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사기열전(詐欺列傳)

입력 : 2026-03-31 오전 6:00:00
막 운전면허를 따고 생애 첫 차를 구매한 한 청년이 한적한 도로 위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뒷유리 왼쪽 하단에 스마일 이모티콘 ‘초보 운전’ 스티커가 붙어 있다. 청년의 차 옆에 소형 냉동 탑차가 정차하더니, 운전자가 창을 내리고 그에게 손짓을 한다. 얼떨결에 창을 내리자, 운전자가 길가에 차를 잠시 대보라고 했다. 청년은 혹시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한 줄 알고 시키는 대로 근처의 갓길로 차를 몰았다. 냉동 탑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청년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평범하게 생긴 젊은 남성이었다. 머리를 끄적이며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제가 백화점에 납품하는 냉동 생선을 배달하는 사람인데요, 배달하러 갔더니 받을 사람이 다른 도시로 이사 가고 없어 낭패를 봤습니다. 제주산 옥돔인데, 한 마리에 10만원씩 하는 겁니다. 회사로 가지고 가봐야, 이미 상품으로 포장한 거라 폐기해야 합니다. 마리 당 2만원에 드릴 테니, 한 박스(10마리) 가져가십시오. 기름값이라도 하게 도와주십시오.” 백화점에 납품하는 고급 생선을 5분의 1 가격에 준다는 것이었다. 사정이 딱했다. 명절을 앞둔 날이었고, 무엇보다 예의가 바르고, 선하게 생겼었다. 청년은 현금이 모자라 다섯 마리만 샀다. 2004년이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기억도, 상상도 할 수 없다. 이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없다. 한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기계적으로 유튜브를 연다. 영상을 찾아 검색을 할 필요도 없다. 유튜브는 그보다 더 그를 잘 안다. 그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찾아 눈앞에 내어준다. 한참 유행하는 유튜브 채널을 보고 있는데, 어울리지 않은 댓글이 하나 보였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부탁드립니다. 배가 너무 고픕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습니다. 빵이라도 하나 사 먹을 수 있게 천원만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 ××은행, 386-***-******, 김×은입니다.” 1만원을 보낼까 하다가, 2만원을 보냈다. 다음날 초등학생 작은 딸에게 핀잔을 들었다. “아빠, 그 사람 핸드폰 요금이랑 유튜브 구독료는 어떻게 낸대?”
 
그는 알뜰하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각종 쇼핑 사이트에서 가격과 평점들을 비교한 다음, 우선 중고마켓이나 당근마켓 등에서 더 싼 물건이 있는지 찾아본다. 오래된 청소기가 고장이 나 새 청소기를 구입하기로 했다. 당근마켓에서 ‘청소기’를 검색하니, 온갖 종류의 청소기 목록들이 사진과 함께 주르륵 펼쳐진다. 특이한 제목이 시선을 끌었다. “저, 파혼했어요ㅠㅠ” 혼수로 비싼 청소기를 마련했는데, 파혼을 하게 되어 쓸모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박스도 뜯지 않은 새 상품이다. 100만원이 넘는 상품인데, 20만원에 팔겠다고 한다. 가격 검색 사이트에서 캡처한 이미지도 첨부되어 있다. 실제로 여러 오픈마켓 사이트에 100만원 안팎의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독일의 유명 제품이라는 설명을 증거하듯 삼색 독일 국기가 그려져 있었다. 브랜드 이름도 독일어처럼 보였다. 택배로 배송된 청소기는 중국제로, 바닥에 붙은 머리카락을 빨아들이지 못했다. 판매자는 매일 프로필을 바꿔가며 결혼과 파혼을 반복하고 있고, 같은 청소기가 중국 해외 직구 사이트에서 1만9900원에 판매되고 있다. 
 
기술 발전과 함께 사기 수법도 비대면이 주류가 되었다. 택배 상자에 중고 노트북 대신 벽돌을 담아 보낼 수 있게 되면서, 아리랑치기가 사라졌다. 덕분에 취객들은 마음 놓고 밤거리를 활보할 수 있게 되었다. 사기는 이야기를 판다.
 
천경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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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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