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100달러' 돌파…30년 만에 '가격상한제'

"공급 차질 아직인데, 휘발유 폭등"…대대적 점검 예고
유류비 인하+소비자 직접 지원 '검토'…유동적 대응키로

입력 : 2026-03-09 오후 5:13:35
[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중동의 불확실성 증대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자, 우리 정부도 특단의 대책을 내놨습니다. 지난 30년간 사문화돼 방치된 '최고가격 지정제'를 비상조치로 꺼내 가격 통제에 나서는 건데요. 급등하는 국제유가가 시장에 과도하게 일찍 반영되는 이상 현상을 바로잡고, 유류세 인하와 소비자 직접 지원 등의 조치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중동 상황 관련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주 주기 '최고가격'…추경 검토 가능성도
 
이재명 대통령은 9일 청와대에서 중동 상황 관련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정유사와 주유소의 담합, 매점매석, 사재기 등 불법행위는 철저하게 단속하고 위반할 경우 그로 인해서 생길 이익의 몇 배에 해당되는 엄정한 제재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최근에 과도하게 인상된 석유제품에 대해서는 최고가격 제도를 신속하게 도입하고 과감하게 시행해야겠다"며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물가 부담이 서민들에게 가장 먼저, 또 가장 크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세심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임시 국무회의 당시에도 "유류 공급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진 것도 아닌데 갑자기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폭등했다"며 "석유류 제품에 대한 최고가격 지정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습니다.
 
이 대통령의 설명대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주유소 등에서 급격한 가격 인상이 곳곳에서 발견됐습니다. 국제유가 반영까지 통상 2주가량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이번에는 시차 없이 곧바로 반영된 겁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오후 4시 기준 리터당 1902.7원입니다.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긴 건 이날인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했던 지난 2022년 7월 말 이후 3년8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1900원대를 넘어선 겁니다. 즉 공급의 차질이 발생하기도 전에 거센 오름세가 나타난 셈입니다.
 
이에 이 대통령은 '불법행위'를 근절하겠다며 사문화된 '최고가격 지정제'를 꺼내 들었습니다. 최고가격 지정제는 1997년 유가 자유화 조치 이후 지난 30년간 적용된 적이 없습니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제23조에는 석유 가격이 현저히 등락해 국민경제의 안정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 산업통상부 장관이 판매가격의 최고액을 직접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격을 누를 경우 정유사와 주유소에서 공급 물량을 줄이고, 소비자의 구매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업자의 손실을 국가가 보전해 줄 수 있다는 규정으로 인해 재정 부담도 우려됐는데요. 
 
그럼에도 정부는 다각적 검토를 통해 석유류 제품의 최고가격 지정을 이번주 내로 고시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비정상적 가격 결정을 방지하고,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비정상적 물가 인상을 막겠다는 취지입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부는 정유사나 주유소들이 가격을 올릴 때는 빨리 올리고 내릴 때는 천천히 내리는 비대칭성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며 "석유제품의 비정상적 가격 결정을 방지하고 가격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고가격제 시행 방안을 논의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산업부에서 석유사업법에 근거해 이번주 내로 최고가격제를 시행하도록 고시 개정 등 관련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겠다고 했다"며 "실효성 있는 제도 시행을 위해 담합이나 탈루 등 시장 교란 행위가 없는지 공정위와 국세청이 면밀하게 들여다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최고가격제는 2주를 주기로 설계할 예정입니다. 이번 주 첫 최고가격이 고시되면 향후 2주 동안 해당 금액을 넘길 수 없는 건데, 청와대는 현재의 석유류 제품의 가격보다는 낮은 가격으로 설정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추후 최고가격은 중동 상황 및 석유류 공급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 조치가 예상됩니다.
 
대신 2주 동안의 최고가격 설정 이후 중동 상황에 따라 가격의 변동이 거세지면 유류세 인하를 1차 추가 대응 방안으로 검토 중입니다. 최고가격제와 함께 유류세 인하를 유동적으로 활용해 완충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여기에 소비자 직접 지원에 대한 방안도 검토 중인데요. 김 실장은 "(중동 상황이) 얼마나 지속이 될지 알 수 없다"면서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 가능성에 "진지한 논의를 많이 해봐야 할 것 같다"고 언급했습니다. 최고가격제 시행에 따른 손실 비용 보전과 소비자 직접 지원을 위해 '재원'이 필요한 만큼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겁니다.
 
김용범 정책실장이 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중동 상황 등 비상경제점검회의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나리오별 '수급 점검'…비축량 208일분
 
정부는 중동 상황 변화에 따른 시나리오별 수급 대책도 점검했습니다. 김 실장에 따르면 현재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영향을 받은 원유 도입량은 하루 170만배럴 수준이며, 한국이 비축한 석유량은 1억9000만배럴로 208일 지속 가능 수준입니다. 
 
여기에 산유국과 공동 비축한 물량인 0.2억 배럴의 우선 구매권 행사와 석유공사의 해외 생산분을 국내로 돌리는 방식도 가능합니다. 김 실장은 "전략적 협력 관계에 있는 나라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는 물량을 확보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중동 외 지역으로 원유 도입선을 다변화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가스 수급과 관련해서는 "올해 도입 예정 물량 중 중동의 비중은 14% 수준으로, 카타르 생산 물량 중 약 500만톤 차질이 예상되나 가스공사 등에서 대체 물량을 도입할 수 있어 수급 차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했습니다.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와 관련해서는 100조원 규모의 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늘려 적극적으로 시장을 방어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김 실장은 "100조원은 어지간한 충격은 대응할 수 있는 규모"라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비하는 정도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규모 증액) 논의를 시작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현재 정책금융 기관 등 신청 물량은 3500~4000억원 수준으로, 아직까지는 공급 여력이 충분하다는 설명입니다.
 
한편 중동 상황 관련 관계기관 합동 대응반 산하 3개 반의 장을 기존 1급에서 차관급으로 격상하고 경제부총리 주재 경제관계장관회의도 비상경제장관회의로 전환하기로 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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