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은정기자] 지금으로부터 꼭 1년전 일본 동북부 지방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처참했다.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대지진이 강타한 일본 경제는 악화일로를 걸었고, 일본 국민들은 아직도 치워지지 않은 쓰레기속에서 지난 삶의 흔적들을 찾고 있다.
사망자 1만5800여명, 실종자 3400여명 등 약 2만명이 운명을 달리했다. 대지진의 충격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면서 핵공포로도 확산됐다. 일본은 중국에게 세계 2위 경제대국 자리도 내줬다. 자동차와 IT업체들의 공장가동이 중단되면서 수출대국의 무역수지는 31년만에 적자전환했고, 성장률은 마이너스 전환했다. 세계 최대 재정적자국으로 전락했다.
대지진 1년이 지난 지금 일본의 경제는 어떻게 변했을까? 기업, 금융 등 일본의 경제상황은 물론 후쿠시마 원전을 둘러싼 문제, 대지진으로 바뀐 일본인들의 삶도 진단해 봤다. [편집자 주]
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30년'을 맞을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상당히 침울한 소식이다.
지난 1991년 자산거품이 꺼지면서 '잃어버린 10년'을 보낸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 국면은 2000년대 들어서도 계속되면서 '잃어버린 20년'으로 이어졌고, 여기에 대지진 쇼크가 더해지면서 최악의 경제상황이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액은 약 17조엔(약 266조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원전사고 피해액을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 전체 피해액은 어마어마한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세계 최고수준인 일본의 국가부채는 대지진 쇼크로 새로운 기록으로 갈아치우고 있다. 무역대국 일본의 수출이 지난해 31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선 점은 일본인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다. 작년 실질 국내총생산(GDP)도 0.9% 감소하면서 2년만에 마이너스 성장률로 돌아섰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월가가 일본이 다음번 세계 금융위기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고있다고 전했다. 대지진 이후 일본경제는 지금까지도 추락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일본 나라빚 GDP 대비 2배..국채폭락 가능성도
최근 일본의 GDP대비 부채비율이 230%까지 올라선 가운데, 시장에서는 일본국채의 폭락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일본의 부채상황은 GDP대비로는 심각한 재정위기에 처한 그리스(159%)나 포르투갈(110%)보다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 GDP 대비 공공부채 규모 -
(자료=OECD Economic Outlook)
일본정부의 부채는 금액으로는 1000조엔 규모로, 올해 정부의 세수 48조엔 중 10조엔은 이자 지급비용으로 지출한다. 원금상환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지금은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금리가 1%만 올라도 이자는 무려 10조엔 늘어난다.
여기에다 무역적자가 심해지고 있고, 개인예금의 인출도 지속되고 있어 국채시장의 위기가 빠르면 18개월 뒤, 늦어도 5~6년 뒤에는 도래할 수 있다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당시 크레딧디폴트스왑(CDS)를 대량 공매도해 수조원을 벌었던 카일버스 헤이먼 캐피털 매니지먼트 회장은 "일본국채는 18개월 이내 급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일본의 5년물 CDS 프리미엄은 135bp로 1년전보다 50% 높아진 상황이다. 이미 월가에서는 일본의 CDS를 적극적으로 사들이는 등 일본의 파산에 베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긍정론자들은 일본 정부가 발행한 국채의 90% 이상은 일본 은행이나 일본 국민이 보유하고 있어 투매에는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국가는 부도가 나지 않는다던 일본인들의 믿음도 유럽사태로 인해 흔들리면서 일본 국채의 안전신화도 깨질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 31년만의 무역적자..경상수지까지 적자전환
지난해 일본은 2조5000억엔(약 36조원) 규모의 무역적자를 기록하면서, 1980년 이후 처음으로 적자전환했다. 대지진으로 수출 기업들의 생산이 차질을 빚은데다 유럽부채 위기까지 겹치면서 수출에 급제동이 걸린 것.
일본이 경제구조 변화도 수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엔고와 원전가동 중단으로 인한 전기요금 상승, 인건비 등을 견디지 못한 기업들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국제협력은행이 제조업체 970여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해외생산 비율은 33%로, 이런 추세라면 2014년에는 제조업의 해외 생산 비중이 38%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IT업체의 경우 해외생산 비중이 53%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원전사고로 LNG의 수입이 늘고, 이란 제재로 원유가격이 상승하면서 연료수입이 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노무라 증권은 "고유가가 110달러 안팎으로 지속한다면 올해 일본의 무역수지 적자는 30% 늘어난 3조2000억엔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1월 일본의 무역적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가 급증한 1조4750억엔으로 월간으로 사상최대 규모를 기록하기도 했다.
무역적자가 늘면서 국외 배당 수입 등으로 그나마 흑자를 유지해왔던 경상수지도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 1월 일본의 경상수지는 4373억엔 적자로 월별기준으로 3년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이번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비교 가능한 1985년 이후 최대 규모다.
지난해 일본 경상수지 흑자는 44%나 급감하면서 9조6289억엔을 기록했다. 경상수지 흑자 감소율로는 사상 최대폭으로, 흑자액이 10조엔을 밑돈 것은 1996년 이후 15년 만이다.
◇ 올해 마이너스 성장 벗어나지만 저성장 지속
지난해 일본의 실질 GDP는 전년대비 0.9% 줄면서 2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일본경기는 지난해 3분기 '반짝' 회복세를 나타냈지만 태국 홍수와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2분기만에 다시 마이너스 0.7%로 돌아섰다.
-일본의 실질 GDP 추이 -
(자료=일본 내각부)
일본은행(BOJ)은 올해 3월에 끝나는 2011회계연도 실질 GDP 성장률 전망을 기존의 0.3%에서 -0.4%로 하향조정했고, 2012회계연도는 2.2%에서 2.0%로 내려잡았다.
전문가들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경기 회복이 늦어 수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엔고로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좀처럼 늘리지 않으면서 성장률을 끌어내릴 것으로 봤다. 14년 연속 마이너스 물가상승률로 인한 만성적인 디플레이션 상황이 내수경제를 압박하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일본 내각부는 "지난 20년간 명목 GDP가 계속 줄고 있고, 공공부채는 GDP의 230%로 선진국 중 최악의 상황이어서 이제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0%대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일본의 명목 GDP는 5조8723억달러로 중국의 7조2960억달러보다 1조5137억달러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2010년 처음 중국 경제대국 2위 자리를 내줬을 때에 비해 3배 이상 벌어진 수치다.
한편, 일본의 실물경기 불안과 재정건전성이 이슈가 되면서 일본 신용등급 강등도 도마위에 오른 상태다. 지난해 주요 신용평가사들이 일제히 일본의 신용등급을 하향한 가운데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는 올해 1분기 안에 일본의 신용등급 추가 강등 가능성을 경고했다.
-일본의 신용등급 변화 -
(자료=각 신용평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