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특별취재팀] 검찰이 키코(KIKO)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키코를 판매한 은행들을 기소하기 위한 자료를 받아놓고도 이를 고의로 묵살하거나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뉴스토마토>는 미국의 증권·파생상품 시장을 관리하는 기관인 미국 CFTC(상품선물거래위원회)와 SEC(미국증권거래위원회)가 모두 키코상품의 구조와 판매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 문건을 입수했다.
해당 문건은 키코사건을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가 2010년 12월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지검장, 그리고 대검 수사기획관과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등을 경유해 주미 한국대사관에 의뢰해 작성한 것이다.
면담은 주미한국대사관에 파견되어 있는 검찰 법무협력관이 2010년 12월21일에 워싱턴 D.C 소재 CFTC와 2011년 1월11일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SEC를 직접 방문해 성사된 것으로 확인됐다.
◇혐의 입증할 문서 확보해놓고 은폐..수사팀은 교체당해
미국의 유관기관을 방문해 키코사건에 대한 자문을 구한 것은 검찰 수사팀의 수사 의지가 강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7월 키코 고발사건에 대해 무혐의로 결론내린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김원섭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공대위)장은 "한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취임하기 이전부터 금융조세조사2부(당시 이성윤 부장감사)는 노환균 전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당시인 2010년부터 키코 사건을 1년여 간 수사해왔다"면서 "당시 수사팀은 은행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는 등 줄곧 '기소 의견'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가 한 지검장이 취임한 2011년 2월 이후부터 '불기소 의견'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또 "키코 수사와 관련해 수사팀과 검찰 수뇌부가 4번 정도 충돌했다고 들었다. 수뇌부와 갈등설이 불거졌던 담당 검사는 곧 교체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키코 사건을 주도적으로 수사해온 박성재 검사(법무법인 민 소속 변호사)는 지난해 5월 공판부로 전보조치 된 뒤 사표를 제출했다.
검찰이 은행 측의 혐의를 입증해줄 CFTC와 SEC의 문서를 입수하는 등 기소에 유리한 자료들을 확보하고도 이를 묵살하고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는 얘기다.
▲ 외교부가 대외비로 지정한 미국 CFTC 문서.
◇외교부, 해당 문서 대외비 지정하고 비공개
CFTC와 SEC의 문서는 이후에도 오랫동안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외교통상부는 해당 문서들을 '대외비'로 지정해놓고 비공개 결정을 내려 문서를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조치했다.
키코사건의 피해자인 중소기업측이 해당문서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하자 외교부는 지난해 3월30일 "해당 문서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 진행 중인 재판에 관련된 정보, 공개될 경우 그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라는 다소 황당한 이유를 대며 비공개 처분을 내렸다.
외교부의 결정에 불복한 중소기업측은 민사사건을 담당중인 재판부에 해당문서에 대한 사실조회를 청구했으나 재판부는 이에 대해 "이유 없다"며 번번히 기각 결정을 내렸다.
▲ 외교부의 정보 비공개 결정 사유를 담은 문서.
문제의 문서는 유일하게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재판장 황윤구 부장판사)가 중소기업측의 사실조회청구를 받아들이면서 세상에 공개되었다.
외교부는 법원의 사실조회청구에 마지못해 결국 지난 1월10일 CFTC와 SEC의 문서들을 내놓았다.
모 변호사는 "무슨 대단한 정보가 담긴 문서도 아니고, 검찰 수사의 필요에 의해 해외 전문기관의 의견을 조회한 문서를 1년간이나 '대외비'로 묶어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기록에 해당 문서 누락돼
검찰 스스로 필요에 의해 의견을 조회한 문건은 수사기록에도 누락된 것으로 확인됐다.
중소기업측이 서울중앙지검의 무혐의 처분에 불복해 항고함에 따라, 사건은 서울고검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뉴스토마토 취재결과, 지검에서 고검으로 넘어간 수사기록에는 CFTC와 SEC의 문서가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 대외비로 지정된 미국 SEC 문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가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지검장, 그리고 대검 수사기획관과 검찰총장, 법무부장관까지 경유하면서 주미 한국대사관에 의뢰해 작성된 문서임에도 수사기록에는 누락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고검의 검찰 관계자는 "그 문서는 개인적인 루트를 통해 받은 걸로 알고 있다. 공식적인 자료가 아니기 때문에 수사 기록에 첨부될 이유가 없다. 참고는 하겠지만 그 문서의 내용에 비중을 두는건 아니다. 신뢰도 면에서도 그렇고 공식적인 자료료는 채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의 이같은 반응에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변호사는 "그 문서의 수신자를 살펴보면 검찰총장이라던가 금조부장의 이름이 적혀 있다. 만약에 개인적인 루트를 통해 부탁한거고 답변이 온거라면, 협조를 요청했던 당사자에게 그 문서를 전달해야지 왜 검찰에게 공식적으로 답변서를 보냈겠는가"라고 말했다.
결국 서울고검도 서울중앙지검과 같은 결과를 내놓았다.
서울고검 금융·조세부(정명호 부장검사)는 2010년 2월 키코 피해기업 공대위가 키코 상품을 판매한 시중은행 11곳을 사기죄로 고발한 사건에 대해 지난해 7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가 무혐의 처분한 결과에 대한 항고를 지난 6일 기각했다.
검찰 관계자는 "사건의 양이 방대했고, 양 쪽 변호인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서로에 대한 반박 자료도 많이 제출됐다. 수사 기간도 길었고 수사양도 많았지만 범죄 혐의가 발견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압수수색은 때와 타이밍이 맞아야 하는 건데, 은행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되면서 수사의 긴급성을 잃었던 게 사실이다. 은행 측에서 이후 많은 소명자료를 내 압수수색 영장 재청구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서울고검도 서울중앙지검에 이어 시중은행들에게 '면죄부'를 쥐어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