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국 금융 전체를 전면적이고 노골적인 약탈적 금융으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적어도 일부 영역에서는 약탈적 성격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처럼 답변이 극명하게 갈리는, 다소 철 지난 질문을 다시 던지는 이유는 답변에 이르는 과정이 한국 금융의 앞길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 먼저 약탈적 금융의 잣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에 따르면, 약탈적 금융이란 정보의 비대칭성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부당 이익을 취하고, 실물경제의 발전에는 기여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후생을 악화시키는 행태를 뜻한다. 금융이 새로운 부와 가치를 '창출'하는 본연의 기능을 하지 않고, 기존의 부를 특정 계층으로 '이전'시키는 역할을 주로 한다는 비판이다.
이러한 기준에서 볼 때, 한국의 주류 금융이 과거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나타났던 것과 같은 '노골적이고 공격적인 착취 구조'를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한국에서는 서슬퍼런 금융감독기관이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고 있다. 또한 한국 금융지주회사나 시중은행들은 주로 우량 담보대출과 고신용자 위주의 영업을 전개하며 극도로 리스크를 회피한다. 이를 두고 '보수적인 회피'라고 부를 수는 있어도 '적극적인 착취'를 자행한다고 비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아울러 서민금융이나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다양한 정책금융 제도가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한국 금융에 '약탈적 요소'가 짙게 내포되어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한국의 은행들이 고수하는 극단적인 안전제일주의가 중소벤처기업과 저소득층을 소리 없이 약탈하는 구조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은행의 본분은 리스크를 떠안고 기업의 미래가치를 평가해 생산적인 곳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확실한 부동산 담보가 없으면 자금을 구할 수 없으며, 그나마도 고신용자들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시중의 자금이 생산적인 혁신 투자나 미래산업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부동산 시장으로 집중되면서, 결국 자산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기존 자산 보유자에게만 이익을 안겨준다. 은행의 안전 위주 영업이 지속되는 한, 주택이나 부동산은 계속해서 훌륭한 투자자산의 지위를 누린다. 언제든 새로운 자금을 빌릴 수 있는 담보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을 규제하기도 하지만, 주로 신규 차입자를 옥죄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부동산 구매를 서두르도록 부추기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한국의 은행들이 고수하는 극단적인 안전제일주의는 결과적으로 중소벤처기업과 저소득층을 소리 없이 약탈하는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 (사진=뉴시스)
나아가 이러한 구조는 불평등을 더욱 고착화한다. 우량 담보와 고신용을 갖춘 기득권층에게만 저금리와 자산가격 상승의 혜택이 집중된다. 반면, 은행의 문턱을 못 넘는 혁신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은 성장의 기회를 잃고 고금리 대출이나 대부업체로 내몰린다. 은행들은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항변하겠지만, 철저한 '위험회피'를 통해 취약계층을 벼랑 끝으로 등 떠밀고 있는 셈이다.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적 중재자가 아니라, 안전한 길만 걸으며 기존의 부를 배불리고 있는 셈이다.
안전제일주의는 은행이나 금융지주 경영진의 ‘참호 구축’과도 맞닿아 있다. 이사회를 거수기로 전락시키며 견고한 참호를 파고 장기 집권을 노리는 최고경영자에게 치명적인 위협은 대규모 손실 발생이다. 혁신기업 금융이나 담보 없는 서민금융 등은 경제성장이나 사회적 후생 차원에서 과실이 크지만, 실패할 경우 경영 능력에 대한 책임론에 직면할 수 있다. 결국 은행들이 경제 생태계에서 소리 없는 약탈을 이어가고 있다면, 그 이면에는 안락한 참호 속에 숨은 경영진의 보신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정부는 ‘26년도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발표하면서 가계대출 관리 강화, 다주택자-임대사업자 담보대출 만기연장 불허 등의 방침을 발표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올바른 방향의 정책적 결단이라 평가할 만하다. 다만 “부동산 시장과 금융의 절연”만을 외친다고 해서 한국 금융의 깊은 병폐가 하루아침에 치유되지는 않을 것이다. 금융회사의 고착화된 비즈니스모델, 폐쇄적인 지배구조, 그리고 이를 둘러싼 낡은 금융 규제 등 종합적으로 개혁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앞으로 정부의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금융개혁 정책을 기대해 본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