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종호기자]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 경제에 '희망이 없다'고 말한 것은 일본의 '저출산 고령화' 문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나라는 우리나라다. 한국은 양극화 진행 속도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 경제가 저출산·고령화와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내 경쟁력을 키우며 지속가능한 경제를 만들어가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이 있는가? 역대 정부는 지속가능 경제를 위해 재임기간 동안 중장기적 국가비전과 재정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외국의 정부들도 20~30년을 내다보는 재정계획을 만들어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MB정부 들어 단기적 성장에만 매달리면서 이와 같은 중장기적 국가운용 및 재정계획이 실종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현 정부 중장기 국가비전-재정전략 수립의 문제점을 2회로 나눠 짚어본다. [편집자]
(기획)단기성장 매달린 MB정부 4년, 장기전략은 없다(상)
국가 채무가 늘어나고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재정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정부 재정건전성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향후 몇십년을 내다보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의 장기 재정 로드맵에 대한 고민은 사실상 전무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지난해보다 42조7000억원 늘어난 435조5000억원으로 추정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현재 국가채무가 GDP 대비 35.1% 수준이지만 저출산·고령화 여파로 2040년에는 110%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에서는 감세 유지, 지출 축소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재정 확충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달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언론사 경제부장 오찬 간담회에서 '장기 재정정책'을 묻는 질문에 "취임한지 얼마되지 않아 모르겠다"고 답했다. 다른 재정부 고위 관계자도 "20~30년을 내다보는 장기 재정계획은 준비 중인 게 없다"고 말했다.
이후 기획재정부는 지난 5일에서야 재정위험관리위원회를 열고, 오는 2013년까지 '50년 장기 재정전망'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현 정부가 다음 정부에 걸쳐 만들어낼 장기 재정 로드맵에 실천의지가 담겨있을지 의문이다.
◇ MB정부 재정전략은 오로지 "쓰지 말자"
MB정부는 임기가 1년 반 정도 밖에 남지 않은 후반기에 접어들었음에도 지금까지도 로드맵을 고민하고 작성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부 관계자는 "재정부 차원에서 재정 로드맵을 만들지는 않고 있다"며 "한국조세연구원 차원에서 이뤄진 전망치"라고 선을 그었다.
또 기존에 정부가 발표했던 장기 경제운용 정책인 '미래비전2040'에서도 '복지'나 '잠재 경쟁력 강화' 등 구체적인 전략은 누락된 채 '성장'에 대한 청사진만 부각됐다는 평가다.
이에 대해 성창훈 기획재정부 미래전략과장은 "참여정부 시절 만든 '국가비전2030'은 '복지'를 강조했지만 현 정부의 '미래비전 2040'은 '성장'을 강조했다"며 "국정이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물론 현 정부에서도 '재정준칙'을 통해 재정지출, 재정수지, 국가채무 등 총량적인 재정지표에 대해 구체적인 목표치를 정하고 이를 법제화해 구속력을 갖도록 함으로써 재량적인 정부 지출을 통제하는 재정운용체계를 운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의 '2011~2015년 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5년 평균 국내총생산(GDP·명목 기준) 증가율을 7.6%, 세금 등 정부 수입 증가율을 7.7%로 전망하고, 정부 지출 증가율은 4.8%로 억제하겠다는 방침이다. 즉 지출증가율을 수입증가율보다 2~3%포인트 낮게 유지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현 정부가 가지고 있는 재정정책이라면 지출을 억제하는 것뿐"이라며 "성장을 통해 명목GDP를 올려 세수를 늘리고 이를 바탕으로 재정균형 마스터플랜을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오 실장은 "재정균형이라고 해도 똑같은 재정균형이 아니다"라며 "세수가 상위계층이 많이 내도록 설계돼 있는데 감세정책을 유지하면서, 정부지출은 줄여 공적재원 투자를 감소시키면 결국 부자들은 이득을 보고, 서민들은 피해를 보게 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 사회지출·복지지출·지속가능한 재정전략 필요
장기 재정전략의 의미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부분 단순한 재정균형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평가한다.
홍승현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4월 OECD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재정지출을 줄이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라면서도 "복지지출이 늘어나는 추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정부지출만 줄이는 재정정책으로는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등 정부가 나서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에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현 정부의 재정전망이 문민정부 시절로 후퇴했다는 평가도 따른다.
역대 정부는 저출산고령화와 양극화, 성장잠재력 둔화 등에 대한 우려가 시작되면서 중장기적인 재정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 적극적으로 장기 재정전략에 대한 고민과 수립 작업에 벌여왔다.
문민정부는 국가정책자문위원회를 통해 중·단기정책에 초점을 맞췄고,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비전 2011'을 통해 중기 재정정책을 설계했다. 특히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로 인해 10년 이상의 장기 전망을 세울 여력이 없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참여정부 들어서는 '국가비전 2030'을 통해 20년 이상의 기간을 염두에 두고 장기재정전망을 만든 바 있다.
우천식 한국개발연구원(KDI)연구원은 "참여정부의 '국가비전2030에 주목해야 할 점은 정책목표와 과제를 재정전략과 연계했다는 점"이라며 "참여정부 이전의 비전작업은 당위적인 정책방향이나 과제를 취합·나열하는 차원이었다"고 밝혔다.
"현 정부에서 만든 미래비전 2040에는 재정전략이 없다"고 밝힌 우 연구원은 "체계적인 단계와 시간을 가지고 국가 정책의 총량적인 계산을 해야하는데 의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외국의 경우 장기 재정전략을 통해 국가경쟁력 강화추구하는 사례는 많다.
노르웨이와 아일랜드, 영국이 장기 재정전략을 가지고 국가의 총괄적인 정책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호주의 경우, 10년 동안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총 83억 호주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의회의 예산처(CBO), 행정부내 예산관리처(OMB) 등을 중심으로 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투자 부문 주요 재정사업의 타당성과 지속가능성을 30년 이상의 장기적 시야에서 엄격히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