하지만 취임 이후 총 8번의 공습이 있었고, 이 중 이란만 총 두 번 공습했습니다.
지난해 6월 이란 내 3곳의 주요 핵시설을 스텔스 폭격기를 동원해 파괴하는 '미드나잇 해머' 작전을 벌였고, 지난달 28일 하메네이 축출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미국과 이란의 40년 악연이 이란 최고지도자 제거까지 이른 건데요.
문제는 미국과 이란의 상황이 마무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중동 전쟁의 장기화가 미국의 의도가 아니듯 다시 한번 수렁에 빠진 겁니다. 특히 하메네이 제거 후에도 이슬람혁명수비대 중심의 반격이 사그라들지 않으면서 자칫 대규모 희생을 감수하는 '지상군 파병'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즉 일주일을 넘긴 중동 사태가 기로에 서 있는 셈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