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정치적 동지 이해찬과 유시민, 그들이 헤어졌다

최근 인터뷰와 토론에서 극명한 정치적 노선차 확인

입력 : 2012-01-10 오후 4:24:57
[뉴스토마토 박수현기자] 80년대부터 오랜 세월 정치적으로 동행해 온 이해찬 전 총리와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사실상 결별 수순을 밟고 있다. 향후 야권 연대 과정에서 협상 당사자로 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정치노선을 분명히 달리하며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해 치러지는 총선과 대선을 앞둔 선거전략이 크게 달라서 향후 이 두 사람이 정치적 노선을 함께 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총리와 유 대표의 인연은 이 전 총리가 초선의원이던 지난 1988년 유 대표가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두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큰 역할을 하며 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두 사람은 '친노'의 간판으로 활약하며 각각 국무총리와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유 대표가 이 전 총리의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한 바도 있다.
 
두 사람은 2007년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인 2008년 1월16일 대통합민주신당을 나란히 탈당하며 같은 길을 걸었다.
 
이 전 총리는 2010년 출간된 한 책에서 향후 야권의 유력한 대권주자로 '유시민과 이정희'를 언급하며 정치적 후견인을 자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지형에 변화가 오면서 두 사람의 정치적 관계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 전 총리는 시민주권·혁신과통합을 거쳐 민주통합당으로 합류했고, 유 대표는 국민참여당을 거쳐 통합진보당을 선택하며 갈라서기 시작했다.
 
최근 이 전 총리와 유 대표는 각각 인터뷰와 100분토론을 통해 “2012년은 87년 체제가 끝나는 시기”라고 입을 모았지만 어떻게 끝을 낼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에 있어서는 큰 시각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 이해찬, 양당구도 공고화 통한 ‘정권교체’
 
이 전 총리는 <시사IN>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이 과반 의석을 넘길 것”이라며 “반면 진보 진영은 20석 넘기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문재인·문성근이 부산 출마를 선언하고 바람몰이에 나섰다”면서 “부산·울산·경남 41석 가운데 15석까지도 가능하다. 그러면 한나라당의 영남 패권주의가 무너진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유시민 대표는 소수당을 택했기 때문에 대선 구도에서는 탈락했다”며 “잘못 판단했다. 이번 통합 때 본진에 와서 이길 생각을 해야지”라고 비판했다.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에 대해선 “당이 하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논의 자체가 복잡할 것”이라며 “여야 양당구도가 치열해지면 진보당의 지지율은 더 떨어질 거다. 총선 성적은 총 10석 남짓”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이 전 총리가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의 1 : 1 구도를 통한 정권교체에 방점을 찍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에 대해 “정치 협상을 할 때 합리적으로 접근하리라 기대한다”고 여지를 남겼지만, 그가 그린 총·대선 판세에 진보정당의 자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합진보당의 원내 교섭단체(20석) 진입을 부정적으로 전망하며 “진보당이 10석 남짓이면 무슨 의미가 있나”고 발언한 것은, 야권연대 없이도 민주통합당 독자적으로 과반 이상의 다수당이 되어 대선승리를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아성이 공고한 PK(부산·경남)에 친노 인사를 대거 투입하는 전략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지역구가 있는 TK(대구·경북)를 고립시켜 지역주의를 극복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역구도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문재인·안철수가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될 경우 유 대표와의 단일화에 대해서도 “경쟁 피해서 그리 간 것”이라며 선을 그은 것은 어쨌든 거대양당 간 1 :1  구도만 만들어지면 된다는 그의 의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유시민, 삼자구도 정립 통한 ‘정치혁신’
 
유 대표는 3일 밤 방송된 MBC 백분토론에서 “87년 체제가 만든 ‘결선투표도 없는 대통령선거와 비례대표 비율이 매우 낮은 소선거구 국회의원선거 제도’가 기존 기득권을 쥐고 있는 양당이 계속 권력을 나눠먹게 한다”며 “양당구도와 지역주의가 결합해 완강하게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87년 체제는 이미 끝났어야 한다”며 “이승만의 안보국가와 박정희의 발전국가, 김대중·노무현 민주국가를 거쳐 2012년은 복지국가로 나아가야 될 과도기”라며 “그런데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서만 계속 권력이 오가면서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국민들의 요구는 사회정의와 공정성, 복지 등으로 이행하고 있는데 이런 요구를 받아 안을 수 있는 제도적 그릇이 없어 국민들이 점차 정치에 혐오감을 가지고 무관심해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 대표는 “이것은 87년 체제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제도적 결함”이라면서 “안철수 열풍이나 SNS 등 뉴미디어가 87년 체제를 흔들거나 붕괴시킬 수는 없다”며 “안 교수에 대한 지지는 87년 체제를 끝내기 위한 민심이 집중적으로 투사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시민들이 트위터 같은 여론으로 어떻게 바꾸려고 힘쓴다 하더라도 기득권을 장악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양당구도는 바뀌지 않는다”며 “87년 체제를 끝내는 것은 정당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지난 8일 수원에서 열린 경기도당 창당대회에서도 유 대표는 “MB만 쫓아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MB를 만들어내는 부당한 특권을 없애고, 불합리한 질서를 고치고, 반칙하는 자들을 응징해서 바르게 살아도 잘 살더라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에 여기 왔다. 우리 생애에 완전히 그렇게는 못한다 할지라도 통합진보당에서 하는 게 마음이 편해서 저도 여기 있다”고 말해 이 전 총리 등이 몸담고 있는 민주통합당에 합류할 생각이 전혀 없음을 내비쳤다.
 
이러한 발언들을 보면 유 대표가 민주당에 합류하지 않고 국민참여당에 간 것, 야권대통합이 아닌 민주노동당 등 진보세력과 통합한 것에 대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 전 총리의 전략인 1 : 1 구도를 통한 정권교체로는 87년 체제를 끝내기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정당지형의 재편을 통한 근본적인 정치혁신이라는 선택을 한 것이다.
 
87년 체제를 끝내고 민심이 원하는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19대 국회와 18대 대통령만 바꿔서는 불가능하고, 선거제도의 개혁이 필수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양당구도를 벗어나 제 3정당이 궤도에 올라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주장에는 양당구도에서는 대통령과 의회권력이 바뀌어도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이 권력을 양분해서 주고받을 뿐이기 때문에 87년 체제가 갖는 한계인 대통령 결선투표제와 비례대표의 비중이 낮은 소선거구제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우려가 담겨 있다.
 
오랜 세월 정치적 동지로 같은 길을 걸어왔던 두 사람은 이제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전 총리가 선택한 방법론으로 민주통합당이 독자적으로 지역주의에 균열을 내고 의회권력 교체와 대통령 선거 승리를 이끌어낼 것인지, 그리고 유 대표가 선택한 제 3정치세력화를 통한 근본적 정치혁신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어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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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