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북리뷰)'가난한 집 맏아들'

유진수 지음, 한국경제신문사 펴냄

입력 : 2012-03-26 오전 9:00:00
[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가난한 집 맏아들>은 1960년대 고속경제성장과 산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골 농가 큰 아들의 성공 스토리에 한국 대기업 현실을 빗대며 시작한다.
 
도시의 성공한 의사로 자리 매김한 맏아들을 '대기업'에 대한 메타포로 사용한 유진수 숙명여대 교수는 경제성장기 일개 중소기업에 불과했던 이들에게 부여된 수많은 특혜들을 지적했다.
 
이 책에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간단하다. 부모님과 동생들의 희생을 대가로 성공한 맏아들이 동생들을 돌볼 의무가 있느냐는 것이다.
 
'만약 큰 아들이 동생들을 보살피지 않는다면 이를 강제할 수단이 있는가? 같은 맥락에서 재벌 대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강제할 수단이 있을까?'
 
◇ 동반성장=같이 성장하지 않으면 공멸
 
 
저자는 "큰 아들을 성공시키기 위해 농가의 가장 큰 자산인 소를 팔고 다른 형제들의 교육마저 포기한 부모님, 형제들에 대한 책임이 오늘날 대기업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여기서 <가난한 집 맏아들>이 드러내는 한계도 명백해진다. 저자는 도발적인 문제제기와는 달리 결론적으로 맏아들(대기업)에 대한 구체적인 도의적 책임을 묻고 질책하는 수준에서 더 이상의 고차원적인 추론을 중단한다.
  
<가난한 집 맏아들>이 내포하는 가장 큰 결함은 자칫 독자로 하여금 대기업과 국민경제의 관계를 도덕적 책임에만 한정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유교수가 언급한 '추가적 도덕적 책임'이란 것이 현실에 적용할 때 '법적 규제'로 나아갈지, '자율적 규제'로 귀결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또 있다. 대기업에 대한 특혜는 책에서 나타난 것처럼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업종 확장으로 인한 서민경제 침체,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거래 문제도 대기업이 연말에 성금 몇 푼 더 내고, 사회봉사 활동을 늘리는 것 정도로는 근본적 해결이 될 수 없다.
 
동반성장의 개념 또한 "중소기업도 대기업처럼 잘 살게 해주자"는 취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같이 성장하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생존에 대한 문제인식에서 출발한다.
 
물론 무턱대고 대기업을 탐욕에 찌든 괴물로 상정하기도 어렵다. 책에 드러나듯이 서울에서 성공한 맏아들은 그 역시 가장으로서의 마땅한 책임이 있다.
 
고향에서는 그를 개천에서 태어난 용인양 대접하겠지만, 그 또한 매달 나가는 주택담보대출금과 자식들 교육비, 마누라 등쌀에 짓눌린 여느 가장과 크게 다를 바 없다.
 
◇ "대·중소기업은 형제가 아니라 부부에 가깝다"
 
<가난한 집 맏아들>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형제나 자매 관계에 대입하게 되면 대·중소기업간의 구조적 병폐가 영영 사각지대에 놓이게 될지 모를 일이다.
 
저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 인력·기술 빼돌리기 등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오늘 날의 기업 환경에서 재화·서비스를 단계별로 함께 생산해내는 대기업과 1·2차 협력업체의 관계는 명절때나 볼까말까한 형제 사이보다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 관계에 더 밀접하다.
 
남편은 한 가장을 대표하는 존재로서 바깥 세상에 나가 자기 영역을 구축하고, 아내는 그런 남편의 가장 긴밀한 파트너이자 협력자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남편은 매월 받는 월급에서 아내에게 지불해야 할 생활비를 매달 '후려쳐' 점점 살림살이를 어렵게 만든다. 아내는 모자란 살림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부업까지 나서는 바람에 몸이 성할 날이 없다.
 
이와 달리 남편의 연봉은 매년 큰 폭으로 상승한다. 외제차를 뽑고, 더 좋은 양복을 사 입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대기업의 외관은 나날이 휘황찬란해지지만 협력업체인 중소기업 현실은 점점 각박해진다.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형제가 아닌 같은 가정을 꾸린 파트너이자 동반자 관계로 상정한다면 우리는 대기업에 대해 도의적 책임뿐만 아니라 법적 책임까지 제기할 수 있게 된다.
 
◇ 개인의 성공 어느수준까지 '개인화' 할 수 있나?
 
1980년대 중반 미국 뉴욕의 고등법원은 한 이혼 소송에서 남편이 의학공부를 하는 동안 뒷바라지해준 아내에게 남편의 의사면허로 벌 수 있는 총수익의 절반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부부간의 재산분배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오랜 기간 이어져왔다.
 
이는 개인의 성공을 순수한 개인 능력으로 보는가, 개인의 역량과 이를 보조하는 인적·사회적 관계로 보는가의 차이다. 이 잣대가 개인의 성공으로 인해 창출된 부를 공정하게 배분하는 과정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상징적인 사례다.
 
유독 남자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한 우리나라의 잘못된 관습체계가 삶의 동반자인 아내를 착취하는 남편상을 만들어 냈고 이에 대한 법적 근거 제정을 방해해왔다.
 
마찬가지로 1970년대 이후 다른 그 어떤 나라보다도 대기업에겐 한없이 관대한 법적 현실이 과도한 경제력집중, 경제민주화 등을 방해해 왔다. 이제는 잘못된 관행과 이를 비호하는 법체계을 수정해 좀 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 때가 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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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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