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종호· 손지연기자]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과 유럽 재정위기로 국내·외 금융, 경제 불안이 가중되면서 재정건전성 논쟁이 촉발되고 있다. 특히 "미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부자 증세를 실시해야한다"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의 최근 기고문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부자감세 고수→재정적자 증가' 비판을 받아온 한국 정부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증세·감세 논란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 올바른 정책방향을 3회로 나눠 모색해본다. ③ [편집자]
현 정부 출범은 ‘감세 정책’의 공이 가장 크다. 참여 정부시절 도입된 종합부동산세는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으며 ‘세금폭탄’으로 낙인됐다. '증세'에 대한 국민들의 본능적인 거부감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MB노믹스의 설계자인 강만수 산은금융그룹회장은 지난 2008년 기획재정부 장관 시절 “노무현 정부 시작할 때보다 아파트 가격이 3배 정도 뛰었다. 10년 동안 야인으로 있으면서 소득은 없는데 종부세만 냈다”며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윤정화 월드리서치 연구원은 “도덕적으로 세금을 더 내고, 복지혜택을 늘려야 한다는 질문에 응답자는 ‘그렇다’고 대답하지만 실제 행동은 반대"라고 지적한다.
윤 연구원은 “증세는 그만큼 실제 국민들의 부와 관계없이 위력을 발휘한다”며 “특히 ‘나쁜세금’ ‘세금폭탄’이라는 비유는 세금을 싫어하는 심리를 발동시키는 효과가 대단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감세’를 정책기조로 한 MB정부가 4년차로 가는 현재, 빈곤 확대와 양극화 심화는 지속되고 있고, 재정건전성도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특히 최근 유럽재정 파탄에 따른 재정건전성 문제의 부각으로 '부자감세'에 대한 회의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부자감세’는 여당내부에서 조차 반론에 부딪히고 있고, 지난해 지방선거와 지난 4월 재보궐 선거를 거치면서 확인된 복지수요에 증세의 필요성이 맞물려 ‘감세 철회’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증세가 복지다”..국민 의식은 진화 중
최근의 복지요구과 증세논란에 대해 이준구 서울대 교수는 “공정성 훼손과 불신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부자를 더 부유하게 만들어 우리를 잘살게 만들어 준다는 약속을 믿을 수 없으니 차라리 복지정책에 돈을 지출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신이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 산다고 느끼는 사람은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기꺼이 질 용의를 갖지 못한다”며 복지요구의 원인이 양극화 심화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데 기인한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복지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보험’의 성격을 갖게 되면서, 국민들이 선별적 복지보다 보편적 복지를 선호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우천식 KDI연구원은 “우리는 복지를 위해 민간 ‘보험’과 ‘자녀’에게 투자하고 있는데 사회적 보험의 혜택이 커지면 세금에 대한 인식이 점차 민간보험료 같이 여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홍헌호 시민사회 경제연구소 연구위원도 “부자감세부터 철회한 뒤 단계적 증세를 통해 복지를 늘리면 이를 체감한 국민들이 (증세에) 동의하게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동영 의원실은 지난해 전당대회를 앞두고 실시한 당내외 여론조사 결과를 19일 공개하고 “민주당원의 80%, 일반국민의 67%가 보편적 복지를 희망한다”며 “보편적 복지를 위해 세금을 낼 수 있다”는 의견도 뒤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정동영 의원실 측은 “국민들이 증세에 인색하다는 인식은 그동안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증세와 복지에 대한 여론조사 수치보다 국민의식의 진화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한겨레>가 리서치플러스에 의뢰해 조사한 ‘국민의 복지 및 사회의식’ 조사 결과도 이를 증명한다. 전체 응답자의 72.1%는 ‘세금을 많이 내더라도 모든 국민에게 복지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세금을 낮추고 가난한 사람들만 돕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22.7%에 그쳤다.
국민 10명 중 7명은 ‘선별적 복지’보다 ‘보편적 복지’를 선호했다는 말이다. 응답비율이 정치적 성향이나 소득 수준, 학력, 지역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나타난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실제 증세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실 측은 “증세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한 것은 사실”이라며 “때문에 '감세냐 증세냐' 프레임을 '감세냐 복지냐' 프레임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부자감세와 재정균형’..오락가락 정부
최근 미국 신용등급 강등 사태로 국내외 금융, 경제 불안이 일어나자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전 세계적인 재정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건전성에 역점을 두고 임기가 끝나는 2013년까지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대통령의 ‘균형재정’ 발언 직후 지난 16일 기획재정부가 ‘증세와 감세조정 검토’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파문이 커지자 청와대는 17일 법인세·소득세에 대한 추가 감세 문제에 대해 “예정대로 감세를 추진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감세에 대한 정부 입장은 정권에 따라 갈팡질팡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참여정부 시절인 지난 2005년 11월 당시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의 ‘감세논쟁 주요논점 정리’ 보고서를 통해 감세혜택이 주로 부유층에 집중돼 소득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세입기반을 항구적으로 잠식해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발표했다.
특히 감세를 할 경우 소비성향이 낮은 부유층의 감세혜택이 많아 단기적인 경기부양효과는 크지 않고 정부의 재정적자와 물가상승만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재정부의 태도는 돌변한다. 재정부는 지난 2008년 11월 ‘최근 감세와 재정지출 관련 주요 이슈 정리’보도자료에서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정책을 병행할 경우, 단독으로 사용한 경우에 비해 경기부양 정도가 크다”고 밝혔다.
더구나 재정부는 “감세정책이 재정지출 확대보다 경기회복 속도가 빠르고, 경기회복 이후의 성장률도 높다”며 "높은 법인세율은 기업경영과 수익에 악영향을 미치고, 세계경제에 타격을 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 MB 감세정책 고집..공기업 팔아 재정균형 달성?
정권의 정책기조에 따라 감세입장을 달리하는 재정부의 입장과 재정균형을 외치면서도 부자감세를 포기하지 않는 대통령이 앞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재정균형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민영화 매각대금을 활용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전망하고 있다.
때마침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7일 “정부가 보유한 인천국제공항공사 지분의 일부를 국민주 방식으로 매각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박 장관의 발언은 국민 세금으로 지은 알짜 공기업을 외국 자본에 매각한다는 비판을 우회하기 위한 복안이지만 장기적으로 지분을 매입한 주주들이 외국 자본 등에 주식을 다시 매각하면서 특정 대주주에게 지분이 쏠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균 고려대 교수는 “영국이 대처정부 시절 이런 방법을 사용했다”며 “당시 영국 보수당은 민영화 매각대금을 활용하기 위해 영국의 공기업들 상당 부분을 차례차례 팔아 조성된 수입을 단기적으로 지출을 유지하는데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런 방법은 매각이 이뤄질 때마다 단 한차례 기금이 유입됐을 뿐 정부의 자산을 고갈시켰다”며 "이미 선진국에서 실패하고 역사적으로 평가가 내려진 정책을 사용하면 안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는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인천공항공사 등을 매각하면 세입이 크게 확충될 수 있다고 보고, 이들 기업매각으로 올해부터 4년간 약 18조원을 세외수입으로 잡아놓고 있다. 그러나 정권 말기에 대형 공기업 지분매각을 서두르게 되면 ‘졸속매각’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 같은 비판이 예상되지만 현 정부가 끝까지 ‘부자감세’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장은 “‘보편적 복지 시행→복지예산 확보 필요→만성적인 재정적자 발생→대대적인 증세(세금폭탄)’가 불가피하다는 논리구조를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감세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면서 재정균형을 달성한 정부와 복지 포퓰리즘에 빠진 야당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차별화시키고자 한다는 것이다.
뉴스토마토 송종호 기자 joist1894@etomato.com 손지연 기자 tomatosj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