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등록금에 초봉삭감 그대로"..신입행원 '두번 운다'

"일자리 나누기 효과 없는데도 우리만 희생양"
일부 지방은행 '원상복귀'..시중·국책은행은 정부 눈치보기

입력 : 2011-06-23 오후 4:05:20
[뉴스토마토 박미정기자] "요즘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며 대학생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비싼 대학 등록금 내고 다닌 후배들에게 학자금을 빨리 갚으라고 위로금을 쥐어주지는 못할 망정 급여를 20%나 깎아서 학자금도 못 갚고 허덕이게 만드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올해 시중은행에 입사한 한 신입 행원)
 
일자리 나누기라는 명목으로 신입 사원 초봉 20% 삭감 정책이 시행된지 2년만에 은행권에서 이에 대한 불만이 또다시 제기되고 있다.  
 
금융위기가 거의 끝났다는 평가 속에서 은행들이 최근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데다, 당초 '일자리 나누기'라는 취지가 거의 사라지고 신입행원들의 임금삭감 효과만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신입행원들은 임금삭감으로 고참  행원과의 급여격차로 인한 박탈감과 차별도 심각하다.
 
최근 지방은행들은 하나둘씩 초임 연봉을 삭감 전 수준으로 되돌리고 있지만, 이보다 훨씬 규모가 큰 시중은행과 국책은행들은 정부 눈치만 보면서 여전히 신입행원 임금삭감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 "일차리 창출은커녕 직원 임금 '하향 평준화'"
 
정부는 지난 2009년 2월 공공기관의 대졸초임삭감 조정 권고안을 발표했다.
 
대상은 대졸초임 2008년도 기준 2000만원 이상인 공공기관이었지만 정부 주도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으로 대기업과 민간 금융기관까지 포함됐다.
 
하지만 이 조치로 일자리가 늘어나기는 커녕 기존 직원과 신입직원 사이에 갈등과 좁혀지지 않는 괴리만 생겼다는 주장이 있다.
 
금융노조는 "공공부문과 금융기관 대졸초임 삭감을 통한 일자리나누기는 사회갈등만 부추기고 우수 인력 입사를 봉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이는 또 전 직원의 임금을 하향평준화 시키는 요인도 된다"고 밝혔다.
 
또 "은행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청년실업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초임삭감 비용으로 인턴 채용을 늘린다고 했지만 인턴의 정규직 전환에는 소극적"이라며 "청년실업 해소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있으며 결국 은행의 수익축적에만 초임삭감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금융노조에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올해까지 초임 연봉이 삭감된 금융기관 직원수는 총 5409명에 이른다.
 
그러나 일자리 늘리기의 일환인 인턴 채용이나 인턴의 정규직 전환에는 큰 변화가 없다.
 
인턴 중 20~30% 안팎을 정규직으로 채용한 은행들을 제외하면 인턴사원을 아예 뽑지 않거나 축소한 경우가 많다.
 
산업은행의 경우 지난해 3차례에 걸쳐 224명을 인턴사원으로 채용했지만 이들 중 3명만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국민은행 역시 지난해 200명의 인턴사원을 뽑았지만 정규직 전환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금융노조 조사 결과 나타났다.
 
◇ 부산·대구·전북銀 신입행원 초임 20% 삭감 없애
 
신입행원의 연봉 삭감 문제는 지방에 있는 은행부터 개선되고 있다.  
 
전북은행은 다음 달부터 신입행원 초임 20% 삭감 조치를 없애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초 이후 입행한 행원들의 임금이 다음 달부터 20% 인상된다. 앞으로 입사하는 신입행원의 임금 역시 삭감 조치 전 수준으로 회복된다.
 
즉 신입직원 초임 삭감 정책을 유지시 연봉이 2300만원 정도였다면, 이번 조치로 연봉 3000만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서 부산은행과 대구은행도 올해 1월부터 신입행원 초임 20% 삭감 조치를 중단했다. 이로써 삭감 조치시 입사한 행원들의 임금이 20% 올라가 2009년 이전 수준으로 복귀됐고, 올해 입사하는 직원들도 초임 20% 삭감 조치를 받지 않는다.
 
부산은행 관계자는 "노사 합의에 의해서 임금 삭감을 없애게 됐지만 지방은행 우수인력 유치를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며 "기존 직원과 임금 격차에서 오는 차별이 신입직원의 상대적 박탈감과 사기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고 말했다.
 
◇ 시중은행 "초임 문제는 정치적 부산물"
 
하지만 지방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부의 입김이 많이 작용하는 시중은행의 임금 합의는 순탄치 않은 모습이다.
 
몇몇 시중은행은 은행권 노사 공동단체협상(공단협) 가이드라인이 설치되는 즉시 임금 삭감 조치를 없애겠다고 협의 중이지만, 정작 정부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시중은행 노조 관계자는 "직원수가 많은 국민은행이나 신한은행이 임금을 되돌려놓으면 공공기관까지 영향을 받기 때문에 당국에서 적극적으로 막고 있는 상황"이라며 "몇 달 전 사측과 노조가 임금 복구 합의를 한 후 바로 당국에서 전화가 와 사측을 압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결국 금융노조는 지난 22일 오후 7시 "신입직원 초임삭감, 메가뱅크 추진 등 관치 금융을 하고 있다"며 전국 서울 시청광장에서 10년만에 최대규모의 가두 집회를 열기도 헀다.
 
또 다른 시중은행 노조 관계자는 "지난해 연말부터 임단협을 통해 초임 삭감을 없애라고 했지만 사측이 요지부동이라 지난 22일 집회까지 한 것이 아니겠냐"며 "사측도 노조합의를 떠나 정부에 쥐여있기 때문에 결단이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권의 초임 연봉 삭감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록 신입 행원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시중은행에 입사한 행원은 "은행이 어려워서라면 경영을 제대로 못한 경영진의 급여를 삭감해야 되는 거고, 일자리 나누기가 이유라면 전국 모든 기업과 모든 근로자들이 동참해야되는 것 아닌가"며 "일자리 나누기 혜택이 신입채용자에게 돌아가는 것이라 기존직원을 제외한 신입직원의 급여를 깎아야 했다면 채용 후 1년 동안만 급여의 20%를 깎고 이후에는 기존 직원의 임금 체계로 가야되지 않냐"며 문제점을 꼬집었다.   
 
뉴스토마토 박미정 기자 colet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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