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순욱기자] 4.11총선에서 새누리당은 박근혜라는 1인의 리더쉽에 의지해 152석을 획득하며 과반수를 달성했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의 승리 요인으로 누구나 '박근혜 효과'를 손꼽고 있다.반면 민주통합당에는 새누리당의 박근혜와 같은 지도자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대중·김영삼·김종필 1인 지배 시대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일까?
무엇보다도 민주당에는 더 이상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리더쉽이 설 자리도 없는 상태다.
87년 민주화 전후로 70년대에 40대 기수론을 펼쳤던 김대중-김영삼 등 야권 지도자들이 전두환 정권에 손발이 묶여있다가 정치적으로 해방되면서 각 정당은 1인 지배체제로 재편됐다.
김대중의 평화민주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그것이다. 그리고 집권여당이던 민정당은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계승됐다.
이같은 1인 지배체제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당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 이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강력한 리더쉽을 가진 것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지난 2002년 아들 3형제의 비리 등이 터져나오면서 탈당 압박을 받고 새천년민주당을 떠났다.
이로써 민주당은 1인 지배체제가 막을 내리게 된다.
김 전 대통령이 민주당을 탈당한 이후 야권에서는 단 한번도 1인 지배체제가 들어선 적이 없다. 2002년부터 10년간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통합민주당-민주통합당을 거쳐오면서 집단지도체제가 대세였다. 혹은 1인 대표도 허약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정분리'를 선언함과 동시에 실제로 당에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1인 지배체제는 확실하게 무너졌다.
이는 '3김시대'를 거치면서 대통령이나 특정 1인이 정당을 지배하는 문화에 대한 비판여론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인 지배체제에 대한 거부감은 힘없는 당 대표 시대를 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열린우리당 당의장이다.
열린우리당은 2003년 10월에 창당작업에 돌입해 2004년 1월에 창당했다. 창당 준비 기간에는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임시 당 의장을 맡아 창당작업을 추진했고, 초대 당 의장으로는 정동영 의원이 선출됐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당 의장은 지도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수시로 교체됐다.
열린우리당이 해산하던 2007년 8월까지 3년 7개월간 총 10명의 당 의장이 거쳐갔다. 평균 임기는 4개월 남짓에 불과하다. 초대 의장인 정 의원을 필두로 신기남-이부영-임채정-문희상-정세균-유재건-정동영-김근태-정세균으로 이어졌다.
당 의장에 관하여 어떤 사건이 터져나와 비판 여론이 일어나도 당 의장에서 물러나야 했고, 선거패배의 경우엔 당연히 물러나야 했다.
이같은 문화는 현재의 민주당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의 민주통합당 이전의 2008년 2월에 창당한 통합민주당은 손학규-박상천 공동대표 체제에 이어 정세균-손학규로 이어졌다. 이어 2011년 2월 시민통합당과 통합을 의결하면서 한명숙 대표체제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 대표는 지난 1월 전국 규모로 모바일 투표를 시도하는 등 당원과 대의원, 일반 국민 경선인단의 참여로 대표로 선출됐지만 불과 3개월만에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할 상황에 이르고 있다.
◇유력한 대권주자 1인 지배를 허용되는 새누리당
새누리당은 전신인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을 거쳐오면서 민주당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왔다.
신한국당은 5공세력과 단절을 추진한 김영삼 전 대통령(당 총재 겸임)이 민정당과 신민주공화당 세력을 몰아내고 대신 이회창, 박찬종, 이재오, 김문수, 홍준표, 정의화 등 새로운 세력을 영입하면서 95년 12월 창당했다. 확실한 1인 지배체제였다.
97년 대선 앞두고 김 전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자 탈당 압박을 받고 당권을 이회창 총재에게 넘겼다. 이 전 총재는 3김과 맞먹는 지배력을 확보했다.
이 전 총재는 대선을 앞두고 조순 총재가 이끌던 민주당과 합당해 한나라당을 창당했고,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패배했지만 98년 8월 다시 당 총재로 복귀하면서 2002년 4월까지 당을 지배했다. 무려 3년8개월이었다. 그래서 '제왕적 총재'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처럼 강력한 리더쉽을 보유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전 총재가 97년 이어 2002년 대선에서도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한나라당도 2002년 대선에서 이 전 총재가 또 패배하면서 권력 공백기가 생겼다. 2004년 3월 박근혜 대표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나라당 대표는 박관용-서청원-박희태-최병렬 등 4명이 거쳐갔다. 평균 임기 6개월에 불과했다. 열린우리당의 평균 3개월보다는 2배 길었지만, 이회창과 박근혜 두 정치인에 비교하면 당 대표로 인정받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당이 위기에 빠진 2004년 3월에 등장한 박근혜 대표는 총선에서 121석을 획득해 당을 위기에서 구한 뒤 2006년 6월까지 2년 3개월간 당 대표에 머물렀다.
박 대표가 빠진 한나라당, 그리고 이를 이은 새누리당은 또 다시 허약한 지도부 시대로 되돌아갔다.
2006년 7월 김영선 대표를 필두로 강재섭-박희태-정몽준-김무성-안상수-황우여-홍준표 등이 거쳐갔지만 누구도 확고한 리더쉽을 행사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다시 유력한 대권 후보인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새누리당은 일사분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1인 지배체제를 용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민주당에는 유력한 대권 주자가 없다는 점,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카리스마있는 지도자의 부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정분리 이후의 새로운 정치질서 창출 실패 등의 요인이 겹쳐 당 지도부의 리더쉽이 끊임없이 흔들린다고 분석된다.
따라서 한명숙 대표가 물러나고 어떤 인물이 당 대표가 되더라도 확고한 리더쉽을 확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언제든지 물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