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주연기자] 금융은 필요할 때 자금을 융통해 경제주체들이 원활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금융제도나 정책적 오류·부실, 금융회사의 횡포, 고객의 무지와 실수 등으로 금융소비자들이 금전적·정신적 피해와 손실,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가 있습니다. 뉴스토마토는 금융소비자들이 이런 손실과 피해를 입지 않고 소비자로서 정당한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사례를 통해 보는 '금융소비자권리찾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2003년부터 해외에 거주하다 올해 4월 귀국한 A씨는 다음 날 통장정리를 위해 주거래 은행을 방문했다가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자기 명의의 통장 2개 중 하나는 계좌가 해지됐고 나머지 하나는 통장이 재발급된 상태였다. 하지만 비밀번호가 변경돼 인출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신청한 적도 없는 정기예금이 자신의 명의로 개설돼 있었는데 이미 중도해지 돼 잔액은 한 푼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2개의 통장에서 모든 예금이 불법인출 됐다는 사실을 확인한 A씨는 곧바로 은행에 계좌 지급정지를 신청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범인은 다름 아닌 A씨 오빠의 부인(올케)으로, 올케 B씨는 신분증을 도용해 A씨를 사칭하며 계좌 비밀번호 변경, 통장 재발급 등을 통해 한 은행에서만 1억8785만6535원을 인출했다.
A씨는 본인이 아닌 사람에게 어떻게 1억이 넘는 돈을 아무런 의심 없이 인출해 줄 수 있는지 은행에 따져 물으며 불법 인출인 만큼 예금을 원상복구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은행측은 "담당직원이 주민등록증 음성확인시스템을 통해 주민증의 진위여부를 확인했고, 신분증 사진과 실물의 일치여부를 확인했지만 B씨가 A씨의 주민등록증상 사진과 헤어스타일이 비슷해 본인임을 알기 어려웠다"며 "은행은 주의의무를 다했으며 A씨가 주민등록증 관리를 소홀히 해 발생한 사건이므로 은행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A씨는 "올케인 B씨에게 예금관리를 허락한 사실이 없고 은행에도 아무런 부탁을 하지 않았으며 주민등록증도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보관했기 때문에 신분증 관리에 잘못이 없다"며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분쟁조정위는 주민등록증 진위확인시스템은 위조여부만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제3자에 의해 도용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음성확인시스템을 통한 확인만으로 은행이 본인확인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주민증과 실물을 대조해 본인여부를 확인했다고 해도 '본인과 다른 사람이었음이 밝혀지면 본인확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은행의 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은행에 과실이 있다고 결정했다.
단순히 외관상 헤어스타일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본인인지를 식별하지 못했다면 이 역시 본인확인 의무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도 덧붙였다.
특히 A씨는 해외에 거주하면서 텔레뱅킹을 통한 이체거래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점을 방문해 모든 계좌에 대한 통장 및 인감 분실신고, 비밀번호변경, 통장 재발급을 한 점, 비밀번호를 변경할 때 이전 비밀번호를 제시하지 못한 점 등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음에도 본인확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며 은행에 모든 예금에 대한 원상복구 결정을 내렸다.
허환준 금융감독원 분쟁조정국 변호사는 "신분증 도용으로 다른 사람에게 예금이 지급됐다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구제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예방 차원에서 철저한 신분증과 통장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