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이 지난 1~3일 열린 이순신방위산업전에서 전시한 잠수함 모형.(사진=뉴스토마토)
국가 안보와 직결된 대형 전략사업은 때로 '비닉사업(대외비사업)' 형태로 추진된다. 비닉사업은 국가 안보와 외교, 군사기술 보호를 위해 사업의 목적과 내용, 일정, 예산 등을 제한된 범위에서 공유하며 추진하는 방식이다. 잠수함용 수직발사관이나 전략무기 체계와 같은 분야에서는 이런 방식이 일정한 필요성을 가질 수 있다. 다만 핵추진 잠수함처럼 법·외교·산업·예산·기술·인력 양성이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국가 전략사업에는 어느 단계까지 비닉을 유지하고 어느 시점부터 공개 협력 체계로 전환할 것인지에 대한 보다 정교한 판단이 필요하다.
비닉사업은 분명 장점이 있다. 외교적 마찰을 줄이고 기술 유출 위험을 낮추며, 초기 단계에서 불필요한 정치적 논쟁을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동맹과 국제 규범이 복잡하게 얽힌 사업에서는 비닉 추진이 일종의 완충 장치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상태가 장기간 지속될 경우, 범정부 협업과 산업계 참여,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는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 핵추진 잠수함 사업처럼 복합적이고 장기적인 사업일수록 이러한 한계는 더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이 사업을 둘러싼 논의에서 중요한 기준점은 지난해 10월29일 한·미 정상회담이다. 당시 정부 발표에 따르면, 한·미 정상은 한국의 핵추진 재래식 잠수함 도입 문제에 대해 후속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고, 미국 측도 그 필요성에 공감을 표명했다. 따라서 현 단계의 가장 정확한 표현은 '건조 협력이 최종 확정됐다'기보다, 핵추진 잠수함 도입과 관련한 후속 협의의 필요성과 방향이 한·미 정상 차원에서 확인됐다는 것이다.
이후 정부가 실제로 취한 조치 가운데 공개적으로 확인되는 내용도 있다. 국방부는 2월 '안정적 핵잠 사업 추진을 위한 특별법 제정 연구' 용역을 발주했고, 정례브리핑에서도 원자로와 핵연료 등 핵잠의 특수 요소를 관리할 규정이 부재해 이를 포괄하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최소한 정부가 핵잠 사업을 단순한 함정 건조사업이 아니라 별도의 제도 정비가 필요한 특수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협의 필요성을 정부가 공식화했다는 점이다. 외교부는 3월 말,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과 관련해 미국과 긴밀히 소통하는 한편 IAEA와도 협력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고, 이를 '초기 소통'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는 핵연료의 군사적 사용 문제를 더 이상 추상적 쟁점이 아니라 실제 협의 대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현재 공개적으로 확인되는 조치는 특별법 연구용역 발주, 추진팀 운영, 그리고 미국·IAEA와의 초기 협의 수준이다. 반면 장비 개발 일정, 협력업체 역할 분담, 해외 조달 장비 확보 계획, 육상 원자로 시험체계 준비와 같은 세부 실행계획은 공개적으로 충분히 확인되지 않는다. 이것이 곧 사업이 정체돼 있다는 확정적 증거는 아니지만, 적어도 공개 가능한 영역에서의 범정부 실행 체계가 아직 충분히 가시화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비닉사업 신중론'은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핵추진 잠수함 사업은 단순히 선체를 만드는 사업이 아니다. 한·미 협의, IAEA와의 절차 설계, 특별법 제정, 산업 참여 구조 마련, 시험·인증 인프라 구축, 장기 인력 양성까지 함께 움직여야 완성되는 국가 시스템 사업이다. 그런데 사업의 상당 부분이 장기간 비닉 논리 안에 머물 경우, 공개적으로 협력해야 할 영역까지 함께 묶여 추진 속도와 협업 기반이 약해질 우려가 있다. 이 경우 비닉은 보호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추진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해법은 '전면 공개'와 '전면 비닉'의 양자택일이 아니다. 원자로 출력, 소음 특성, 작전 운용 개념 등 함정 성능과 직접 연결되는 핵심 군사기술은 엄격히 비닉으로 유지하되, 법·제도 정비, 산업 참여 확대, 시험설비 준비, 미국 및 IAEA 협의 절차처럼 공개 가능한 영역은 단계적으로 공개 전환하는 방식이 보다 현실적이다. 이는 보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국가 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 절충적 접근이다.
이미 한·미 정상 차원에서 후속 협의의 방향이 제시됐고, 정부도 특별법과 IAEA 협력 필요성을 공식화했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좀 더 지켜보자'는 신중론의 반복이 아니라, 무엇을 비닉으로 남기고 무엇을 공개 협력으로 전환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선 긋기다. 핵추진 잠수함 사업의 성패는 기술 자체보다도, 이 선을 얼마나 적시에 그리고 정교하게 그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