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빚 더 내서 집 구하라'는 정부

입력 : 2011-03-03 오전 11:58:58
[뉴스토마토 황인표기자] 며칠 전 한 지인이 대부업계서 돈을 빌려 봤다고 얘기했다. 번듯한 직장인인데도 은행을 찾지 않고 고리(高利)의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린 이유를 물어보니, "부인 병원비 때문에 300만원 정도의 급전이 필요한데, 기존 대출로 은행에서는 한도가 꽉 찼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말 현재 국민들이 금융권에서 빌린 가계부채는 8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총소득(GNI)의 무려 80%에 달하는 금액으로, 모든 가계가 소득의 80% 만큼의 빚을 안고 살고있다는 얘기다.   
 
금리가 그래도 낮은 편인 은행권 대출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지난해부터 저축은행이나 대부업계로 서민들이 몰려들었다. 대부업계의 대출금리는 무려 30~40%다.
 
최근 금감원의 집계를 보면, 상위 5개 대부업체의 작년말 대출은 15% 늘고 이자수익은 20%나 늘었다. 상황이 절박한 서민이 많아졌다는 방증이다.
 
특히 이 가운데는 최근 전세자금 대출이 눈에 띈다. 5개 업체에서 전세자금 용도로 빌려간 금액은 총 10억원이었다. 1000만원만 빌려도 한달 이자가 무려 30만~40만원에 이르는데도, 은행 문턱이 높으니 어쩔 수 없이 대부업체까지 찾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와 금융당국이 요즘 전세난을 풀어가는 해법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3일 은행장들을 만나 "전·월세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은행권이 자금지원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며 은행에 적극적인 '대출확대' 협조를 당부하고 나섰다. 
 
앞서 정부도 전세자금 대출한도를 가구당 8000만원까지 늘리고 대출금리도 4%로 인하하기로 했다.
 
결국 치솟는 전월세값을 잡는 근본 대책보다는, 은행을 비틀어 대출을 늘려서 일시적으로 서민 전세난을 잠재우겠다는 것이다.
 
가계빚이 눈덩이처럼 커졌고 금리 인상기를 앞두고  있는데도, 또 대출이 늘어나면 물가폭탄에 이자폭탄까지 겹치게 된다. 결국 서민들만 죽을 맛인데, 만약 '폭탄이 터지면'(고물가와 고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하면) 은행에서든 대부업계서든 대출을 늘린 서민들의 가계가 파국을 맞을 수 밖에 없다. 연초 새해 경제운영방향을 발표하며  '올해 가계부채 관리에 나서겠다'고 말한  정부가 이를 모를리 없다.  
 
이미 부동산값을 잡기 위한 여러 정책은 공론화 돼있다. 공정임대료, 전월세 상한제, 공공임대주택 활성화 등 근본 대책은 도외시한 채 '빚을 더 내줄테니 집을 구해보라'는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뉴스토마토 황인표 기자 hwangip@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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