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복지' 빠진 MB정부 미래 보고서(하)

입력 : 2011-07-19 오전 11:05:07
[뉴스토마토 송종호기자]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 경제에 '희망이 없다'고 말한 것은 일본의 '저출산 고령화' 문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나라는 우리나라다. 한국은 양극화 진행 속도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 경제가 저출산·고령화와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내 경쟁력을 키우며 지속가능한 경제를 만들어가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이 있는가? 역대 정부는 지속가능 경제를 위해 재임기간 동안 중장기적 국가비전과 재정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외국의 정부들도 20~30년을 내다보는 재정계획을 만들어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MB정부 들어 단기적 성장에만 매달리면서 이와 같은 중장기적 국가운용 및 재정계획이 실종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현 정부 중장기 국가비전-재정전략 수립의 문제점을 2회로 나눠 짚어본다. [편집자]
 
"단기적으로 실업률, 빈곤율 변화에 대응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계층, 인구구조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가 필요하다"
 
지난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미래기획위원회에 '미래비전2040'의 내용으로 권고한 내용이다. 핵심은, 저출산·고령화, 양극화, 저성장에 직면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장기 재정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KDI는 인구노령화와 저출산의 여파로 재정 지출이 현 추세대로 계속 증가하는 구조라며 이에 따른 공공사회지출(SOCX) 규모도 2013년 국내총생산(GDP)대비 8.9%에서 2040년엔 17.7%로 2배나 높아질 것으로 바라봤다. 지금부터 철저한 대비를 하지 않는다면 지속가능한 미래 청사진을 설계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 '복지'는 모르쇠..'성장' 우선 2040년 미래설계
 
그러나 지난해 발표된 '미래비전 2040'은 2040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 6만 달러 달성과 세계 10대 경제대국 도약이라는 청사진만이 요란하다. 
 
복지를 강조하며 선순환 경제구조를 만들겠다던 참여정부의 '국가비전 2030'과는 비교가 된다.  '국가비전 2030'은 전 국민이 집·병원비·일자리·먹거리 걱정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구상에 따라 나온 정부의 장기 재정운용 전략이었다.
 
노인의 3분의 2가 연금을 받고, 치매, 중풍에 걸린 노인의 100%가 장기 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건강보험 보장률과 고용률은 각각 85%, 72%로 끌어올리겠다는 복지에 바탕한 국가비전이었다.
 
특히 '국가비전 2030'은 5가지 전략별 과제와 50개의 핵심과제를 토대로 고령화, 저출산에 따른 저성장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으나, 증세논란으로 인해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반면 '미래비전 2040'은 복수국적 허용, 이민 허용 등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성장동력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지출 비전은 담겨있지 않다.
 
또 기업, 금융, 법제 등 시장 인프라 정비, 시장 중심 경제 운용을 위한 각 부문별 정책 방향을 설정했다. 결국 '성장이 최고"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이 그대로 연장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천식 한국개발연구원(KDI)연구원은 "현 정부의 미래비전은 '성장'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에 '복지'가 빠져있고, '복지'설계가 없기 때문에 '장기 재정전략'의 필요성도 인지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KDI가 복지부문을 중심으로 재정지출이 꾸준히 늘면서 국가채무와 국민의 세금부담 증가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음에도 '성장'을 통한 '사회복지 확충'이라는 국정기조에 매몰된 상황이다.
 
◇국가비전2030과 미래비전2040 비교
 
◇ 형식화된 '재정전략회의'..포퓰리즘 굴레 못벗는 '복지'
 
특히 인구구조의 변화는 복지수요를 증대시킬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해서도 복지투자를 늘려 재정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하지만 현 정부는 재정전략회의 마저 형식적인 절차를 위한 회의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인욱 좋은예산센터 사무국장은 "참여정부 시절의 재정전략회의는 1박2일 전 국무위원들이 토론을 하고 총의를 구하는 방식이었지만 현 정부들어서는 몇시간 동안 재정부가 브리핑을 하고 관계 장관들이 승인하는 방법으로 형식화됐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정부의 재정 건전성 주장은  내년 대선을 겨냥한 '선거용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대선이 있는 내년 가을에 재정균형을 담은 2013년 예산안을 발표할 것"이라며 "금융위기를 맞아 다른 국가들이 재정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이룬 성과라고 홍보할 게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야권에서 제기할 '복지 지출 확대'를 '포퓰리즘'으로 규정하고 '재정균형'을 대항카드로 내밀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4월에 열린 재정전략회의 결과에 대해서도 오 실장은 문제점을 제기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재정 구조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며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려면 지출 통제를 강요하는 사후적 대응보다는 세입을 늘려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는 2008년 부자 감세로 매년 20조원의 세수 감소를 유발해놓고 재정건전성을 명분으로 지출 통제를 통해 수습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 대세는 '보편적 복지'.."세금이 보험이다"
 
남찬섭 동아대 교수에 따르면 한국에서 30~50대 가계는 교육비와 가구 의료비, 주거비, 부모님 부양비를 모두 개인이 부담하고 있다.
 
2009년 조사에서 생명 보험의 가입률은 87.5%로 조사됐다. 민영 생명보험에 가입한 1690가구의 평균 가입건수는 4.4건으로 연간 납입보험료는 평균 498만원(월 41.5만원)이고 민영 생명보험 가입가구의 절반이 넘는 55.8%가 가구소득의 10%이상을 보험료로 납입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남 교수는 "문제는 민간보험은 공적보험이나 공공사회지출에 비해 소득재분배 효과, 사회안전 기능 등이 매우 취약하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우천식 KDI연구원은 "우리는 복지를 위해 민간 '보험'과 '자녀'에게 투자하고 있는데 사회적 보험의 혜택이 커지면 세금에 대한 인식이 점차 민간보험료 같이 여겨질 것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세금을 내는 것보다 복지를 통한 이익이 더 커지게 되면 증세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복지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보험'의 성격을 갖게 되면서 선별적 복지보다 보편적 복지를 선호하게 된다고 한다.
 
지난해 <한겨레>가 리서치플러스에 의뢰해 조사한 '국민의 복지 및 사회의식' 조사 결과도 이를 증명했다. 전체 응답자의 72.1%는 '세금을 많이 내더라도 모든 국민에게 복지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세금을 낮추고 가난한 사람들만 돕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22.7%에 그쳤다.
 
국민 10명 중 7명은 '선별적 복지'보다 '보편적 복지'를 선호했다는 말이다. 특히 이런 성향은 정치적 성향이나 소득 수준, 학력, 지역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나타났다.
 
◇ 합리적 세수확보와 건전한 재정운영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증세를 하기 전에 재정구조의 개혁을 주장한다.
 
그는 "걷어야 할 곳에서 세금을 걷지 못하다 보니 재정규모가 근본적으로 적자고, 복지재정 역시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양도세 폐지를 주장한 박 장관의 발언에 대해서도 선 부소장은 "정부가 조세정의를 말하지만 부동산 부자들의 심정만 헤아린 것"이라며 "부동산 다주택자들 입장에서 좁은 시각에서만 조세정의를 바라보니까 넓은 의미에서는 중과세 제도가 도입된 맥락이 있다"고 말했다.
 
선 부소장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저출산 고령화돼가고 있는데 대비는 하나도 안하고 있다"며 "빚내서 성장하는건 성장도 아니고, 직접세 줄여서 간접세로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해보겠다것도 말이 안된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임금소득을 중심으로 1970년대 구축된 우리 세입구조는 1990년 대 부터 유리알 지갑이라고 표현되는 근로소득과 다양한 목적세와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면서 간접세를 중심으로 재정이 운용되고 있다.
 
실제 그 과정에서 GDP의 7~8배에 달하는 부동산 보유자산, 주식투자 자산 등은 조세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대해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이 상태로는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등 정부가 나서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에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다”며 "자영업자의 소득파악도 되지 않아 세금을 부과하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복지제도를 설계할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세금의 낭비적인 요소를 줄이고, 세원 파악과 세금부과가 투명해지고도 안되면 증세를 해야할 것"이라며 "특히 복지재정 확보는 저소득층 대상의 시혜적 복지를 위한 예산확보가 아닌, 경제구조 변화에 조응하는 세입구조를 구축하고, 경제성장과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 지속가능한 성장에 부합하는 세출구조를 짜나가는 과정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뉴스토마토 송종호 기자 joist189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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