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탈취 피해 중기, 현행 제도 정면 비판

징벌적 손배 '유명무실' 주장…기초 피해액 현실 반영 한계
입증책임 역전·소송 패스트트랙 도입 촉구

입력 : 2026-04-07 오후 4:45:01
[뉴스토마토 변소인 기자] "미국에서는 대기업이 기술을 탈취하지 않았다는 증빙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피해를 당한 기업이 자료를 제출하는 구조입니다. 중소기업이 버티기 힘들어질 때까지 대기업은 대형 법무법인과 대형 자본을 통해 시간 끌기 작전을 펴고 있습니다."
 
7일 대기업으로부터 기술 탈취 피해를 주장하는 기업들이 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중소기업중앙회)
 
대기업으로부터 기술 탈취 피해를 주장하는 조영수 씨지아이 대표는 7일 이 같이 밝혔습니다. 기술 탈취 피해를 주장하는 중소기업 4곳은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현행 제도의 한계를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입법·행정 차원의 구체적 개선을 촉구했습니다.
 
간담회는 송재봉 민주당 의원, 김종민 무소속 의원과 재단법인 경청이 공동 주최했습니다. 이날 엔이씨파워, 씨지아이, 티오더, 씨디에스글로벌이 피해 기업으로 참석했습니다. 엔이씨파워는 SK에코플랜트와 친환경 소각로 운영 최적화 솔루션 기술로 분쟁을 겪고 있고, 씨지아이는 한화솔루션과 방열 기기 관련 법적 분쟁 중입니다. 티오더는 KT와 테이블오더 서비스 핵심 기술 탈취로 분쟁 중이며 씨디에스글로벌은 죽염 제조사 인산가와 8년여 간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참석 기업들의 주장하는 피해는 구조적으로 유사합니다. 기술검증·인수·합병(M&A) 실사·납품 과정에서 핵심 기술자료를 제공한 뒤 계약이 거절되고 대기업이 유사 기술을 사업화했다는 것입니다.
 
간담회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다뤄진 쟁점은 중소기업의 기술 보호 장치 마련입니다. 현행 제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이들의 중론입니다.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기업들은 지적했습니다. 기초 피해액 산정 자체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배수를 높여도 실질적 구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입증 책임 주체의 전환에 대한 의견도 나왔습니다. 조영수 씨지아이 대표는 "인공지능(AI) 같은 무형의 기술은 도용 후 약간의 변형만으로도 추적이 불가능해 피해 기업이 이를 증빙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며 "피해 기업이 일정한 개연성을 입증할 경우 가해 혐의를 받는 기업이 자사의 독자 개발 과정을 직접 증명하도록 하는 입증 책임의 실질적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의원은 현행 체계의 구조적 허점을 지목했습니다. 김 의원은 "기술 유출은 형사 처리가 가능하지만 기술 탈취는 행정조사에 그쳐 소극적 신청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포착하기 어렵다"고 꼬집었습니다. 씨디에스글로벌 관계자는 "기술탈취 사건만큼은 기업의 존망과 직결되는 만큼 법원이 의무적으로 기한 내에 신속하게 판결을 내리도록 하는 패스트트랙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한국형 디스커버리'의 입법 범위도 쟁점으로 부각됐습니다. 박혜경 경총 변호사는 "디스커버리는 상생법에만 통과됐다. 기술침해 보호 영역은 상생법뿐 아니라 특허법·하도급법·부정경쟁방지법 등 여러 법에 흩어져 있다"며 "적용 범위가 확대돼야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장태관 경청 이사장은 "죄를 지었으면 강력한 벌을 줘야 한다"며 "대통령께서 주가조작을 하면 패가망신시킨다고 했는데 약자의 약점을 잡아서 기술을 탈취하는 기업에게도 기둥 하나를 흔들 수 있는 정도의 벌은 줘야 한다. 그래야 기술탈취가 줄어들고 산업이 발전합니다"고 강조했습니다.
 
피해 기업들은 현행 제도의 공백이 혁신 생태계 전반을 위협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조 대표는 "대한민국이 창업 거지만 양산하는 꼴"이라며 "창업 지원은 많이 해주고 있지만 창업 후 3~5년 뒤 양산 단계에서 대기업에 기술을 빼앗기면 버틸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변소인 기자 byl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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